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일 오전 서울대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열린 특강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강연장에 들어가지 못한 중국 유학생들이 시 주석이 밖으로 나오자 오성홍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35분간의 시 주석 특강 동안 박수는 26번이 나왔다. [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4일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중 정상이 일본에 보내는 강경한 ‘경고’ 메시지를 소개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출국 1시간여 전이었다. 정상회담 뒤 나온 공동선언문이나 두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에선 일본이라는 단어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주 수석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제(3일)와 오늘(4일)에 걸쳐서 일본 문제에 대해 많은 토의가 있었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해 양국이 공동성명에는 반영하지 않았다”는 설명부터 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현재도 일본의 역사와 관련해 수정주의적 태도가 계속되고 있으며 자위권 확대까지 추진하고 있어 우려스럽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전했다. 주 수석이 소개한 두 정상의 일본 관련 논의는 ▶고노 담화 훼손 시도 ▶집단적 자위권 ▶북·일 대화 ▶광복·전승 70주년 기념식 등 전 분야에 걸쳐 있었다. 이 중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공동우려 표명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일본 자위권 확보를 찬성하는 중에 나와 향후 한·미·중·일 간 민감한 의제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 NHK는 “이번 시 주석의 한국 방문은 한국 정부가 미국과 중국, 한국 국내 여론 사이에서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음을 재확인시켰다”고 분석했다. 교도통신은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중국에 동조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임에 따라 한·미·일 3국 관계가 한층 동요할 가능성이 생겼다”고 전망했다.
청와대가 시 주석의 방한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대일 강경 메시지를 발표한 건 투 트랙 접근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식 기록으로 영구히 남는 공동선언문 등에는 일본을 대상으로 한·중 양국이 공조나 협력으로 대응하는 듯이 비춰질 만한 내용을 모두 제외했다. 대신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언론 브리핑이라는 형식을 빌려 양 정상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육성으로 경고하지 않았지만, 경고의 내용 자체는 모두 소개되도록 조정한 것이다.
한국이 일련의 중국 측 요구에 호응을 하지 않으면 국제적으로는 중국이 역사문제에 대해 한국에 ‘일방적 구애’를 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청와대도 주 수석을 통해 성의를 보인 것이란 분석이다. 물론 일본이 역사 도발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중국과 협력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래서 양국 정상이 같은 우려와 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셈이다.
여기엔 중국의 장외 플레이도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다. 중국은 지난 3일 관영 매체를 통해 “시 주석이 2015년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및 한반도 광복 7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제안했다”고 보도하는 한편 일본 전범의 ‘전쟁범죄 서면자백서’를 공개했다.
홍주희·정원엽 기자
홍주희·정원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