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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길을 잃으면 가장 현명한 방법중 하나가
무조건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혹시 물줄기라도 만나면 그걸따라 내려가면 평지에 도착할수 있다.
그러나 사막은 다르다.
아랍인들은 사막을 ‘사하라’ 라고 부르는데 ‘아무것도 없는곳’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막 한 복판에서 마실물이 떨어지고 오아시스를 찾지 못하면 결국은 죽게된다.
그 사막에서 마실물을 공급해주고 나침반을 이용, 오아시스를 찾아 내는게 곧
‘정치’ 다.
민초들이 정치를 믿고 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더러워도 ‘정치’ 가 있어야 하는것도 그 때문이며 욕을 하면서도 정치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것도 그게 공동체에 꼭 필요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중심과 요체는 말할 것도 없이 정당과 국회다.
여의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릴수도 있고 누란의 위기에 처할수도 있다.
그렇게 정치는 우리모두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현대사회의 결정적인 기능이다.
한 주간지의 편집인이 쓴 글을 먼저 소개해보자.
‘문창극 총리 지명자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나라가 이러고도 성할수 있을까, 하고
다시 생각한다.
좌우양쪽이 죽기 살기식으로 싸우는데 나라가 결단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수가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싸워야 하는가.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성할 것 같은가.
주춧돌이 젖으면 비가 내릴 것을 안다는 말이 있다.
내분이 심하면 나라의 기운이 쇠약해 지는법이다.
적전분열과 내분은 외환에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
좌우모두 상대를 향한 저주를 거둘때다.‘
한편,
기원전 90년, 사마천은 그 유명한 사기(史記)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라가 흥 하려면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나는데 군자가 기용되고 소인은 쫓겨난다.
나라가 망하려면 어진사람은 숨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난신들이 득세, 귀하신 몸이된다.‘
2100여년전의 통찰이 지금에 들어맞는 것은 그게 변하지 않는 진실이고 원칙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을 역임했고,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원로 최병열은 이렇게 탄식한다.
‘깊이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사회는 깊이 분열돼 있다.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 가는게 아니라 자기 패거리끼리만 뭉쳐있다.
어떤일이 벌어지면 그걸 꼬투리삼아 폭격을 해대고 작살을 내고 뒤집어 엎으려 한다.
마치 정권을 ‘적(敵)’처럼 여겨 ‘저놈을 때려잡으면 우리가 하나 더 쥘 수 있다’ 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치에 몸 담았던 원로의 얘기이니 경청할 가치가 있는 말이다.
나역시 이제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평생 지금처럼 나라가 산산조각이 난 것은 처음 겪어본다.
내 생각과 다르면 모두가 적이고,
그 적은 토론하고 타협하는 민주주의의 파트너가 아니라 죽여 없애야 하는 원수인 것이다.
여의도에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인이 없다는 것은 애들까지 다 알고 있다.
후보자 였을때는 땅에 엎드려 한표를 구걸하던 위인들이 당선되고 나면 아예 딴사람이 되어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악한 소인배가 되는 것이다.
정치풍토 자체가 그렇게 깊이 썪어있다.
오늘날의 한국정치는,
글자그대로 이전투구(泥田鬪狗-진흙탕에서 싸우는 개) 의 현장이다.
서로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함하고 중상하며 싸우고 있는상태다.
보통사람들인 우리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사사건건 죽기아니면 살기로 대립하고 있다.
‘생산적인 정치’는 이미 사라졌고,
‘정쟁의 재생산과 확대’ 만 계속되고 있는게 근자의 국회모습이다.
국민이 위임한 막중한 사명과 기능을 가진국회,
국민들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대의원인 국회의원들,
그들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까지 생각하면 지금의 국회모습은 한나라의 ‘입법부’ 가 아니라 여러개의 패거리들이 시정잡배처럼 이합집산하며 자기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없는 조직폭력배들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
여기에는 여,야의 구별도 별 의미가 없다.
그놈이 그놈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1인당 유지관리비가 연평균 6억원이 드는 것을 생각하면 피나는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혈세가 낭비되는 현장이 바로 국회인 것이다.
지난6월의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로 당선된 원희룡은 검사출신으로 12년간을
여의도에서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했다.
우리가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시정잡배만도 못한 위인들이 우굴거리는 여의도에서, 그래도 고등교육과 함께
제정신을 차리고 의정활동을 했으며 무엇보다 지금의 국회가 안고있는 환부의
깊이와 내용을 제대로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진보386이 실패한 이유를 두가지로 생각한다.
우선,
정권을 잡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민주화운동과 현실정치는 분명히 달랐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실정치에 맞는 전문적이고 세련된 실력자가 필요했지만 노무현정부 안에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학생운동시절의 사명감으로 무장한채 패기있게 정치일선에 나섰지만 이는 오히려
독으로 다가왔다.
다른 하나는,
여전히 1980년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노무현 정권의 인사들은 오늘의 자신들을 만든 민주화운동, 학생운동의 도그마에
사로잡혀 빠져나오지 못했다.
결국 1980년대의 ‘나’ 가 오늘의 ‘나’ 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386세대 정치인들의 의사결정의 뿌리는,
절대적인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저항정신에 있다.
그런데 그들이 뛰어든 현실정치와 2000년대의 새로운 세상은 그들의 ‘틀’ 밖에 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상대에 대한 증오와 적대감이 아닌 포용과 리더십, 안정과 신뢰감 이었다.
욱박지르는 것이 아닌 절제와 타협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와 이별하지 못하고 당면하는 문제들을 사사건건 대결과 저항으로 대처했다.
그 배경에는 자신들만이 옳다는 치기도 있었다.
