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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3 05:41
자석처럼 동독을 당긴 건 서독 사회의 생활상 자체
북한도 동독처럼 끌려 들어와 하나 되려면
우리 사회부터 먼저 비참한 구석
보살펴야
- 양상훈 논설주간
서독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한둘이 아니다. 동독과 교류도 했고, 주변국 외교도 펼쳤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것 한 가지만 들라면 '서독 사회'를 꼽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독 사람들의 총체적인 생활상' 그 자체가 강한 자력(磁力)으로 동독을 단 한순간도 쉼 없이 끌어당겼다. 독일 통일은 동독이라는 쇠붙이가 마침내 그 자석에 딸려와 붙은 것이다. 자연법칙은 누구도 영원히 거스를 수는 없다.
1989년 동독 사람들이 헝가리·체코·폴란드의 서독 대사관으로 몰려들었다. 동독 정권은 결국 이들의 서독행을 허용했지만 기차로 반드시 동독 지역을 지나가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탈출이 아니라 허가로 보이게 하려는 계산이었다. 서독행 열차가 동독 지역을 지나다가 한 역에 잠시 정차했다. 그 역에 있던 다른 열차 승객들이 새로 들어온 기차가 서독으로 간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순간 이들은 타고 있던 열차에서 무작정 뛰어내려 서독행 기차에 올라탔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삼엄한 경비도 이들을 막지 못했다.
코너에 몰린 동독은 여행 자유를 허용하는 척했다. 실시 시기는 안 밝히고 허용할 것이란 선언만 하려 했다. 그런데 발표하는 관리가 "지금부터 허용한다"고 잘못 말하는 바람에 바로 그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 해프닝이 독일 통일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잘못 발표된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즉각 베를린 장벽으로 물 밀듯 밀려든 동독 주민들이 없었다면 그 결정적 순간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동독인들 모두는 '서독의 안정적이고 유복한 생활상'이라는 거대한 자석에 끌려간 것이었다.
북한 주민들에게도 남한은 선망의 대상이다. 2만명이 넘은 탈북자가 그 증거다. 그러나 '남한 사회'가 '서독 사회'와 같은 자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 남북한의 격차는 동·서독의 격차보다 훨씬 크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우리 남한 사회 자체의 안정성과 건강성이다.
우리는 올해도 자살률 세계 1위가 될 것이다. 인구 10만명당 30명 안팎이 자살하고 있다. OECD 평균보다 2~3배 높다. 증가 속도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지난 20년 동안 자살률이 3배나 늘었다. 그 기간의 경제성장과 비슷하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15%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고, 그중 3%가 실제로 시도하고 있다. 무서운 통계들이다. 자살 이유는 정신적 문제, 육체적 질병, 생활고 순이다. 정신적 문제와 육체적 질병으로 인한 자살은 결국 생활고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생활고를 비관한 일가족 자살 뉴스가 이어지는 게 이상하지 않다.
물론 이제 우리 사회도 '정글'은 아니다. 우리만큼 이른 시일 내에 효과적으로 복지를 확충해온 나라도 드물다. 그러나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을 따뜻하게 보듬는 사회라고는 말할 수 없다. 휴머니즘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채우고 있는지 대답할 자신이 없다. 우리의 행복지수와 삶의 질은 모두 OECD 최하위다. 세계 각국 노인의 연금과 빈곤율을 조사한 유엔 보고서에서 한국은 91개국 중 90위였다. 우리 국민의 60%는 기회가 되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데도 우리 사회를 북한 동포 전체가 그 무엇도 막지 못할 열망으로 몸을 던질 만큼 크고 건강한 자석이라고 할 수 있을까.
탈북했다가 북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그곳에서 남한을 비난하는 회견을 한다. 한 사람은 북한 TV에 나와 "남한에서 탈북자는 비천한 일밖에 할 것이 없다"며 "탈북자 자살률은 다른 사람들의 5배"라고 했다. 북한 당국이 시키는 대로 한 말이겠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탈북자 75%가 무직이고 일하는 사람도 절반이 월 소득 100만원 이하다. 자살률은 일반인의 2배가 넘는다. 목숨 걸고 탈북한 사람들이 그토록 소망하던 남한 땅에 와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면 통일을 말하기 전에 우리 사회부터 돌아봐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까지 북한 주민들에게 꽤 알려졌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이 망하면 중국에 붙는 게 낫다"는 말들도 한다고 한다. 통일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 곳에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