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넷향기] 이동환 교수의 "회사 우울증 극복하기"

鶴山 徐 仁 2015. 11. 19. 12:12

회사 우울증 극복하기
이동환

얼마 전 어느 대기업이 회사 내에서 조사를 한 결과, 회사 우울증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자그마치 77%나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회사 우울증이라는 것은 진짜 우울증과는 조금 다릅니다. 77%나 될 만큼 많이 걸리는 병이 어디 있겠습니까. 진정한 병은 아니죠.
이건 사실 새로 만들어진 신조어입니다.

일반적인 우울증은 원래 계속 우울합니다. 그런데 회사 우울증은 평소에는 전혀 우울하지 않다가 회사에 가려고만 하면 우울합니다. 그래서 주로 아침에 우울합니다.
회사 우울증의 또 하나의 특징은 요일에 따라 증상이 많이 달라집니다.
가장 우울한 월요일 아침, 그러다가 금요일 저녁만 되면 증상이 굉장히 많이 호전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일요일 저녁이 되면 전조증상이 나타나는 게 바로 회사 우울증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 압박감, 경쟁관계, 대인관계 등 너무나 많은 것들 때문에 우울증이 생깁니다.
그래서 의욕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지는 증상들이 나타나죠.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그 행복 속에서 좋은 성과를 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성공한 사람들, 그러면서 행복한 사람들을 연구한 학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시카고 대학교 심리학 교수입니다. 긍정심리학의 대표적 주자이자, 국내에서는 '몰입'이라는 책으로 많이 알려진 분이죠.
그리고 다중 지능을 연구하신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보스턴 대학교 신경학 교수입니다. 국내에서는 '다중 지능'이라는 책으로 많이 알려진 분입니다.
그리고 윌리엄 데이먼(William Damon) 스탠퍼드 대학교 교육학 교수입니다. 이 분은 인간 발달 연구에 세계적인 석학입니다.
이렇게 세 분이 공동으로 연구하여 낸 책이 '굿 워크(Good work)'입니다.

이 책에서는 성공하고도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 세 가지를 얘기합니다.
첫 번째,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무언가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이 의미라는 것은 의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죠.
그래서 회사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일과 사생활을 조화를 이루며 산다는 겁니다.
업무 시간에는 업무를 열심히 하고, 사생활 속에서는 정말 즐거운 것들을 할 수 있는 그러한 조화 말이죠.
세 번째, 어려울 때같이 상의할 수 있는 멘토 한두 명이 있다는 겁니다.
멘토를 통해서 멘토의 삶을 배워가고 일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도 오늘부터 일의 의미를 찾고, 일과 사생활의 조화를 이루고, 멘토를 찾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이 세 가지를 통해서 회사 우울증을 극복하고 더 건강하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르다에 점하나를 더하면?
이병준

안녕하십니까? 부부Fun더하기 이병준입니다.
한 여성분이 상담을 오셨습니다. 결혼 년차는 높지 않은데 늦은 나이에 결혼하다 보니 선뜻 상담 오기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둘 다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전문직이라 문제가 생겼다면 적어도 합리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공통된 생각을 가졌습니다.
호소하는 내용은 아내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서 남편은 그다지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힘들다고 하니까 “그렇겠다. 그럴 수 있겠다.”는 동감의 표현은 해 오지만 정말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수긍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신까지 생각했던 사람이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남편의 세심함과 자상함 때문이었습니다.
워낙 미모가 출중했기에 숱한 남자들의 프러포즈를 받았던 지라 웬만한 남자들의 관심 정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유독 이 남자만큼은 좀 달랐습니다.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거절감을 안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의 참을성과 무던함을 가진 남자라면 결혼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친절과 자상함이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남들, 특히 다른 여성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첫 부부싸움의 이유였습니다. 

공감 작업을 마친 후에  “일단 밖에 나가서 여전히 다른 여자들에게 친절하다면 기능이 없다는 뜻은 아니네요?” 그러자 그 여성분이 대답합니다. “그러네요.” “그렇다면 밖에 나가서 하는 그 일을 나에게 하도록 하면 되겠구요?” “그렇죠.” “그럼, 제가 도와드릴 부분은 밖에서는 되는 데 안에서는 안 되는 남자의 비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드리고, 밖에서 다른 사람에게 하는 능력을 나에게로 끌어오는 방법을 알려주면 되겠네요?” 그러자 그 여성분은 이내 고개를 끄덕입니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남편이 ‘내 아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에게 하는구나’ 라고 느끼든지, 아니면 아내 쪽에서 아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인 것처럼 하든지...”
그 말에 한 바탕 웃었습니다.

남자는 아내 쪽에서 조금만 바뀌면 이내 행동을 바꿉니다.
이 심리는 흔히 “잡은 물고기에게 떡밥주지 않는다.” 는 남자들의 속성 중 하나입니다.
결혼하기 이전에 자신의 여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행위는 수컷본능으로서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한 최선의 방책입니다.
그리고 다른 여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자신이 꽤 괜찮은 수컷임을 증명해 보이려는 본능이라고 할 수 있겠죠.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 이 특징은 지구상 모든 수컷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일 겁니다.

