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스크랩] 환국 - 배달 - 고조선, 한민족 상고사 [환단고기 동영상]

鶴山 徐 仁 2015. 3. 19. 20:37

 환국 - 배달 - 고조선, 한민족 상고사 [환단고기 동영상]

 

 

지금까지 살펴 봤던 왜곡된 우리 역사의 모순들..

그렇다면 우리 역사의 참 모습은 무엇일까요?

 

 

 

< 역사스셜 환단고기 동영상 >

 

 

 

 

우리나라의 환국, 배달, 고조선의 역사에 대해 얘기하려면

환단고기라는 책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밑의 동영상을 보시거나,

환단고기에 대해 제가 간략히 쓴 글을 보시면 쉽게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민족의 참 역사서 환단고기' 링크 :  http://cafe.daum.net/historygift/8JaW/15

 


환단고기는 네 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환국과 배달국의 역사를 기록한 삼성기, 단군조선의 역사가 담겨있는 단군세기, 고구려의 전신인 북부여의 역사를 기록한 북부여기가 있고, 마지막으로 태백일사에는 상고시대부터 고려까지 역사가 담겨있다. 그리고 이 네 권의 책을 1911년 계연수 선생이 합본한 것을 1978년 이유립 선생이 엮었다. 약 60여년이 지나서 발표된 것은 계연수선생이 처음 합본한 때에는 일제침략하에 있었기 때문에, 환단고기도 다른 상고사서와 마찬가지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 속엔 우리들이 모르는 엄청난 역사가 담겨있다. 환단고기는 우리민족의 역사는 반만년이 아니라 일만 년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말은 단군조선이 있기 이전에 5천년의 역사가 더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한국사는 반만년 역사라고는 하지만《삼국사기》《삼국유사》등 사대주의 사관을 비롯한 3독(왜독, 중독, 양독) 등에 의해 2000년 역사로 스스로 추락한 상태이다. 우리나라의 현 국사 국정교과서는 실증사학이란 명목 하에 우리나라의 실존하였던 단군마저 신화로 치부하였고, 스스로 5000년 역사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2000년 역사만 배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단고기는 우리의 올바른 머리 역사를 찾고 있는 몇 안남은 상고사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고)조선1) (1) 우리가 말하는 고조선이란 말은 후대에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이전에 우리나라에는 어떠한 나라가 있었을까? 우리나라의 국통을 살펴보면, (고)조선 이전에 두 나라가 더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초의 환국이 있었고, 환국의 뒤를 이어 신시라고 불리는 배달국이 있었다. 우리가 배달민족이라 하는 이유도 (고)조선 이전에 배달국이라는 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배달국의 1565년 역사가 점점 자연적으로 사라지고 있을 무렵 단군조선이 나타난다. 그 후 북부여, 북부여의 뒤를 이은 고구려와 대진국이라는 발해(사실 발해는 지나가 부르는 용어이고 우리는 발해가 아니라 대진국이라 부르는 것이 더 맞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의 역사로 연결된다. 이런 세계 최고(最古)의 장구한 역사 중 우리가 평소에 잘 알지 못하는 상고시대가 가장 찬란하였다.

 

환단고기에서 우리민족의 시작은 5천년 전의 (고)조선이 아니라 1만 년 전 나타난 세계 최초의 국가 환국임을 알 수 있다. 환국은 3301년 동안 7명의 환인이 통치했다고 한다. 그 후 신시배달국은 18명의 환웅이 1565년 이상 다스렸다고 한다. 그렇게 환국과 신시배달이 5000년 이상 이어진 후, 마침내 단군조선이 탄생하는데 47명의 단군이 2096년을 통치했다고 한다. 여기서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환국만 해도 어떻게 7명의 환인이 3301년 동안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까. 많이 살아야 100세 남짓 사는 현재,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문제지만 1세를 개인의 나이가 아닌 하나의 왕조 즉, 한 나라의 역사로 생각하면 문제는 쉽게 풀린다.

환단고기에 담겨있는 우리민족의 활동무대는 반도사관에 물든 현대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다. 이와 관련된 삼성기에 수록된 기록을 잠시 소개하자면, 파니류산 아래 환인의 나라가 있는데 천해 동쪽 땅이며 파나류의 나라라고도 한다. 그 땅의 넓이다 남북 5만 리, 동서 2만여 리에 이른다. 이를 모두 합하여 환국이라 하고 12개의 국가로 나뉘어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이 지나의 역사책에도 삼성기전과 같이 환국과 그 12연방국이 실려 있다는 것은 곧 이들 나라가 역사상으로 실존 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기원의 땅이라 할 수 있는 바이칼 호수의 사람들은 코리족으로 불리며 우리 민족과 상당한 부분이 유사하다. 삼성기에서 말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1만 년 전에 탄생한 환국의 영토는 아시아를 넘어선다. 이 땅은 12개의 연방국으로 이루어 졌다고 한다. 12개의 나라 중 수밀이국이란 나라가 있는데, 신기하게도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 중 일부는 수밀이국을 고대 수메르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세계 사학계에서 현재 최고(最古)로 인정받은 메소피타문명을 일으켰던 수메르 민족은 우리와 그 기원이 같은, 달리말하면 우리 민족이라는 가설이 성립된다. 실제로 여러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한국인과 수메르인의 인종, 언어, 문자, 민속 등 많은 면에서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더욱이 수메르인들이 동방의 문자와 언어를 가지고 동방에서 들어왔다는 유입설을 보아도 우리민족과 수메르인의 관계설은 신빙성이 더해진다.

