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에 대해 처음 레드라인을 언급하기 시작한 건 1993년이다. 당시 북한이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서 탈퇴하겠다며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시사하자 빌 클린턴 정부는 북한이 영변 원자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것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하고 북한이 이를 넘을 경우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위협했다.
당시 북한은 이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북한은 NPT 탈퇴를 유보하고 클린턴 정부와 협상을 개시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영변 핵시설 선제타격을 고려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결사 반대로 무산됐다. 이듬해 북한과 미국은 북한이 핵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이 경수형 원자로 발전소 2기를 건립해주고 경제원조로 연간 50만 톤의 중유를 지원해준다는 내용의 제네바 합의를 체결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2002년 북한은 자신들이 비밀리에 핵연료를 재처리해왔음을 밝히며 핵 동결 해제를 선언하고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공개적으로 가동했다. 기존 합의를 파기한 것은 물론 레드라인을 명백히 넘어선 행위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탄력을 받은 북한은 한걸음 더 나아가 2006년 첫 핵실험을 실시했다. 그러나 미국 부시 행정부는 이에 대해 설명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나 핵물질을 다른 국가 또는 비국가 단체에 전달하는 것은 미국에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되며 북한은 그런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후 미국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2002년 북한은 자신들이 비밀리에 핵연료를 재처리해왔음을 밝히며 핵 동결 해제를 선언하고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공개적으로 가동했다. 기존 합의를 파기한 것은 물론 레드라인을 명백히 넘어선 행위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탄력을 받은 북한은 한걸음 더 나아가 2006년 첫 핵실험을 실시했다. 그러나 미국 부시 행정부는 이에 대해 설명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나 핵물질을 다른 국가 또는 비국가 단체에 전달하는 것은 미국에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되며 북한은 그런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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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때 미국이 행동을 취하지 않았던 것이 북한의 계속되는 핵 실험을 조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 싱크탱크 전략연구재단의 브루노 테르트레 이사는 "미국이 사전에 경고하고도 행동을 보이지 않은 것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 추진을 가속화했을 것"이라며 "2006년 핵실험 이후 미국이 '핵물질 전달이 위협'이라고 경고한 것을 북한은 핵실험 자체는 해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도 북한 타격을 포기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말 홍콩에서 가진 한 비공개 간담회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금 북한 상황을 보면 당시 (포기) 결정이 두고두고 짐으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클린턴 전 대통령도 북한 타격을 포기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말 홍콩에서 가진 한 비공개 간담회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금 북한 상황을 보면 당시 (포기) 결정이 두고두고 짐으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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