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갑의 韓中 내시경
한국의 세월호와 중국의 다순호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입력 : 2014.09.05 13:40 | 수정 : 2014.09.05 15:04
1999년 11월 24일 침몰된 중국 옌타이(煙臺)-다롄(大連) 노선 여객선 다순호(大舜號)사건과 한국의 세월호사건은 비슷하다. 비교적 조용히 처리된 다순호사건에 대해 소개해볼까 한다.
다순호도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사들인 중고 여객선이었다. 일본에서 이미 5년간 운항됐다. 길이 126m, 폭 20m, 높이 11.5m, 3층이며 제한 적재량은 2888t이다. 탑승자는 승객 262명, 선원 40명이었으며 적재 트럭 61대를 포함해 적재량은 제한 규정을 월등히 초과한 상태였다. 그날 날씨가 좋지 않아 옌타이 항구의 모든 선박이 출항하지 않았으나 다순호만 이윤을 쫓아 무리하게 출항했다.
다순호는 항구를 떠난 지 2시간 만에 7~10급의 바람을 만났다. 위험을 감지하고 회항하기 위해 급히 U턴을 시도했으나 선체 옆구리가 직각으로 바람을 맞으면서 선박이 기울었다. 이어 적재 트럭을 고박한 쇠사슬이 끊어지면서 트럭들이 한쪽으로 쏠려 서로 부딪치면서 화재가 일어났고, 선박이 이내 침몰하기 시작했다. 오후 4시 30분에 구조신호를 발사하였고 1~2시간 후 구조선 2척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후 구조선은 19척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거센 바람과 파도 때문에 구조대는 조난선으로부터 반경 200여m 이내에 접근하지 못하였다. 오후 11시 50분쯤 선박은 완전히 침몰했으며 선장·선원을 포함한 280명이 희생·실종됐고 22명만이 생존했다. 생존자는 누구에게 구조된 것이 아니라 건장한 해군이나 수영 능숙자 및 운 좋게 육지까지 표류된 사람들이었다. 수색작업은 실종자 28명을 남긴 채 며칠 만에 끝났다.
당시 현장에 접근할 만한 다른 배는 없었는가? 바람이 7급 이상이면 헬기가 뜰 수 없는가? 7시간 20분의 긴 시간동안 다른 구조방법이 없었는가? 항구에서 불과 3㎞ 떨어진 곳에서 280명이나 죽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등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다순호가 침몰을 면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은 많았다. 그러나 선장과 3명의 부기사가 모두병급(3급) 기술자여서 침몰을 면할 수 없었다. 이 사고는 많은 의문점을 남긴 만큼 인민들의 분노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농성이나 단식까지 해가며 정부에 대해 과격한 적대감을 표시하진 않았다. 다순호 참사 직후인 2000년 3월 5~15일 전인대(국회격) 회의 때 옌타이와 다롄의 인민대표가 다순호 사건을 들고 일어나 한바탕 화풀이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다른 대표들이 ‘국난을 당하여 그러면 안된다’고 권고하는 바람에 “구조작업이 미흡했다”는 발언만 하고 말을 아끼며 자제했다.
이런 현상은 중국이 독재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다. 중국은 독재국가이지만 체제반대가 아닌 다른 반대는 비교적 자유로우며, 중국인들의 반골정신은 한국인보다 오히려 더 강하다. 유가족이 거세게 들고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항거의 핑계와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다순호사건은 안전사고이지 권익침해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전사고는 국난에 속하므로 국민이 힘을 합쳐 대처해야지 서로 물고 뜯으며 싸워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앞선다.
몇 년전 일본의 대지진 및 쓰나미 참사 때 일본정부의 대응책에 미흡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일본 국민은 슬픔을 참으며 침착하게 대응했다. 전 세계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미국서 9·11테러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미국 국민은 정부를 원망하며 공격하지 않았다. 여당과 야당은 ‘우리는 같은 미국인이다’라는 슬로건 하에 한 마음으로 뭉쳤다.
구조작업에는 공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잘잘못을 따지기가 애매하다. 잘 하였다고 해도 흠집을 잡으려면 끝이 없고 좀 못 하였다 해도 이해하고 양해하면 그뿐이다. 최근 10여 년간 중국은 지진, 열차 충돌, 선박 침몰, 교량 붕괴 등 대형 참사가 수없이 발생했다. 그 과정들을 세심히 따져보면 세월호 구조작업보다 잘못한 점이 적지 않다. 다순호 침몰사건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우선 승객보다 먼저 달아난 선장과 선원, 선박을 무리하게 개조하고 화물을 무리하게 실은 회사에게 있다. 다음은 수십 년간 속도와 목표만 추구하고 질 보증과 엄격한 관리에 소홀한 한국적 관행에 있다. 현 정부의 책임은 그 다음이며 그 책임 성격은 그나마 간접적·연대적이다. 또 세월호사건 역시 안전사고이지 권익침해사건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많은 구조선과 헬기를 동원하하고 수백 명의 잠수부를 조직해 일사불란하게 구조작업을 진행했다. 구조작업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이 무려 8명이나 된다. 사건 후 많은 시체를 찾아냈으며 130일이 지난 지금도 찾고 있다. 이만하면 한국 정부는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할 일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일부 유가족들은 어떠했는가? 분향소 찾은 대통령에게 "네 년"과 같은 언어폭행을 행사했고, 대통령의 조화를 버리다시피 방치했다. 국무총리의 몸에 물을 뿌리고 공무원의 뺨도 때렸다. 일부 몰지각한 어설픈 정치 선동꾼의 혀에 놀아나거나 설득력 없는 시위와 단식을 한 자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한국 국민은 유가족의 이런 행위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것이며 과격한 유가족은 심지어 국민의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사건 처리는 규정에 따라 배상하고 전문가에 의해 경험을 섭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순호의 희생자는 1인당 6.5만위안(미화 8000달러)를 배상하였다. 규정을 따르는 배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유가족이 없었다. 다순호 사건에 연루된 회사 책임자 4명은 형사처분을 받았고 국가 교통분야의 책임자 13명은 행정 처분을 받았다. 사고 현장을 관할하는 산둥(山東)성 당국은 ‘산둥성 수륙운수 안전관리방법’을 제정하였고 해마다 11월 24일을 안전생산 작업 경시일(警示日)로 제정하였다.
다른 사고도 다 이런 식으로 배상을 하고 전문가에 의해 교훈을 얻고 있다. 중국 원저우(溫州)에서 발생한 고속열차 충돌 및 추락사건을 계기로 당국은 전 중국 고속열차의 운행 속도를 10~20% 줄였다. 한국은 세월호특별법을 만들자고 야단인데 만약 중국이 그렇게 했다면 그동안 수십 가지의 특별법을 만들었어도 모자랐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앞으로도 한국에 사고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마다 매번 특별법을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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