환단고기는 이렇게 방대한 지리적 크기뿐만 아니라, 우리가 전설속의 인물이라고만 자각하고 있는 위대한 영웅들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치우천황과 앞에서 언급한 태호복희씨인데, 그 중 치우천황은 한일 월드컵 때 태극기와 함께 붉은 악마의 응원기로 쓰이기도 하면서 월드컵 이후 한국인에게 더욱 친숙해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붉은 악마의 응원기에 그려져 있는 것처럼 도깨비와 같은 모습의 사람으로 그려지는 치우천황의 진짜 모습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또 그 인물이 지나신화 속의 인물이 아닌, 실제로 존재한 우리나라 배달국시대의 임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배달국의 14대 환웅인 치우천황은 5천년 전에 이미 철제무기를 사용했던 사람으로 전쟁의 신으로 전해지며, 대표적으로 이순신 장군도 왜적과 싸울 때 치우천황에게 승리를 원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삼성기전에 보면 자오지 환웅이 있었다. 머리는 구리로 두르고 이마를 쇠로 가린 모습이었으며 쇠로 무기를 만들어 내니, 온천하가 두려워했고 그를 치우천황이라 불렀다. 이것은 삼성기전에서 치우천황을 묘사한 모습이다. 여기서 치우천황은 실존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치우천황을 이렇게 과장되게 표현한 것을 보면 그 때 당시 치우천황의 힘과 세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 할 수 있다. 그 예로 지나의 상고사를 보면, 지나의 헌원황제가 사실은 치우천황의 신하였으며 치우천황에게 도망쳐 그와 수십 번을 싸웠지만, 단 한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환단고기는 이런 치우와 싸웠던 지나의 역사도 우리민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예로, 태호복희는 앞서 말했듯이 지나인들이 자신들의 시조라고 말하는 삼황 중 한명이다. 그런데 그 태호복희씨는 배달국 5대 태우의 환웅의 아들이다. 그가 환웅의 아들이라면 지나의 역사는 우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지나족은 현재 우리나라 태극기의 건곤감리가 포함되어 있는 팔괘를 자기 조상인 태호복희씨가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우리나라가 건곤감리를 자신 고유의 것을 따 온 것으로 취급하며 태극기를 자신들의 국기로 지정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역사를 알고 보면 지나족이 하는 소리는 억지이며 왜곡된 역사관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환단고기는 하늘의 백성인 우리 민족이 광활한 영토를 무대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며 활약했던 때의 얘기가 담겨있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환단고기는 한국인의 자긍심과 긍지를 채워주고 진정한 우리나라의 뿌리를 밝혀주는 훌륭한 사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환단고기에 실린 것처럼, 찬란하고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역사를 현대인은 모르고 있는 까닭이 무엇일까?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이렇게 심하게 왜곡된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역사는 크게 삼독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삼독은 왜독, 중독, 양독인데, 왜독은 일제에 의한 식민주의 사관, 중독은 사대주의 사관, 양독은 서양에서 들어온 실증주의 사관으로 말할 수 있다. 왜독이란 삼독 중 가장 심한 것으로 일제식민학자들과 친일파들에 의해 우리나라 역사가 왜곡된 것을 말한다. 안타깝고 놀라운 점은, 왜독에 오염된 식민주의 사관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현 교과서를 만들며 우리나라 역사관에 큰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중독이란 지나역사학자들과 우리나라의 사대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된 것으로, 흔히 우리나라를 소중화라고 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이에 속한다. 이는 우리민족의 주체정신보다, 지나인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는 것으로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대표적이다. 또한 실제 지나족이 우리나라에서 갈라져 온 민족이란 사실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양독이란 서구 실증주의 사관에 지나치게 왜곡된 학자들과 서구종교를 맹신하는 종교인에 의해 행해진 왜곡이다. 실제로 양독이 지나친 사람들 중 우리나라의 국조인 단군상을 신화로 치부하는 것도 모자라 목을 자르는 범행까지 저질렀다. 이 중 가장 심한 것은 왜독으로 우리나라 역사서 26만권을 일제시대 때 태우고, 환국을 환인으로 변조하여 나라를 없애고 한 인물로 가장해 버리는 등 많은 왜곡을 저질렀다. 수많은 전쟁과 약탈로 잃어버린 그나마 남아있는 상고사 책들마저 일본인은 원활한 식민통치를 목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철저히 왜곡시켜 무려 26만권을 약탈하여 현재 남산 자리에서 태워버린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학계 뿐 아니라 민족관에도 지금 현재까지도 큰 영향을 미친 일이라 할 수 있다. 광개토대왕비1) (1) 광개토대왕비문은 임나일본부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연관성이 있다. 임나일 본부설은 일본이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하여 백제, 가야, 신라를 지배하였고, 특히 가야는 6세기까지 지배하였다는 설이다. 