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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孔子를 극복해야 동아시아가 화목하다

鶴山 徐 仁 2016. 10. 23. 09:19

[朝鮮칼럼 The Column] 孔子를 극복해야 동아시아가 화목하다

  •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 2016.10.22 03:06

시진핑이 강조한 儒敎 가르침 중 '상호 신뢰 바탕의 상하 관계'는 중국 중심 조공질서의 강요일 뿐
한국 사드 배치에 으름장 놓고 이웃 나라 바다 짓밟는 태도 엄중히 다루는 對中 정책 펴야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 5대 명산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태산(泰山)은 10월 첫째 주 국경절(國慶節) 연휴를 맞아 각지에서 모인 등반객들로 북적였다. 4시간에 걸쳐 7412개의 돌계단을 힘겹게 올라 1532m 정상의 옥황정(玉皇頂)에 다다랐다. 기원전 219년 진나라 시황제(始皇帝)를 시작으로 한나라 무제(武帝), 청나라 건륭제(乾隆帝)를 포함한 많은 황제가 태산에 올라 봉선(封禪) 의식을 행했다. 인근에 있는 공자(孔子)의 탄생지 취푸(曲阜) 역시 중국인들이 매우 성스럽게 여기는 곳이다. 작은 도시 인구 64만명 중에서 5분의 1을 차지하는 공자의 직계 후손들은 공씨 성을 지니고 있음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왕권이 강력해진 송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꾸며지기 시작한 공묘(孔廟·공자 사당)의 규모는 대단했다. 한참을 걸어 역대 주요 왕들이 증축한 커다란 여섯 개의 문을 통과한 후에야 2500년 전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대성전(大成殿)에 도달했다.

만세사표(萬世師表) 사문재자(斯文在玆). 공자는 세상 모두의 스승이요, 중국의 문화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는 현판 글씨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드높은 공자의 위상을 체감하게 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강희제(康熙帝)가 1686년에 공자 사당에 세운 기념비의 돌은 무게 65t으로, 베이징에서 취푸까지 운반하는 데 1년이 걸렸다고 한다. 백성의 다수를 차지하던 한족(漢族)의 민심을 얻기 위해 공자의 통치 철학을 빌려왔던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취임 첫해인 2013년 어김없이 이곳을 찾았다. 예(禮)를 통해 인(仁)을 실천하고자 한 공자의 가르침은 그 내용이 방대하지만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상하 관계'를 강조한 대목은 중국의 역대 왕조가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여 통치자의 지배 이념으로 정당화하는 데 긴요하게 활용되었다.

공자의 가르침을 중국의 대외정책에 응용한 것이 친성혜용(親誠惠容) 원칙이다. 이웃 나라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성의를 다하며 상대방을 포용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자국 외교 노선의 근간인 '평화공존 5원칙'을 다듬어 2014년 발표한 '신(新)6대 원칙'의 핵심은 나라마다 주권이 평등하고, 서로 안전을 위협하지 않으며, 협력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선린 우호 관계가 정착되려면 '서로 다른 것을 존중하면서 공통의 이익을 확대하는(求同存異·구동존이)'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이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으려고 미사일 방어 체계를 놓겠다는데 용납할 수 없다면서 으름장을 놓거나 자국의 어선들이 이웃 나라의 바다를 유린하고 폭력을 행사해도 사과 한마디 없는 중국의 태도는 주변의 작은 나라를 대하던 중화사상(中華思想)과 조공질서(朝貢秩序)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자신에 대한 주권 개입은 반대하면서 이웃에 대한 주권을 자의적으로 침해하는 중국에 대해 과연 한국은 자신의 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기울여왔는가. 북한이라는 난제를 다루면서 반미(反美)와 반일(反日) 정서가 우방 간의 공조를 저해하는 일이 빈번했던 것 이상으로 막연한 친중(親中) 정서가 한국 외교의 원리원칙과 입장을 개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근거도 없는 광우병 괴담을 시작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3년간 반대하던 사람들이 똑같은 협정을 중국과 맺을 때는 별말이 없었다. 일본 자위대가 독도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근거가 희박한) 가설에는 집착하면서 중국 정부가 북한의 핵개발과 대남 도발에도 계속해서 북한에 경제 지원을 하는 현실을 좀 더 엄중하게 다루는 대중(對中) 정책은 펴지 못했다.

나라의 존망이 달린 안보의 위태로움을 무릅쓰면서까지 상대국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 유교의 가르침은 아닐 것이다. 핵과 미사일 위협을 지렛대로 내세워 한국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고 내분을 조장하려는 북한 정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예의(?)는 공자와 유교의 법도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편의주의(便宜主義) 정치의 산물이다. 북한이 반발한다고 인권 문제를 방치하고, 안보 태세를 등한시하면서 '한시적 평화'에 기댄 채 더 큰 우환이 자라나도록 방치했다. 중국이라는 덩치가 부담스러워 할 말과 해야 할 조치를 유보하고 북한을 끊임없이 달래고 도와야 언젠가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것은 남의 자비로운 선택에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형국이다. 정치 권력은 하늘이 아닌 민심에서 나오고, 평화는 도덕이 아닌 능력과 냉철한 전략의 조합에서 비롯된다. 과거의 공자를 현재에 당면한 문제에 맞게 새롭게 투영해야 한다. 중국이 못한다면 우리라도 먼저 공자를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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