이는 곧 과거운동권의 투쟁논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이기도 하다.‘
김한길 이라는 바지사장 뒤에 누가 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설명하는 대목이다.
이제 바지사장은 간철수까지 둘이 되었지만 사정은 변한게 없이 더 복잡해졌다.
저항과 복수심에 불타는 ‘386친노군단’ 이 건재하는한 ‘대결국회-정치’ 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정치가 길을잃고, 민초들이 사막에서 길을 잃은채인데,
오아시스가 어디 있는지를 아는 정치가는 하나도 없다.
오아시스를 찾으려고 애쓰는 위인도 없다.
사실은 그게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국무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연이은 인사논란으로 갤럽조사에서 박대통령의 지지율이 6.4지방선거 직후의 47%에서 42%로 내려 앉았다.
새누리당의 지지율도 42%에서 41%로 하락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새정치연합의 지지도가 올라가는 대신 31%에서 29%로 떨어진 것이다.
국무총리 후보자들의 잇단 낙마에서도 그들이 기대하던 반사이익을 얻지 못했다는 얘기다.
2012년 연말 대선때의 36%의 지지도가 인사파동, 국정원 대선개입논란과 간첩증거조작의혹, 복지공약 축소논란, 세월호 침몰사고등 여권을 강타한 악재가 계속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20%대 중,후반에서 맴돌뿐 올라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유권자들에게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념’ 은 있지만 ‘정치와 정책’ 이 없으며 그 이념을 실행하는 ‘투쟁’ 만 있을뿐 의회정치를 이끌고갈 의지도, 목표도, 실력도 없는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재인두목도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자기 패거리들을 보전할수 있다.
세상이 그만큼 변한 것이다.
지난 6.4지방선거 이후
우리사회에는 향기그윽한 새 바람이 미약하게나마 불고 있다.
우리가 이 작은 변화를 놓치면 안된다.
충남지사 재선에 성공한 안희정의 얘기를 먼저 들어보자.
‘진보든 보수든 이렇게 가면 안된다.
서로 헐뜯고 싸우지 말고 이제 단결해서 한 단계 전진하자고 호소하고싶다.
여,야의 정쟁은 이미 많은 국민들의 불신을 받고 있다.
현재와 미래를 위한 정책의 경쟁을 벌이고 그 결과에 승복하면 단결이 이뤄진다.‘
정말 전에는 들어볼수 없었던 소리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김대중, 노무현, 박정희, 이승만등 과거 대통령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선조에게 시비를 걸고 따지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일인데 우리 정치인들은 주로 과거를 가지고 싸우고 있으니 안타깝다.‘ 고 했다.
이게 진정으로 하는 말 이라면 놀라운 얘기다.
생각이 바뀌지 않고는 이런 말이 나올수가 없다.
안희정이 어떤 인간이든 그가 현실을 보는 눈이 열리고 내일을 생각한다면 새 바람의 주인공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사막 한 복판에 서 있는 우리 모두의 앞장을 설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빛고을 광주의 변화는 작은 것 같지만 그 의미는 실로 크다고 아니할수 없다.
시장으로 당선된 윤장현은 안철수의 전략공천으로 고전이 예상되었던 인물이다.
광주시민-유권자들이 그를 선택한 것은 ‘야당의 영원한 텃밭’ 은 없다는 신호다.
광주는 전체주의 국가수준의 몰표가 나오던 ‘정치의 시골’ 이다.
이번의 작은변란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지켜볼 일이다.
더 놀라운 것은 시장당선자 윤장현의 얘기다.
‘야당이 어떤 정치적 국면의 상황에 따라서 반사적으로 이해득실을 따지면 안된다.
세월호참사에 대해서도 절반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국민앞에 겸허하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안타깝다.‘
엄격히 말해 거대야당인 민주당은 국정의 한 부분을 책임지는 여당의 정치 파트너가 아닌가.
그런데도 인사청문회 에서나 세월호 문제에서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물주들이 ‘386식 투쟁’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바지사장들이 취청거리는 모습에서 우리 모두는 그 비극을 읽고 있다.
제주지사에 당선된 원희룡은 경쟁자였던 신구범 전 지사를 도정인수위원장으로
영입했다.
하나의 파격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는 말한다.
‘정당대결, 당파정치를 뛰어넘는 대통합정치에 노력할 것이며 야당인사중에 훌륭한 분을 모시고 야당과 당정협의를 하면서 권한을 얼마든지 나눌 수 있다.
새누리당이 박대통령의 뒷받침만 하거나 계파 다툼만 한다면 절대로 정권재창출은 못한다.
기존의 진보와 보수의 틀을 깨고 미래를 내다보며 국민의 지지를 얻어낼수 있는 정치적 원천기술을 새로 개발해야한다.‘
새 바람이 불기 시작한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희망을 가져볼수 있다.
근자, 추잡한 사건에 연루되어 자리를 떠났던 수구파 하나가 다시 나타났다.
머리를 염색하고 얼굴에 화장까지 했지만 그 많은 주름살은 감출길이 없다.
노추(老醜)가 달리 있겠는가.
이제 그런 무능하고 구태의연한 파렴치들은 도태시켜야 한다.
지금 우리 모두는 뜨거운 햇볕이 쏟아져 내리는 사막 한 복판에서 갈증에 고통받고 있다.
우리에게 마실물을 공급하고 오아시스로 인도하는 정치지도력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런 정치적 기능은 어디에서 나타날 것인가.
결국 우리의 손 끝에 달린 것이다.
그들을 뽑는 유권자가 바로 우리들 이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정치수준은 곧 그 국민의 수준이다.- 서양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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