일본인은 이것을 광개토대왕비문으로 입증하려 하였는데, 1800 년 말 일본 육군참모본부의 사카와 중위가 광개토왕비를 발견하고 일본에 유리하도록 "來" "年" 등 약 25 자를 변조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행위들은 한국에대한 제국주의적 침략행위를 정당화 하려는 목적이었다.), 임나일본부설을 비롯해 근래의 일본 역사왜곡교과서 사건만 보더라도 왜독의 심각성은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환단고기가 우리나라의 역사를 입증할만한 얼마 남지 않은 중요한 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널리 보급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우리나라 사학계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를 비롯한 강단사학계가 인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단고기가 근대적인 용어가 사용되었고 환단고기에 나오는 사서들은 현존하지 않거나 서명만 남아있어 그 이름만 도용해서 위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환단고기의 의미를 축소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강단사학자에서 보는 환단고기의 입장은 지엽적인 것에 지나지 않다. 실제로 근대적인 용어가 사용되고 현대의문법, 사견들이 들어간 것은 현대에 와서 새롭게 번역되는 과정에서 작가의 사견이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재로 중국의 사서 중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사기’ 마저도 후대의 곡필이 여러 번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작가의 조그만 사견과 같은 전체가 아닌 일부분을 가지고 따지려 든다면, 전 세계에서 진짜 역사서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또한 환단고기에 나오는 사서들이 대부분 현존하지 않거나 서명만 남아있다는 것은 일제시대 때 일본이 우리나라 역사를 축소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상고사서 26만권을 태웠고 그 중 중요한 상고사서는 현재 일본 황실도서관에 보관되는 행위 등으로 많은 사서가 한국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단고기와 같은 방대한 역사를 서술함에도 지나족의 사서와 많은 부분이 일치한 것으로 보면 환단고기의 저자는 점쟁이이며, 소설가임에 틀림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환단고기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려고만 나설 것이 아니라, 환단고기가 가지는 의의와 그 가치를 먼저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암선생은 “국유형(國猶形)하고 사유혼(史猶魂)이다”라고 하셨다. 나라 국(國), 같을 유(猶), 몸뚱아리 형(形), 역사 사(史), 같을 유(猶), 혼 혼(魂). 인간에게 있어서 나라라는 것은 몸뚱아리와 같고, 나라의 역사라는 것은, 우리 몸에 있는 혼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가 없는 나라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육체만 있을 뿐 혼이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즉, 역사를 잃어버렸다고 하면 그 민족의 혼이 빠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재 신채호 선생은 식민지시기에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귀에, 애국이란 말이 생생하게 울려 퍼지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그 눈에, 나라(國)라는 글자가 배회하게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2000만 동포의 손이 항상 나라를 위해 봉사케 할 것인가? 오직 역사로 할 뿐이니라.”라고 하셨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역사는 육체만 겨우 힘들게 보존될 뿐 혼이 없다. 그나마 남아있는 육체마저 우리에게서 갈라져 나온 지나족에게 빼앗길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이후에 지나적인 사대주의 사관에 의해서 한 차례 왜곡되었고, 그 이후 일본사람들의 식민지교육정책에 의해 그나마 남아있던 뿌리마저 완전히 잘라져 버렸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광복 이후에는 서구 문화의 갑작스런 파도에 휩쓸려 지금의 왜곡된 사관에 이르렀다. 매우 안타까운 점은 현재 대학교의 강단에 서있는 교수가 식민주의 사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그 연장선상으로 청소년들까지 역시 왜곡된 식민주의 사관을 그대로 흡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사학계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이러한 왜곡된 사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남의 나라에서 이 멋대로 왜곡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우는 것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우리 역사를 찾으려고 노력하여 올바른 역사를 찾아내야만 한다. 우리 조상들은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일만년 역사를 대부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부분의 독립 운동가들은 독립운동을 하기 전에 역사공부부터 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올바른 역사관이 개인의 운명은 물론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이러한 예만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되찾아야만 하는 정당성과 선조들의 훌륭한 기상을 간직하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었어도 결국 독립을 일구어 내었고 현재 세계로 도약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뛰어난 한민족 정신의 비밀을 환단고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하루빨리 깊은 잠에서 헤어 나와 세계의 최고(最古)민족의 정신을 되찾아야 하겠다.

도기(道紀) 133년, AD 2003년 11월
원시반본하여 한민족의 상고사 정신을 찾길 바라며….

 
//

출처 : 애동보살카페
글쓴이 : 석 도령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