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바른 영성 이해(1) (살전 5:23)

鶴山 徐 仁 2018. 7. 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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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월 0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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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바른 영성 이해(1) (살전 5:23)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본문 해석

근래에 들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영성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서점에서도 영성을 다룬 책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영성이란 무엇일까요? 기도원에 자주 가서 철야기도를 많이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교회에서 성경공부에 열심히 참석 하는 것일까요? 

넓은 의미로 영성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 곧 영적인 생활입니다. 좁은 의미로 영성이란 개인적으로 성령 안에서 좀 더 특별한 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영성의 유익은 말로 기술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큰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타 종교에도 영성을 말합니다. 불교적 영성은 나를 비우고 또 비우는 훈련을 통하여 내면적 성찰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훈련, 일명 마이너스(-) 영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영성은 인간 내면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오직 선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에게 속하여 날마다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으로 내 마음을 바꾸는 훈련으로 일명 플러스(+) 영성훈련이라고 합니다.

동물과 인간이 같은 점은 육체가 있고, 육체를 움직이는 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나 짐승이나 육과 혼에 있어서는 똑같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할 때 인간은 짐승에게는 없는 영이라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영성에 대해 살피기 전에‘영(靈, spirit)’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영에 대한 성경의 진리를 바로 알아야 영적으로 혼탁한 이 세대 속에서 바른 영성을 알고 회복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오늘날은 영적으로 참으로 혼탁한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 인간이 정신과 육체의 두 실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 대표자는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여러 사람들이 이것을 말했지만, 데카르트는 철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이러한 공식을 확립했던 것입니다. 정신은 지성, 감성, 의지 같은 활동이고 육체는 물질적인 몸을 의미합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정신에 대한 많은 비밀이 풀렸습니다. 오늘날 정신은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적이고 화학적인 작용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다시 말해 뇌가 손상을 입거나 죽으면 정신현상도 문제가 생기고 결국 사라집니다. 뇌의 현상인 정신과 구별되는 독특한 실체로서‘영혼’의 존재는 과학의 영역을 뛰어 넘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인간이 관찰할 수 있는 경험적인 영역만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믿는 의사도 있고 부정하는 의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영(혼)과 육이 인간의 존재양식이라고 분명히 밝히되 영이 주격(主格)임을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혼의 창조와 불멸을 말합니다.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죽음이란 영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것이며, 죽음 이후의 영혼이 거하게 되는 사후세계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믿음의 영역입니다. 만일 과학적인 관찰로 영혼과 사후 세계를 보고자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흔히 일부에서는 영과 구별되는‘혼(魂)’을 말하기도 합니다.

즉, 인간은 영과 혼과 육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소위‘삼분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비록 혼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영과 구별되는 어떤 실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혼과 영을 구별시킬 어떠한 근거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현상적으로 영은 정신과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질에서 정신은 영의 한 현상이요, 근본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은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하는 힘입니다. 바울은“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다고 말합니다(고전2:12).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하나님의 영을 받아 그의 자녀가 된 영혼만이 그와 깊은 교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 타 종교의 영성추구운동과 기독교의 영성훈련이 무엇이 다른지 정리해 봅시다.

- 나는 바른 영성을 정립하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오늘의 기도

영이신 하나님, 택하시고 부르셔서 자녀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바른 영성을 정립하고,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 주님의 기쁨이 되길 원합니다. 저의 영혼과 육체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열심히 살았다고 최상이 아닙니다
인문학 나눔

“한 원로 교수님의 정년퇴직 고별 강연이 있었습니다(중략). 

그 누구보다 열심히 가르쳤고 연구도 열심히 해 업적도 뛰어난 분이었습니다(중략). 

대개 이런 자리에서는 지나간 일들 중 좋았던 기억만 이야기하는데,

그분은 자신의 인생이 허망하다, 쓸쓸하다고 했습니다(중략).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원로 교수 중 한 분이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그 교수님은 잠깐 생각하시더니,

‘제대로 된 연구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30년의 시간을 더 주면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열심히 오래 산다고 해서 인생을 제대로 아는 것은 아님을.”

 

박세웅 저(著) 「나는 누구인가」(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21-2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열심히 살았고, 최선을 다했던 인생이었다고 해서 최상의 인생일까요? 

출애굽기 39장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에서 성막이 완성된 것을 보여 줍니다. 

이에 하나님이 축복하시는데 축복하시는 근거가 참 교훈 깊습니다. 

이들이 열심히 수고하였기에? 최선을 다하였기에?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필하매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 (출39:42,43)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대로 되었으므로” 축복하셨습니다. 

 

열심히 살았고,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방향이 잘못되었으면 헛 것입니다.

시계같은 최선보다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더 중요합니다. 

시계는 나침반 다음의 일입니다.  우리 인생의 승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그 목적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성공한 인생입니다. 이것이 성공한 사업입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시편 27장 4절
고린도전서 15:10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One thing I ask of the LORD, this is what I seek: that I may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all the days of my life, to gaze upon the beauty of the LORD and to seek him in his temple.

도서 큐티더 보기
무릎

무릎은 매일 밤 침대 옆의 바닥이나

매일 아침 서재에서 주님 앞에 꿇을 수 있게 해준다.

이 외적인 자세는 내면의 영적 자세에 대한 표현이다.

구부러진 무릎은 겸손한 마음을 보여준다.

-카일 아이들먼의 [오늘, 제자로 살기] 중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해,

주님의 마음을 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속에 체득되어 내면화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무릎을 꿇은 일은

단순한 육체적 과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주님 앞에 복종시키는 겸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