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북핵 위기 25년 '진실의 순간'이 왔다
입력 : 2018.03.17 03:12
정상회담은 다음 藥이 없는 마지막 處方
진실의 순간 앞에서 대한민국은 하나로 團合됐는가
트럼프-김정은 핵 담판(談判)은 북핵 위협을 제거할 수 있을까. 남북 정상회담은 미·북 핵 담판을 성공으로 이끄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상회담은 약효(藥效)가 세다. 들었다 하면 직방이다. 그러나 그것도 안 들으면 다음 약(藥)이 없다. 두 번의 정상회담은 북핵에 대한 사실상 마지막 처방(處方)이다. 국민 73%가 두 정상회담을 환영하고 국민 64%가 북한을 불신(不信)하고 있다.
정상회담 효과에 대해선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케네디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 전 밝혔던 견해다. '벼랑에서 적(敵)과 마주치기보다는 정상(頂上)에서 만나는 것이 낫다.' 다른 하나는 케네디가 대통령이 된 후 1961년 6월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미·소 정상회담을 가진 뒤 품게 된 생각이다. '정상회담은 위험하다. 독재자를 상대로 한 정상회담은 더 위험하다.' 빈에서 쓴맛을 본 다음 미국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조급증(躁急症)을 접었다.
미·소 간 정식 정상회담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72년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이 회담은 전략무기 제한협정(SALT)을 비롯한 풍성한 성과를 거뒀다. 냉전 시대의 가장 건설적 정상회담으로 기록됐다. 케네디는 빈 회담 실패를 통해 정상회담에선 논리보다 결의(決意)가 때로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눈떴다. 이 실패 학습이 2년 후 닥친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극복하는 토대가 됐다. 모스크바 회담의 주연(主演) 닉슨은 '즉흥적(卽興的) 회담은 실패한다. 준비된 정상회담만이 성공한다'는 체험담을 남겼다.
트럼프·김정은 핵 담판은 역사에 전례(前例)가 없는 회담이다. 2017년 미국 GDP는 19조3000억달러, 북한은 313억달러로 추산된다. 국방 예산은 미국이 6920억달러, 북한은 넉넉히 잡아도 20억달러 수준이다. 이런 두 상대가 같은 높이 의자에 앉게 하는 것이 핵무기 효과다. 미국은 작년과 올해에 걸쳐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력과 경제 봉쇄를 배가(倍加)했다. 평창회담을 전후한 김정은의 화려한 변신은 미국의 압박, 특히 군사적 압박의 결과다. 김정은은 이 처지에서 자신을 한반도 핵 드라마의 적극적 연출자(演出者)로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
김정은은 한국과 미국과 일본의 국익(國益) 틈새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위협 인식에 차이가 있으면 대응(對應)에도 엇박자를 낸다. 한국의 최대 위협은 북한 핵무기 자체다. 핵무기 운반 수단과 관계가 없다. 미국을 상대하며 마음껏 우려먹었던 핵무기를 남쪽과의 관계에서 써먹지 않는다면 허수아비가 웃는다. 미국은 핵무기와 ICBM이 결합하자 위기감이 치솟았다. 거꾸로 읽으면 ICBM만 제거해도 미국이 당장 느끼는 핵 위험은 크게 낮아진다는 뜻이다. 일본은 '북핵과 동거(同居)하는 평화'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흘리는 현 정부 일부 인사들보다 북핵 위협을 훨씬 절박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전쟁과 평화를 놓고 벌이는 담판에선 언제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는 측이 우위를 차지한다. 멀리는 1938년 체임벌린과 히틀러 간 영독(英獨) 담판에서 가까이는 1978년 이스라엘·이집트 간 중동 담판까지 빈손으로 돌아가면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될 쪽이 양보했다.
'더 포스트'라는 영화는 월남전 비밀문서를 보도했던 워싱턴포스트 신문을 다룬 영화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미국이 월남전을 포기 못 하는 이유는 10%는 월남을 돕고, 20%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고, 70%는 미국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제 정치의 진실 일부를 담고있는 말이다. 이런 시각에선 주한(駐韓) 미군이 영원하다는 생각도 우리에게 편리한 착각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성적은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 나아가 2년 후 재선(再選) 여부에 그대로 반영된다. '선(先) ICBM 제거 후(後) 핵무기 폐기'의 분리(分離) 유혹을 느끼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힘들다.
김정은이 정상회담 기회를 그대로 흘려보내면 평화적으로 북핵 위기를 해결하는 수단이 소진(消盡)됐다는 사실을 자기 입으로 세계에 선언하는 것이 된다. 한국이라는 징검다리도 끊긴다. 미국으로선 한국이 중개(仲介)한 정상회담까지 받아들였으나 약효가 없었다는 증명서를 떼게 된다. 그 다음은 궁핍과 화염과 분노다.
북핵 위기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느냐는 앞으로 두 달 동맹 간 공동보조(共同步調) 유지와 김정은의 결심 방향에 달렸다. 김정은의 결심을 엄중히 검증(檢證)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선 베풀어도 무방하다. 지금은 생각할 수 없는 것도 생각해야 할 때다. 중요한 건 내부 단합(團合)이다. 우리는 진실의 순간 앞에서 하나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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