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 (슥 1:1-6)

鶴山 徐 仁 2017. 8. 24. 10:31
8월 24일 (목)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 (슥 1:1-6)
  
 

1. 다리오왕 이년 팔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나 여호와가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3.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 열조가 어디 있느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6. 내가 종 선지자들에게 명한 내 말과 내 전례들이 어찌 네 열조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다 하셨느니라 하라

 
  
  
 

스가랴는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느 12:16), 학개보다 두 달 정도 늦은 다리오 왕 2년(주전 520년) 8월에 예언활동을 시작합니다(슥 1:1, 학 1:1).
학개가 대략 4개월(학 1:1, 2:10)이라는 짧은 기간 활동한 반면 스가랴는 거의 2년 1개월 동안(슥 1:1, 7:1) 예언활동을 했고, 학개가 주로 성전 재건에 초점을 맞추고 예언했다면 스가랴는 성전 재건뿐 아니라 성전 재건 후에 있을예루살렘의 회복과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 역사에도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한편 여기에는 메시아의 초림과 재림, 즉 메시아 왕국에 대한 언급이 많고 환상과 상징 등이 풍부하여 <구약의 묵시록>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스가랴>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로 이는 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신다>고 선포하는 그의 예언과도 무관치 않은 계시적 이름인 것 같습니다. <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2-3절).
​이처럼 스가랴는 당시 영적인 태만에 빠져 성전 재건을 중단한 백성들에게 과거 열조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는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함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은 것을 상기시키며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축복을 받기 위해 속히 돌아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촉구합니다. 스가랴서는 크게 둘로, 즉 성전 공사 중의 예언과 성전 재건 이후의 예언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주로 환상과 금식에 대한 문답으로 이뤄져 있고, 후반부는 메시아 왕국의 실현과 그 왕국의 영광에 관해 말씀합니다.
​시가 있고, 산문이 있는 등 문체가 다양하고,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상징적으로 불분명한 구절들이 많아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성경으로도 유명합니다. 본서에서 스가랴 선지자가 미리 본 예수님의 모습은 보좌에 앉으신 통치자의 모습, 거룩한 제사장의 모습, 나귀를 탄 절대자의 모습 등으로 나타납니다. 모쪼록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회복되는 종말론적 신앙의 복원을 기대합니다.


 
  
  
 

-여러 면에서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를 비교해 보십시오.
-학개 선지자는 현실주의, 스가랴 선지자는 이상주의에 가깝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하나님이 <본받지 말라>하신 이스라엘 조상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4절)


 
  
  
 

주님, 다시금 오늘부터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듣습니다.
학개보다 훨씬 더 종말론적 예언에 헌신한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 더욱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품게 해 주시옵소서. 오직 이 세상의 삶에만 집착하며 안주하며 살아가는 저희의 병든 신앙을 깨우치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새롭게 회복하며 늘 깨어 근신하는 신앙인으로 새로워지게 해주시옵소서.


 
  
   
 

기도는 애써 해야 하는 힘 드는 사역이다.

기도도 일입니다.
기도 역시 힘이 들고 공이 드는 사역인 것입니다.
기도가 성도의 다른 충성이나 봉사에 비해서
제일 들어가는 것 없고 공짜로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일인 줄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기도는 나이 들고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이 없어질 때에 가서
신자로서 그저 할 수 있는 가장 힘 안 드는 일이라고
호리라도 착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왜냐하면 기도 역시 애써 해야 하는
아주 힘 드는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석기현 목사의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에서-

 
   
 
  
 


남을 위하여 기도해 주는 것과
남이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것 이 두 가지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합니다.
그래서 전도회의 기도회나 새벽 기도회에
비록 모이는 사람이 좀 적다하더라도 그 모임을 결코
다른 예배나 봉사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여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몸으로 힘써서 일하는 것만이 서로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코 아닙니다.
떨어져 있을 때라도 서로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는 것이
피차에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심령으로 깊이 공감하고
진정한 동역자로 늘 교통하는 청지기들이 되십시오.
기도의 지원을 서로 잊지 않고 감사하면서.


 
   
    
 

시편 116: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I love the LORD, for he heard my voice; he heard my cry for mercy.

 
    
 
  
 비젼교회 윤여재 목사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