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관동찬가 고성 청간정과 왕곡마을

鶴山 徐 仁 2013. 10. 3.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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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0.01 14:11

올라보아야참맛, 청간정

 

강원도의 공기는 어쩐지 담백하다. 아직 더위를 머금었을 법한 초가을인데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가 근처까지 왔는데도 공기가 산뜻하다. 다른 지방보다 다소 낮은 기온의 강원도, 이곳에서 만난 바람은 이렇게 좋은 첫인상을 건네준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을 넘게 달려와 만난 청간정, 속초보다 더 위에 있는 고성에서 드디어 그와 마주했다. 관동팔경 중 꽤나 북쪽에 위치한 청간정이기에 만나러가는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그만큼 설렘은 최고조였다. 친절하게 준비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들어지게 서있는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3분여쯤 걸었을까. 탁 트인 하늘 아래 홀로 고즈넉이 서있는 정자, 청간정이 눈앞에 나타났다. 드디어 한발, 두 발 청간정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오르니 새삼 깨달아 진 것은 청간정이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다. 기암절벽 위에서 만난 세상은 아름답게 펼쳐진 동해바다, 넘실대는 파도, 더불어 오랜 기다림을 무색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람이었다.

청간정은 원래 청간역淸澗驛의 정자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창간연대와 창간자가 뚜렷하지 않다. 기록상으로는 조선 명종 10년(1555)에 간성군수 최천이 중수한 기록, 현종 3년(1662)에 최태계가 중수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창간 시기는 그 전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갑신정변 때 전소되어 방치되었었고, 1928년 재건, 1953년과 1980년에 중건해서 오늘날의 청간정에 이르고 있다. 본래 송시열이 금강산에 머물다가 이곳에 들려 친필로‘청간정’의 현판을 걸었다고 하나 지금 청간정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또한 최규하 대통령이 쓴 한시 현판도 함께 걸려 있다.

청간천과 천진천이 합류하는 지점인 바닷가에 세워져 있는 청간정,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바다, 그리고 비록 처음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곁을 지켰던 청간정. 그리고 이곳을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람들. 말은 할 수 없어도 바다와 청간정이 공유하는 추억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 또한 많을 테니, 동해바다의 멋진 전경을 선물하는 청간정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가을바람에 춤추는 억새, 송지호

 

청간정을 떠나 두 번째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송지호다. 송지호는 강 하구와 바다가 닿는 곳에 생긴 석호이다. 송지호는 겨울철새인 고니의 도래지로 물빛이 맑고 민물고기들이 노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더욱이 호숫가 근처에 가을을 닮은 억새가 장관이라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송지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꽃들, 나무들의 모습은 이제 막 노랗고, 붉은 가을빛을 막 담아내려는 찰나였다. 봄꽃도 예쁘지만, 가을꽃은 왠지 깊이가 있다. 수줍으면서도 여유롭고 여러 계절을 보내고 난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가을 하늘 아래서 출렁이는 억새도 그렇다. 철새전망대에서 호수 한쪽에 놓여 있는 나무 길을 따라 억새에 닿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과 그사이 사이에 보이는 송지호의 반짝이는 물결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넓게 펼쳐진 송지호를 바라보면, 옆에 바다가 또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할 정도니, 과연 석호는 동해안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가 싶다. 다리로 이어진 나무 길을 다건너면 이제 송지호와도 이별이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잊지 못할 송지호에서의 가을 풍경이 이제 추억으로 새겨졌다.

 

시간이멈춘곳,왕곡마을

 

송지호에서 바라보면 유선형의 배가 동해바다와 송지호를 거쳐 마을로 들어오는 모습의 길지형상을 보인다는 왕곡마을. 무려 14세기에 형성된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의 집성촌 왕곡마을에서 멈춰있는 시간 속으로 세 번째 여행을 시작했다.

고성군은 금강산과 설악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품고 있다. 왕곡마을은 송지호와 다섯 개의 야산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골’형태의 분지를 이룬다. 왕곡마을은 이런 지형적인 특성과 풍수지리적 요인으로 지난 수 백년간 전란과 화마의 피해가 없었던 길지이다. 그래서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 군락이 원형을 유지한채 보존이 되어있어 전통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 왕곡마을은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고, 그것들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마을이다.

왕곡마을은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개울을 따라 이어진 길을 중심으로 가옥들이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으며 앞마당의 넓은 텃밭이 가옥들의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다. 집 뒤편에 둘려있는 돌담의 모습은 포근한 가을의 정취와 어우러진다. 왕곡마을의 집은 대부분 온돌중심의 겹집 평면에 마루가 도입된 형태로 지어져 부엌, 안방, 도장, 사랑방, 외양간 등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왕곡마을의 풍경은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없고 큰 산 아래 도란도란 여유롭게 자리 잡은 집들의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풍경은 도심의 모습과 달리 낯설고도 부러운 풍경이다. 이곳은 어떻게 보면 시간이 멈춘 옛 집들의 전시장 같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온기가 서려 있 는삶의 터전이다. 불과몇십년 전에는 이런 삶이 일상이었던 때를 상상해보며, 북방 가옥구조를 통해 북녘땅의 삶들을 상상으로나마 그려보며, 지는 해를 뒤로하고 왕곡마을의옛길을 정처 없이 걸어본다.좀더 나은 삶이란 더 편리한 집에 사는 삶이 아니라, 온기 어린 집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닐까.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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