대개 신혼초가 되면 부부들이 상대방에 대해서 황당해 합니다. 이럴 줄 몰랐다, 속았다는 표현들을 해 옵니다.
어떤 분은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나요?” 라고 하소연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사람은 그럴 수 없지요. 그러나 당신과 사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남자입니다. 남자로, 그것도 수컷으로 바라보아야지 사람으로 바라보면 안 됩니다. 남자와 여자는 다릅니다. 수컷과 암컷도 완전히 다릅니다.
따라서 그 대상은 다루는 대상이지 변화시키는 대상이 아닙니다. ‘다르다’에 점 하나만 찍어 보세요. 그러면 ‘다루다’가 되죠? 결혼의 행복이란 그 점 하나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서 갈라집니다.”

그 여성분은 크게 깨달았다는 듯이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학자답게 앞으로 수컷인 자신의 남편에 대해 자세히 연구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연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해결되지 않으면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돌아갔습니다.
그분에게는 존 그레이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제가 쓴 <남편 사용설명서와 아내사용설명서>를 비롯한 몇 권의 책을 추천해 드렸습니다.
이후 따로 상담 오지 않는 걸로 봐선 아마 충분히 문제를 해결하는,
즉 ‘다르다’를 ‘다루다’로 바꾼 능력 있는 여자가 되었을 겁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빛을 줄이고 세속에 맞춰라
박재희

만나면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 하더라도 습관적으로 가르치려 하거나 훈계조로 말하는 사람 말입니다. 이런 분들은 아무리 배운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고 지위가 높다 하더라도 어쩐지 만나면 부담스러워 나도 모르게 거리를 두게 됩니다. 심지어 하는 말이 구구절절 옳다고 해도 말입니다. 나아가 사소한 일에 너무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모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지 않아도 될 일을 마치 무슨 중대한 이슈라도 되는 것처럼 이성까지 잃어가며 강력하게 주장하다 보면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고 말하는 사람의 성품마저 의심하게 됩니다. 아무리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직선적이고 저돌적으로 말하는 것이 용납되는 요즘의 세태라고 해도 말입니다.

 노자 도덕경에는 자신의 날카로운 빛을 감추고 온화한 분위기로 상대방의 눈높이에 자세를 낮추라고 제안합니다. 일명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철학입니다. 여기서 화(和)는 온화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광(光)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광채와 재능을 말하죠. 동진(同塵)의 진(塵)은 티끌이라는 뜻으로 속세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화광동진은 상대방을 정확히 분석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빛을 잘 조절하여 상대방의 눈높이에 나를 맞춘다는 눈높이 철학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빛이 아무리 밝고 화려하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가갈 때 오히려 내 빛이 더욱 빛날 수 있다는 노자의 역발상 철학입니다.

회의 시간에 자신의 생각과 주장만 일방적으로 말하고 참가한 사람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내 주장이 아무리 옳다하더라도 그 생각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연스럽게 내 의도로 접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맞추는 것도 화광동진 철학의 한 방편입니다.

노자 도덕경에는 리더의 화광동진 철학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진정 아는 사람은 말이 없다. 知者不言이라! 말이 많은 자는 정말 아는 자가 아니다. 言者不知라! 당신의 입을 닫아라!  塞其兌! 당신의 그 머릿속에 의도를 닫아라! 閉其門 당신의 그 날카로움을 버려야 한다! 挫其銳! 당신의 그 현란한 말을 쉽게 풀어야 한다! 解其紛! 당신의 그 빛나는 광채를 줄여라! 和其光. 그리고 당신 앞에 있는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라!  同其塵. 이런 사람이 진정 현동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是謂玄同이라!

 예 여기서 현동은 검을 현자에 같을 동자입니다. 그러니까 리더가 자신의 주장과 광채를 줄여서 상대방을 스스로 나와 동화되게 만드는 철학입니다.
 
화광동진은 불교에서 부처가 해탈한 자신의 본색을 감추고 속세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쉽게 불법을 설파하는 것으로도 후대에 해석되기도 되었습니다.

 화광동진의 철학은 자신의 빛을 감추고 그저 속세에 동화되어 한 세상 살라는 의미로 난세의 지식인들의 철학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청나라 정판교라는 지식인은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며 살기는 힘들다는 뜻으로 난득호도(難得糊塗)의 철학을 자신의 삶의 철학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에게 이렇게 화광동진의 철학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총명난(聰明難) 호도난(糊塗難) 총명해 보이는 것도 어렵지만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어렵다. 유총명이전입호도경난(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그러나 총명한데 바보처럼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  방일착(放一着) 퇴일보(退一步) 내 고집을 내려놓고 일보 뒤로 물러나면
당하심안(當下心安) 하늘 일마다 마음이 편할 것이다. 비도후래복보야(非圖後來福報也) 그러면 의도하지 않아도 나중에 복이 올 것이다.

 세상에는 총명하고 혜안이 밝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총명을 조절하여 세속의 눈높이 맞추고 사는 화광동진의 철학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