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공주 미륵사 창건’ 사실 아니다
입력 2009-01-20 02:58:00 수정 2009-09-23 02: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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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급 금제사리봉안기와 금제사리항아리 국보 11호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석탑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위쪽)와 금제사리항아리.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미륵사를 창건한 백제 무왕의 왕후가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 사택적덕의 딸이라고 기록돼 있다. 사진 제공 문화재청
미륵사지석탑서 금제사리호-봉안기 발견… “백제귀족 딸 왕후가 639년 창건”
1370년 만에 베일 벗은 ‘백제 미륵사의 비밀’
전래 설화 ‘서동요’의 주인공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과 선화공주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전북 익산시 미륵사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귀족의 딸인 백제 왕후가 창건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륵사가 639년 창건됐다는 기록도 함께 발견됐다. 백제 최대 규모의 사찰인 미륵사의 창건자와 창건 연대, 내력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일 “국보 11호 미륵사지석탑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탑 1층 심주(석탑의 중심 기둥) 안의 사리공(사리장엄구를 넣는 공간)을 발견했으며 이 안에서 국보급 금제사리호와 미륵사의 창건자 등 내력이 적힌 금제사리봉안기(記) 등 유물 505점을 한꺼번에 발견했다”고 밝혔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판독 결과 금제사리봉안기에는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佐平·백제 귀족) 사택적덕(沙F積德)의 따님으로…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세우시고, 기해년(639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삼국유사의 미륵사 창건 설화에는 백제 무왕이 서동요를 지어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결혼한 뒤 왕후의 부탁으로 절을 창건했다고 기록돼 있으나, 이번 금제사리봉안기의 기록으로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서동요’ 설화도 후대의 창작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나온 금제사리호는 높이 13cm의 항아리로 국제적 수준의 백제 공예 기술을 보여주는 걸작이다.미륵사지석탑은 탑 형식이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목탑 형식으로 표현한 국내 최고(最古)의 석탑이다. 미륵사지는 신라 황룡사지보다 크며 면적이 약 21만 m²에 이른다.
익산=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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