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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社會 關係

'촛불세력'의 전략에 굴복하면 결과는 死亡이다!

鶴山 徐 仁 2016. 12. 6. 16:35

조갑제닷컴



'촛불세력'의 전략에 굴복하면 결과는 死亡이다! 

     

일본의 오사카성의 전투는 敵의 약속만 믿고 지도자와 국민이 적에게 타협하면 그 결과는 죽음 뿐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전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김필재   



● 오사카성(大阪城) 전투의 교훈


日本의 오사카성(大阪城)은 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이 천하제일의 근거지로 삼고자 15년의 세월에 걸쳐 축성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로 현재 나고야(名古屋)성, 구마모토(熊本)성과 함께 일본의 3대 명성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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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성은 20여 미터 높이의 가파른 성벽과 내·외곽의 2중 해자(垓子)로 둘러싸여 있다.

외곽은 ‘소토보리(外堀)’, 내곽은 ‘우치보리(内堀)’라고 불리는 오사카성의 2중 垓子는 유사시 敵軍의 공격을 지연·저지·방해하는 인공장애물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이후 戰爭으로 점철된 일본 역사에서 이 오사카성의 垓子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 적이 있었다.

徳川家康(도쿠가와 이에야스)과 豊臣秀頼(도요토미 히데요리, 豊臣秀吉의 아들)가 맞붙은 ‘오사카 여름의 진’(大阪城夏の陣, 1614년 10월~1615년 6월) 전쟁 당시, 徳川 측은 밖에서 오사카 성을 둘러싸고 豊臣 측을 고사(枯死)시키려 했다.

그러나 거대한 2중 垓子는 徳川군대가 쉽게 건널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에 徳川 측은 지구전을 펼치며 강온양면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즉 秀頼에게 ‘和親’을 제의하면서 지금으로 치면 ‘平和체제’에 합의한 것이다. 당시 徳川이 내건 화친(和親) 조건 중 하나는 오사카성의 소토보리를 메우면 자신의 군대를 퇴각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전쟁경험이 전혀 없고 오사카 성 밖에도 나가보지 못하던 秀頼는 이 황당한 조건을 수락하고 강화를 맺게 된다.

그러나 徳川은 재빠르게 우치보리까지 메워, 오사카성은 垓子없는 성이 되어버렸다. 秀頼의 상황판단 능력이 이 정도니, 성안의 사람들은 도저히 戰爭에서 이길 수가 없었다.

거대한 垓子가 없는 오사카성은 더 이상 難攻不落이 아니었다. 뒤늦게 자신이 저지를 과오를 깨달은 秀頼는 결국 割腹(할복)을 함으로써 20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오사카성의 전투는 敵의 약속만 믿고 지도자와 국민이 적에게 타협하면 그 결과는 죽음 뿐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전하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 공산세력의 협상전략과 유사한 촛불세력의 전략

1951년 7월부터 1952년 7월까지 2년 동안 정전협상 기간 중 UN 측 수석대표를 역임한 조이 제독(C. Turner Joy)이 저술한 《공산주의자들은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에는 북한 등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사항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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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제독.


첫째, 결론이 담긴 의제(속임수가 숨어 있는 의제)를 제시한다. 협상이 개시되면 그들의 기본 목적에 유리한 결론들로 구성된 의제를 찾는다.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을 협상의제로 제시해 놓고 그 전제 위에서 모든 논의를 시작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둘째, 계산된 돌발사건을 일으킨다. 그들은 협상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거나 기본적인 선전 목적으로 또는 이 두 가지를 다 얻으려고 계산된 ‘돌발사건’들을 일으킨다. 예컨대 정전협상 당시 공산측은 UN군이 중립지대인 개성지역에서 중공군 순찰대를 공격했다거나, 유엔군 공군이 개성을 폭격했다고 날조했다.
 
셋째, 장애물을 조성해 협상을 지연시킨다.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들의 가장 유명한 협상전술 중 하나는 협상진행을 지연시키는 전술이다. 그들은 서구 사람들의 일을 일단 시작하면 그 일을 완성하려는 조급성을 최대한 이용해 이득을 보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2+2=6 이라고 제안해 놓고는 합의를 끝없이 지연시킴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2+2=5에 동의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넷째, 합의를 의도적으로 위반하기 위한 술수를 획책한다. 공산주의자들은 협상을 하다보면 본의와 달리 불만족스러운 협상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지금은 할 수 없이 합의를 하되, 나중에 지키지 않으려고 생각하는 약속은 가급적 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다섯째, 거부권 행사와 논점 흐리기를 시도한다. 공산측은 자신들을 제한하게 될 합의사항들을 회피하기 위해 모든 합의사항 집행기구에서 거부권을 갖기 위해 시도한다. 예컨대, 군사정전위원회(MAC)와 중립국감독위원회(NNSC) 모든 활동은 만장일치제를 주장하거나, 공중정찰 허용을 거부한 것이다. 또 북한 내 군용비행장 건설을 허용하는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카드로 중립국감독위원회 공산 측 국가로 소련을 내세웠다. UN군 측이 소련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인지하고, 이를 철회하는 대가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한 것이다.

여섯째. 진실을 왜곡하고, 상대방의 양보를 악용한다. 공산주의자들이 진실에 대처하는 수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진실을 부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들은 前者 보다는 後者의 전술을 훨씬 즐겨 구사한다. 또한 공산주의자들은 상대방이 양보하면 약하다는 징표로 보고 더욱 완강한 태도로 나온다. 서방사람들은 공산 측의 제안을 일부 받아들이면 그들도 상응하는 반응을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이다. 그들이 악용하기 때문이다.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들에게 1인치를 양보하면 그들은 1마일 을 빼앗으려 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일곱째, 약속을 파기하고, 상대방을 지치게 만든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미 합의한 내용을 부인하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합의가 문서화된 것이라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경우 공산주의자들은 간단하게 당신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합의가 공산주의자에게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단지 그것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때뿐이다.

조이 제독은 여기에서 또 하나의 명언을 남겼다. “공산주의자의 약속은 어떤 방식이든 절대로 믿지 말라. 공산주의자의 행동만을 믿어라” 또한 공산주의자들이 모든 다른 수법과 연계해 늘 함께 쓰는 수법은 그들의 요구를 끝없이 반복하는 책략이다. 끊임없이 물방울을 떨어져 돌이 침식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처럼 공산주의자들의 지루한 수법으로 인해 UN군 측은 결국 정전기간 중 비행장건설 금지 및 정전협정의 공중감시 원칙을 포기했다.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 2016-12-06, 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