동아일보 입력 2020-09-02 00:00수정 2020-09-02 00:00
검찰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분식회계와 주가 조작 등을 지시한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등 전현직 삼성 고위 임원 11명을 어제 불구속 기소했다. 이 부회장이 최소 비용으로 삼성 경영권을 승계받기 위한 목적으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와 시세조종 등 불법행위를 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2018년 12월 수사가 시작된 지 1년 9개월 만에 나온 검찰의 최종 판단으로,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권고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 의견을 검찰이 거부한 첫 사례다.
이 부회장 기소는 현 정부 들어 검찰이 자체 개혁안으로 실행해온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180도 뒤집은 것이다. 수사심의위는 비대한 검찰권을 견제하고 수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검찰이 2018년 1월 도입한 제도다. 강제성은 없고 권고적 효력만 가지며, 하루에 모든 주장과 판단이 이뤄지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나온 8번의 권고안을 검찰이 모두 따를 만큼 높은 신뢰도를 인정받으며 정착과정을 밟아왔다.
그런데도 이 부회장 사건에 대해서만 수사심의위 권고와 배치되는 결정을 한 것은 검찰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6월에 열린 수사심의위는 9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심의위원 13명 중 10명의 압도적 다수 의견으로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안을 채택함으로써 ‘불기소’가 국민의 법적 상식임을 확인시킨 바 있다.
비리 의혹이 있다면 누구든지 엄정한 수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특정 기업이나 특정인을 상대로, 그것도 수년씩 표적수사를 벌이듯 수사를 지속한 것은 검찰권 남용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삼성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2017년 1월 이후 지금까지 3년 9개월째 수사와 재판을 받아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 수사는 거의 2년간 50여 차례의 압수수색과 관련자 300여 명에 대한 860여 회 조사 등을 거치며 사실상 ‘탈탈’ 털듯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고 삼성은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재판에 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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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는 경제위기 속에서 최고 경영진 기소로 인한 경영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격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 속에서 총수가 결정할 수밖에 없는 대규모 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못할 경우 미래경쟁력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법집행은 일관성이 생명이다. 검찰수사심의위의 객관적인 판단을 거부한 이 부회장 기소는 현 정부 검찰개혁의 중대한 오점으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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