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섭의 태평로] 정치 파업하고 예능 연예인 된 의원들
입력 : 2013.09.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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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섭 논설위원
민주당은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을 '범법자'라고 주장해 왔다. "김 의원이 지난 대선 기간 불법적으로 노무현·김정일 회담록을 입수해 공개했다"며 국회 청문회까지 불러내려 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폭로'를 자주 문제 삼는다. 검찰에 고소한 적도 있다. 새누리당은 얼마 전 박 의원이 '청와대의 검찰총장 사찰' 의혹을 내놓자 "허무맹랑하다"고 했다. 이런 두 사람이 어제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란히 하얀 와이셔츠에 나비 넥타이를 매고 출연해 농담과 '개그'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한 여성 방송인을 사이에 두고 '애교' 경쟁까지 벌였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에서 각각 4명씩 다른 현역 의원들도 출연했다. 새누리당에선 평소 '바른말' 잘하기로 유명한 소장파 의원들이 나왔다. 민주당 출연자 중에는 거의 매일 여당을 향해 독한 말을 던지는 원내대변인도 있다. 이들은 여야 각 한 명씩 짝을 이뤄 일명 '빼빼로게임'을 했다. 과자 양끝을 각자 입에 물고 동시에 먹으면서 과자 길이를 줄여나가는 게임이다. 남녀 짝짓기 예능 프로에서 흔히 한다. 게임을 하다 보면 막판에 입까지 맞추게 된다. 어떤 의원은 몸 개그에 가까운 막춤을 췄다.
이 프로그램은 여야 의원 출연자들을 바꿔가며 적어도 몇 달은 방송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정치인들이 선거철이나 명절에 예능·토크쇼에 단발성으로 출연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예능 프로에 고정 출연하는 건 처음이다. 다른 나라에 이런 사례가 있다는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방송국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프로그램 자체만 놓고 보면 이전엔 없던 출연진과 포맷, 구성이다. 남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기획을 내놓는 건 방송국과 PD가 해야 할 일이다.
정치인들은 속성상 반은 연예인이다. 두 직업 모두 인기를 좇고 '쇼맨십'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訃告)만 아니면 언제든 언론 노출을 환영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그렇다 해도 나라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국회의원이라면 자기를 드러낼 때와 나서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판단력은 갖고 있어야 한다. 지금 정국이, 정치가 정상(正常)인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는 여야 대치 때문에 국민은 신물이 날 지경이다. 야당은 역대 최장기 장외투쟁을 벌이며 정치 파업을 하다 이젠 원내 투쟁을 하겠다고 한다. 정기국회는 한 달 가까이 개점휴업 상태다. 이러고도 세비를 꼬박꼬박 받아가는 의원들이 '연예인' 놀이를 하는 모습을 국민은 어떻게 바라볼까. "정치인들이 나랏일은 안 하고 예능 프로에 나와 웃고 떠들고 저질 개그나 하고 있을 때냐"는 시청 소감이 무리가 아니다.
의원들은 "정치와 국민 사이 거리를 좁히고, 국민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방송에 나왔다"고 했다.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고 싶다면 방송국 가서 분장하고 개그 할 시간에 지역구로 달려가 한 사람의 주민이라도 더 만나면 된다. 의원들이 정치를 똑바로 하고 의사당에서 할 일을 제대로 하면 국민으로선 그보다 즐거운 일도 없다.
국민은 이미 코미디 같은 정치, 코미디언 뺨치는 정치인들 때문에 웃을 만큼 웃었다. 굳이 의원들이 예능 연예인까지 돼서 국민을 웃겨 주지 않아도 된다. 의원들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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