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조성은 구속의 반대말이다. 나는 창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창조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피터드러커의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란 것이 있습니다.
1950년대의 모든 사람은 육체노동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 피터드러커는 1959년 최초로 지식근로자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불과 50년 전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피터드러커는 말했습니다.
"20세기 말이 되면, 미국 전체 노동력 가운데 지식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30%가 넘을 것이다. 이제 육체노동자는 교육, 지식, 학습을 받아서 지식노동자로 올라갈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 육체노동자는 쉽게 될 수 있었지만 이제 지식노동자가 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가 필요한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예견을 했습니다.
그러면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과연 지식사회에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지식은 무엇일까?
그 지식의 구성요소는 무엇일까?
배우고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떤 질적인 가치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다른 지식시대가 예견되었습니다.
'경쟁이 심한 지식사회가 분명히 될 것이다.'라고 피터드러커는 예견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지식사회에 접근하기 쉬워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라는 대중매체 때문에 누구나 박사들이나 아는 지식을 아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 가난한 국가는 사라지고 무지한 국가만 남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지식의 사회는 조직의 사회가 될 것이다. 따라서 근로노동자는 조직의 구성원으로 해야 한다고 예측했습니다. 지식사회에서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힘이 센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다음 세대는 육체노동자, 지식근로자를 넘어서 창의근로자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감히 예언합니다. 왜냐하면, 육체노동자는 학습으로 지식근로자로 올라섰습니다. 이제 지식근로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바로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 지혜를 쌓음으로써 그다음 단계인 창의근로자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언합니다. 창의근로자 시대가 되면 모든 부와 권력은 지식근로자에서 창의근로자로 옮겨갈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근로자는 붕어빵식 교육이었는데 이제 더는 통하지 않는다. 이제 나만의 유니크한, 유일한 지식을 가진 사람만이 대접받는 시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이의 성공처럼 내가 세계의 기준이 되는 시대, 그게 바로 창의근로자 시대입니다. 이제 저는 예언합니다. 기계화되고 획일화되고 똑같은 상식을 가진 이 사람들 사이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창의 근로자 시대는 살아남기 어려워집니다.
조직은 개인의 시대로 넘어갈 것입니다. 이제 1인 기업이 더 많이 커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창의근로자가 되려면 어떤 것부터 해야 할까요?
작은 일상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생각의 틀 바꾸기'라는 강의시리즈를 하면서도 말씀드렸습니다.
작은 것에서 무언가를 깨치고 느끼고 모방하고 창조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그 순간에 우리는 창의근로자로 넘어갑니다.
심지어 영화배우가 대본을 보는 순간 읽고 해석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 박중훈이 어느 날 황산벌이라는 영화를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 대본을 받아서 보는 데 박중훈은 너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왜냐하면, 내가 맡은 계백 장군이라는 역할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게 이해가 되어야 내가 주인공을 할 텐데 대본을 아무리 봐도 계백의 역할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거예요. 계백은 어떻게 했습니까.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자신의 아내와 가족을 다 죽이고 나갔습니다. 박중훈이라는 배우는 생각했습니다. '왜 전쟁을 하지?'
그래서 이렇게 판단을 내렸습니다. '전쟁을 하는 이유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계백은 왜 가족을 죽이고 전쟁에 나가는가?' 난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 처음에 계백 역할을 맡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최근에 나온 타워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에는 안성기라는 배우가 나옵니다. 소방관 대장으로 나오는 데 잠깐입니다. 잠깐 안성기가 소방관에서 들고 있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이 바로 '왜 일하는가' 라는 책입니다. 불과 영화 속에서는 2초밖에 안 나오는데 이 감독은 이 책을 왜 손에 들게 했을까요? '왜 일하는가' 스스로 가치를 생각하라는 겁니다.
나는 창조한다. 내가 창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박중훈의 말처럼 대본을 보면서도 나를 생각하고 새롭게 보는 것, 그리고 어떻게 창의성에 접근하고 어떻게 안성기처럼 왜 일하는가를 생각하는 것, 수많은 것을 아니면 더 큰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작은 것들을 하루에 한 가지씩 생각해 내는 것, 그렇게 될 때 우리가 지식근로자에서 창의근로자 시대로 넘어갈 방법이 생기는 것입니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씨는 말했습니다.
'최선이란 내 노력이 나를 감동하게 할 때 쓰는 말이다.'
여러분은 무한도전에 나오는 개그맨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 지식이 여러분들을 감동하게 하여야 합니다.
감동하게 하는 것을 하루에 한 가지씩 개선해 나갈 때 저와 여러분은 이 시대의 창의근로자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