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단체장 요구에 지역 대형사업 봇물
‘기준 100배’ 5조원 예외 요구도 수두룩
국민 세금 최후 보루 ‘예타’ 원칙 지켜야
지금 분위기로 봐선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현 정부가 이런 요구에 적극 부응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회견에서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지역에 대규모 공공인프라 사업을 해야 되는데,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은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예타 면제 필요성을 지지했다. 엊그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예비타당성 자체를 합목적적으로 고치려고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며 예타 원칙 허물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나랏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국회의 밀담을 떠올리게 한다. 정부 돈은 국민이 땀 흘려 일해 벌어들여 낸 세금을 재원으로 모아둔 재정이다. 그런데 ‘공유지의 비극’이 도사린다. 정부가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써야 할 책무가 있지만 세금 낸 사람의 꼬리표가 없다 보니 정치인들이 지역구 관리를 위해 끌어다 쓰는 경우가 남발되고 있다는 얘기다. 4대 강 사업과 영암 F1 경기장도 각각 대통령 공약 사항과 지역 균형발전을 이유로 예타 면제를 받았다가 극심한 국론 분열과 예산 낭비 논란에 휩싸였다. 지금 집권세력은 야당 때는 이를 비판했지만 여당이 되자 정부와 짬짜미를 해 예타 허물기에 나서고 있다.
국가 균형발전을 반대할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하지만 건전한 재정은 우리의 생명이라는 점을 한순간도 잊어선 안 된다. 김대중 정부가 풍전등화의 외환위기를 극복한 저력도 탄탄한 재정 덕분이었다. 그 중요성을 알기에 예타 제도를 도입해 지역이기주의와 포퓰리즘으로부터 재정 건전성을 지키도록 했다. 더구나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복지 예산이 국가 예산의 35%를 차지할 만큼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다 무분별한 지역사업까지 남발되면 재정 건전성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재정은 국민의 미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는 점에서 예타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