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이 땅에는 오직 저주와 속임과 도둑질 뿐이라!

鶴山 徐 仁 2016. 11. 24. 11:20
11월 24일 (목)
이 땅에는 오직 저주와 속임과 도둑질 뿐이라! (호세아 4:1-5)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4.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5.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본문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고소>입니다. 1절에 나오는 <논쟁>이란 히브리말 <리이브>로, <논쟁>이란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법적인 <고소>, <고발>이 더 적절한 번역입니다. 호세아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송사를 들어보십시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죄가 죄를 뒤이음이라>(1-2절).

어쩌면 이토록 오늘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대한 고발처럼 들릴까요? 2천 7백 년 전 이스라엘이라기보다 그대로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이요 실상이라는 생각 안 드십니까?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뿌리 채 흔들리고 정권 실세들이 지금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는 온통 <저주와 속임과 도둑질과 거짓 신과의 수작> 뿐입니다. 이런 나라는 결국 황폐해집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니라>(3절).

그래서 지금 우리는 허탈과 회의와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배신감에 몸을 떨며 수치심과 자괴감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백만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가 촛불을 밝히고 하야와 탄핵을 외쳐보지만 메아리는 없고 공허함만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정말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는 말씀이 우리의 현실이 될까 심히 두렵습니다. 권력에 속고 도둑들에게 당한 국민들의 마음을 성령께서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이 땅, 이 나라에서 음습한 악귀의 기운이 물러가도록 모두 성령 충만합시다. 하루 속히 우리 사회에 공의가 실현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힘과 뜻을 모읍시다.

 
  
  
 

-호세아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송사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고발하신 호세아 시대 이스라엘의 죄악상과 현재 우리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비교해 보십시오.
-범죄한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정리해 보십시오.

 
  
  
 

주님, 어쩌면 아득한 과거 이스라엘의 모습과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이 이렇게도 같을 수가 있는지요? 호세아 시대로부터 2천 7백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옛 모습 그대로입니다. 속임도 거짓도 도둑질도 변한 게 없습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이 죄악의 악순환, 죄가 죄를 부르는 저주의 악순환에서 구해 주시옵소서. 이번만큼은 나라가 새로워지고 우리 사회가 바뀌는 참된 변혁과 개혁이 있게 해 주시옵소서.

 
  
   
 

시련 속에 감사

시련이란 견디기 어려운 고난입니다. 견디기가 어렵기에 시련이요, 고통스럽기에 시련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련에 감사해야 합니다. 시련에 대해 감사하려면 시련에 대해 공부해야 합니다. 시련이 무엇이며, 무슨 일을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시련이 한 번 지나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시련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시련이란 검은 보자기에 싸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선물입니다. 그렇지만 그 진가를 알면 쉽게 거부할 수 없습니다.
-강준민의 [감사는 숲을 담은 씨앗입니다] 중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시련의 과정 없이 선한 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시련의 과정을 통해서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겼고, 주님의 손길을 놓치 않는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시련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나의 미련함일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시는 방법으로 시련과 같은 고통을 줍니다. 시련이 찾아올 때 우리는 주의 보좌로 나아가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거기에 살아가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변정희 작가

 
    
 
  
 요나3일영성원 장덕봉 목사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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