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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社會 關係

[김창균 칼럼] 進步의 것은 진보에게/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3. 10. 30. 15:03

[김창균 칼럼] 進步의 것은 진보에게

  • 김창균 정치 담당 에디터 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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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10.30 03:56

    연예계 진보 성향은 태생적인데 "왼쪽 쏠렸다" 못마땅해한 정권
    親野 방송인 하차 논란으로 곤욕, 인터넷·트위터 진보 강세가 당연
    억지로 균형 맞추려다 댓글 논란… 保守는 '보수다움'으로 승부해야

     
    
	김창균 정치 담당 에디터 겸 부국장 사진
     
    김창균 정치 담당 에디터 겸 부국장

     

     

     

    "문화 예술계의 지형(地形)이 너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걸 바로잡는 게 정말 시급하다."

    이명박 정부 임기 초기 정권 관계자들을 사석(私席)에서 만났을 때 종종 듣던 말이다. 좌(左)편향된 시각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수백만 관중을 끌어모으고, 시청률이 높은 방송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정부에 삐딱한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상황을 방치하면 정국의 주도권을 야당에 넘겨주게 된다는 걱정이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방송인 김제동씨가 노제(路祭) 사회를 맡았다. 그의 추모사는 친노(親盧) 진영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한편, 반노(反盧) 진영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김씨는 진행해온 KBS 예능 프로그램에서 갑자기 물러나게 됐다. 낮은 시청률이 김씨의 하차(下車) 원인이라는 게 KBS의 공식 설명이었다. 그러나 김씨가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괘씸죄 때문에 쫓겨났다는 소문이 훨씬 힘을 받았다. 김씨가 방송을 그만둔 지 보름 만에 치러진 재·보선에서 여당은 수도권 두 곳을 모두 놓쳤다. 당시 여당 관계자는 "이런저런 악재가 있었지만 김제동씨 강제 퇴출 논란이 가장 큰 패인"이라고 선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연예인들의 정치 성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0년대 중반, 아카데미상 시상식 무대에 선 배우들은 부시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으로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반(反)부시'는 할리우드의 유행 패션이자 '개념 연예인'이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었다. 2012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비판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우파 연예인이 없지는 않지만 그야말로 극소수다.

    문화 예술은 기성 질서에 대한 해학과 풍자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그런 만큼 진보 좌파와 코드가 잘 맞게 돼 있다. 시장 질서를 최우선 가치로 꼽는 재계(財界)나 국가 안보를 최전선에서 지키는 군(軍)이 태생적으로 보수 우파 성향을 띠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이명박 정부는 DNA에 아로새겨진 이런 본성을 거스르려다 역풍을 맞았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인터넷 때문에 졌다"고 원인을 분석했다. 인터넷 매체를 중심으로 뭉치는 친노(親盧) 세력을 보면서 보수 진영은 낯선 첨단 무기에 대한 공포감을 느꼈다. 2010년 5월 지방선거에서 졌을 때는 "트위터 때문에 졌다"고 했다. 인터넷의 열세를 가까스로 만회해 놨더니 SNS라는 한 차원 더 진화한 병기가 등장한 것이다. 트위터 화력에서 균형을 맞춰 놓지 않으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밀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여권 전체를 감쌌다.

    사이버 여론전에 능하다는 전문가들이 자천타천으로 새누리당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중 한 사람은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SNS 미디어 본부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활동하다 불법 선거운동을 벌인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 소속원들은 대선 개입이라고 의심받을 만한 글들을 사이버 공간에 올렸다는 의혹 때문에 수사를 받고 있다. 인터넷과 트위터에서 야권과 대등하게 맞서야 한다는 보수 진영의 초조함이 이들의 부적절한 행위를 불렀을 것이다.

    사이버 세상의 의사소통은 발랄하고 신나는 한편, 즉흥적이고 가볍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진보 좌파와 코드가 맞는 놀이터다. 팔로어를 수십만 명씩 거느린 파워 트위터리안 대부분이 진보 인사인 것도 그런 까닭이다. 지난 대선 때도 인터넷과 트위터 공간의 화력은 민주당 문재인 후보 쪽이 앞섰지만, 실전에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100만표 차로 크게 이겼다. 인터넷과 트위터라는 운반 수단이 콘텐츠라는 본질의 우열을 뒤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보수와 진보는 각자에게 유리한 전선(戰線)이 있다. 약점을 보강하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억지로 균형을 맞추려다 보면 뒤탈이 난다. 비위에 거슬리는 연예인 몇 명의 일자리를 뺏었다는 의혹 때문에 옹졸한 정권으로 몰리고, 국가기관 요원 몇몇이 골방에서 단 댓글 때문에 새 정권이 임기 첫해 내내 발목을 잡혀 시달리고 있는 것이 좋은 본보기다. 진보의 것은 진보에게 돌리고, 보수는 보수다움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래도 이길 수 있고, 그래야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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