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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개 유리건판 사진들이 처음으로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식민지시대 유리건판 사진으로
이를 확대하면 '光化門'이란 현액 글씨가 뚜렷하다.
나아가 그 전면 월대를 포함한 광화문 전경이 비교적 잘 드러난다.
열린 우협문 안으로 보이는 흰색 가건물 지붕 일부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당시 건물로 추정된다. 이로써 보건대 조선총독부 청사 착공 직후에 촬영했다고 판단된다.
경복궁 자경전. 이곳은 이후 두 차례 화재를 만났다가 1888년(고종 15) 재건됐다.
꽃담으로 유명한 이곳 서측 담장에는 꽃 문양이 베풀어져 있다.
문양은 꽃 아홉 개와 문자 아홉 개가 서로 짝을 이루고, 나머지 한 개는
현재의 자경전 꽃담에는 아홉 개가 아닌 여덟 개 꽃 문양이 남아 있다.
윗쪽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식민지시대 유리건판 사진이며 아래쪽은 그 현재 모습.
창덕궁 소장품으로 현재 여주영릉전시관과 창덕궁에 전시 중이다.
현재 이 앙부일구는 다리를 포함한 몸체가 받침돌 위에 노출돼 있으나
(오른쪽) 일제강점기 때 유리건판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는 받침돌에
나아가 대석 옆쪽으로 빗물이 빠져나오게 하는 구멍이 뚫려 있음이 확인된다.
(왼쪽과 가운데) 앙부일구 원래 모습을 고증할 수 있는 사진이다.
사진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이들 유리건판 사진에서 자격루는 청동으로 만든 파수호 하나, 수수호 둘,
식민지시대 유리건판에 촬영된 경복궁 근정전(윗쪽)과 덕수궁 중화전(가운데) 작품.
이에는 한결같이 해와 달 부분에 금속판이 붙어 있으나
현재의 일월오봉병(아래쪽)에는 이 금속판이 없다.
일본 신도(神道) 방식으로 식장이 차려지고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
건청궁은 명성황후 민비가 시해당한 현장으로 총독부를 이를 모두 철거하고
전시체제가 확산됨에 따라 총독부미술관을 짓는 데 그쳤다.
경복궁 동쪽 궁성과 건춘문, 동십자각 일대 전경. 왼편에 중학천이 흐르고
그 동편에는 민가들이 밀집해 있다.
1929년 박람회로 궁성이 파괴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궁장 대부분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지만 그 바로 옆은 무너져 있다.
이 붕괴사고는 1926년 4월27일 오전 10시에 일어났으며
그 원인은 영추문 바로 옆을 종점으로 해서 운행된
전차의 진동 때문이라고 매일신문 4월29일자 기사에서 확인된다
희정당에 도착하는 장면. 자동차에서 내리는 여인은 이왕세자비 이방자.
어느 날 창덕궁 인정전 앞에서 기념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첫줄 왼쪽부터 정무총감 부인, 사이토 총독 부인, 의친왕비, 이방자 여사,
순정효황후, 순종, 이왕세자, 의친왕, 사이토 총독, 정무총감 등의 순서다.
건물은 영화당이며, 맨 앞부터 뒤로 순정효황후, 이왕세자, 이방자, 덕혜옹주 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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