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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향기] 최자영 부소장의 "그리스신화 이야기-먹고 먹히는 아버지와 아들"

鶴山 徐 仁 2018. 3. 15. 15:44

그리스신화 이야기-먹고 먹히는 아버지와 아들



최자영


넷향기 회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그리스학연구소 부소장 최자영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그리스신화 이야기 중 '먹고 먹히는 아버지와 아들 : 우라노스(하늘), 크로노스, 제우스' 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동양에는 인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자식 간에 도리 같은 것이지요.
다 지켜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지키는 척 하고 삽니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에는 그런 것이 없어요.
천지가 혼동에 싸여 있을 때 하늘(우라노스)과 땅(가이아)이 저절로 나누어졌어요.
원래 한 몸이던 하늘과 땅은 서로를 연모하여 중간 쯤 되는 데서 가끔 동침을 하곤 했지요.
거기서 자식이 태어났는데, 한 번은 우라노스가 아내인 가이아의 배 속을 들여다보니 손이 백 개 달린 헤카톤케이르 (‘백개의 손’이라는 뜻)가 막 세상에 태어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놀란 우라노스는 헤카톤케이르가 밖으로 나오면 위신이 깎이겠다 싶어서 아예 태어나지 못하도록 손가락으로 쑥 안으로 밀어버렸어요.
그래서 헤카톤케이르는 태어나지도 못하고 어머니인 땅 가이아의 배 속에서 지금도 난리를 치고 지진을 일으키고 있어요.
그런데 우라노스는 바깥 세상에 태어난 자식도 그냥 두지 않고 가이아가 낳는 즉시 잡아다가 저 지하 세계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신의 권좌를 자식들에게 뺏길가봐 걱정을 했던 것이지요.
참다못한 가이아가 우라노스 몰래 자식을 하나 키웠는데 그게 크로노스였습니다.
크로노스가 자라나자 가이아는 낫을 들려서는 이불 안에서 기다리도록 했습니다.
우라노스가 내려와서 동침할 때 그 성기를 잘라버리도록 부탁을 했지요.
그래서 우라노스는 거세되고 그 때 그 성기에서 떨어진 피가 에게 해에 피거품이 되어 떠돌아다니다가, 저 소아시아 반도 아래쪽 섬 키프로스 해변에서 아름답고 성욕으로 똘똘 뭉친 아프로디테(비너스)가 되어 조가비 위에서 탄생했습니다.
아무튼 크로노스는 어머니 가이아의 도움으로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거하고 권좌에 올랐고, 누이 레아를 아내로 맞아 동침을 했습니다.
거기서 자식을 낳는대로 크로노스는 다 잡아먹어버렸습니다.
자기가 했던 것처럼 그의 자식 가운데서 다시 자신의 자리를 채가는 놈이 있을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화가 난 레아가 남편 크로노스 몰래 아들 하나를 키웠는데, 그가 제우스입니다.
레아는 크로노스가 어린 아이의 울음을 듣지 못하도록 요정들에게 꽹과리를 치도록 했고, 저 그리스 남단 크레타 섬의 한 동굴에서 제우스를 키웠습니다.
지금도 크레타 섬에는 제우스 동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 자란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는 지하세계에 갇힌 삼촌들을 불러 올리고 또 크로노스가 삼켜버린 형제들을 도로 게워내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거인들(티탄 혹은 타이탄)의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마침내 크로노스는 제거되고 그 아들 제우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 때부터 제우스가 그 자리를 아무에게도 뺏기지 않고 여전히 세상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명을 어기고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내려다준 적이 있었습니다.
분노한 제우스가 저 흑해 동쪽 코카서스 산맥 바위에 프로메테우스를 결박해 놓고 매일같이 독수리를 보내서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게 했습니다.
밤마다 간은 다시 돋아나고, 그러나 마침내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풀어주게 됩니다.
그 이유인즉, 서로 협상을 한 것이지요.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은 ‘미리(프로) 내다보는 능력(메테우스)’이라는 뜻으로, 그는 미래를 내다 볼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우스에게 어느 여자에게서 자식을 얻으면 제우스의 자리를 꿰찰 것이라는 정보를 알려주는 대신 결박에서 풀려 났던 것입니다.
제우스는 세상 난봉꾼 이었지만 프로메테우스가 일러준 그 바다의 요정과는 절대로 동침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자식이 났다하면 자기 권좌를 뺏긴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부모 자식 간에 인륜이고 천륜이고 아무 것도 없어요.
이것은 신화지만 고대로부터 그리스 인의 가치관을 담고 있는 이야기지요.
그 가치관은 우리의 고전 춘향전, 심청전에 담긴 교조적인 것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실제로 그리스 인 부모 자식 간에 사랑이나 정이 없냐하면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정도로 부모 자식 간에 애증이 함께 합니다.
다만 위선으로 인륜을 가장할 필요가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입장에서 이런 그리스 신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 인륜의 도덕관은 부모에게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군사부일체’, 즉 군주, 스승, 부모는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부모 보다는 군주에 대한 충성이 더 우선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인륜 혹은 천륜 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부모가 아니라 군주 에게로 향하는 것 이었고, 실제로 자식이나 부모는 같이 봉건적 관료체제에서 수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한 매개체, 봉건적 지배체제 유지에 이용되는 이데올로기로 이용되곤 했습니다.
이런 봉건적 이데올로기에는 개인의 권리나 자유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의 신화는 부모와 자식 간에 인륜 도덕의 개념이 없습니다.
철저하게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중심이 되고 부모가 자식에게 특별한 권위를 내세우거나 보답을 요구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이 모양이니 그 다음에 스승이나 군주 같은 존재도 줄줄이 따라 나올 리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개인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어떤 것에도 볼모 잡히지 않습니다.
얼핏 보면 싸가지 없고 인정머리 없어 보이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바로 개인의 인권과 자유에 기초한 민주정의 원리를 제공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거짓 효도의 위선을 보이지 않아도 되고, 또 인권을 침해하는 정치권력 앞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들 수 있는 가치관을 어린 시절부터 신화를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