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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김정은 유연… 노조보다 북한 상대 더 쉽다"/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3. 8. 24. 15:06

[주간조선] "김정은 유연… 노조보다 북한 상대 더 쉽다"

  •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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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08.23 16:10 | 수정 : 2013.08.24 10:03

    北 김정은 만나고 온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

    
	[주간조선] "김정은 유연… 노조보다 북한 상대 더 쉽다"

    통일교 산하의 대북사업체인 평화자동차 박상권(63) 사장이 지난 7월 27일 평양에서 열린 전승절(정전협정일) 60주년 기념행사장에서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났다. 미국 시민권자로 북한을 200번 이상 들어갔다 온 박 사장은 최고의 북한통으로 꼽히는 인물. 1994년 통일교 창시자인 고 문선명 총재의 요청을 받아 북한에 진출,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 등의 사업체를 운영해 왔다. 지난 8월 16일 서울 강남의 평화차 사옥에서 만난 그는 김정은에 대한 인상과 함께 대북사업의 현실과 향후 남북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박 사장은 김정은에 대해 “유연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에서 김정은이라는 존재를 모르고 있을 때부터 나는 그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강한 입장을 취했는데, 그분 스타일로 볼 때 ‘내가 너무했나’ 하는 생각도 하지 않을까 싶다.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의 발전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사장은 고 문선명 총재가 처음 북한을 방문했던 1991년만 해도 남미에서 수산업을 하고 있었다. 1994년 문 총재의 부름을 받고 북한에 진출할 때까지 그는 난폭하고 다루기 힘들다는 선원들을 데리고 험난한 바닷일을 했다. 북한 진출 후 그가 처음 시작한 사업은 자동차 제조업이었다. 2001년 평양에서 자동차 생산을 시작한 평화차는 최근까지 흑자를 냈다. 북한에 진출한 전 세계 600여개 기업이 모두 북한땅을 떠났지만 평화차는 유일하게 남아 수익모델을 만들었다.

    그러나 올 초 박 사장은 평화자동차가 운영해온 자동차 생산 및 수리공장, 1991년 인수해 경영해오던 보통강호텔 등의 운영권을 대가 없이 북한에 양도했다. 수익을 내고 있는 사업체를 무상으로 넘긴 것을 두고 의아해 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에 대한 박 사장의 설명이다. “문선명 총재께서 북한을 방문하고 김일성 주석과 만난 것은 모두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당시 문 총재는 남북 간 문화교류를 활성화하고 기업 진출을 돕겠다고 하신 약속을 지켰다. 평화차가 그 역할을 했다. 북한에 진출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돈만 벌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쨌든 북한은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호텔의 고급 서비스 체계를 도입할 수 있게 됐다. 지금 밝힐 수는 없지만 우린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걸 얻게 될 것이다.”

    통일교 측에 따르면 작년 9월 세상을 뜬 문 총재는 생전에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을 북한에 양도하라는 지침을 내려놓은 상태였고, 문 총재 사후 통일교를 이끌고 있는 부인 한학자 총재가 문 총재의 유훈을 이행하라고 박 사장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번에 평화차가 사업권을 북측에 넘기고 나서 박 사장은 김정은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국내에서 누구도 꿈꾸지 못한 장면을 가장 먼저 연출했다. 그는 지난 8월 9일 국내 언론에 관련 사진을 제공하며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언론은 박 사장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이 “개성공단을 적극적으로 잘해야 DMZ평화공원도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박 사장은 이에 대해 “당시 발언은 ‘개성공단이 풀리지 않는데, DMZ평화공원이 될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 표현이었으나 언론이 잘못 전달했다”고 말했다. “언론에서 내 말을 잘못 보도했지만 그냥 내버려뒀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박근혜 대통령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DMZ평화공원 건설을 북한에 제안하셨다. 자꾸 언급이 되고 거론이 돼야 사업이 추진되는 거다. 사업가로서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박 사장은 김양건 노동당 통일선전부장과 나눈 대화 중 개성공단 관련 내용을 상세하게 전달했다. 박 사장은 김 부장과 10여차례 이상 대면을 했을 정도로 친분이 있고 이번 김정은과의 만남 역시 김 부장의 중재에 의해 성사된 것이라고 했다. “김양건 부장은 ‘남쪽 사람들이 개성공단을 달러 박스라며 돈에 환장해서 우리가 그걸 다시 재개하려고 한다고 말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지금 이걸 재개하는 게 나은지, 아닌지를 제대로 판단할 경제학자가 (남한에는)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 ‘급여만 보고 공장을 운영하는 게 아니다. 1인당 80달러도 안 되는 급여 받으려고 5만명 넘는 사람을 동원한 게 아니다. 원자재 가져오고 전기 넣으면 (자체) 운영을 못할 것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김 부장은 6·15 정신을 살리고 새로운 평화 분위기를 이어가는 차원에서 공단 재개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김 부장에게 “김정은 위원장이 조속한 시일 내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했다.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에 대해 박 사장은 “몇 가지 과제만 해결된다면 관광은 곧 재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1998년 11월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지난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 박왕자씨가 피격 사망하는 사건이 빌미가 돼 중단된 지 5년이 흘렀다. “금강산 관광 사업이 중단된 건 남한 관광객이 북한에 의해 피격됐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 관료들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이른 새벽에 인민 중 한 명이 탈북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고 총을 쐈는데 알고 보니 남측 관광객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실수는 인정하지만 북측 군사지역에 출입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남측에서 충분히 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는 분위기였다. 남북이 관광 재개를 위한 논의를 시작하면 여러 선결조건에 합의해야겠지만 북측에서 의지가 강해 전망은 밝은 편이다.”

    이와 관련 금강산 관광 사업 주체인 현대아산 홍보실 이재희 부장은 “사업권자로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것에 대비해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교 측은 1998년 현대아산과 함께 금강산 관광 사업권자로 거론됐지만 정치적 판단에 밀려 아쉽게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통일교 내에서 대북사업을 책임지고 있던 박 사장은 누구보다 금강산 관광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원래 우리가 금강산 관광 사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보다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이 사업을 맡아주길 바랐다. 우리보다는 아무래도 현대와 일하는 게 더 수월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현대는 금강산 사업을 시작하면서 모든 걸 남측에서 조달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당시 북한에서는 밥과 기념품을 파는 정도의 사업은 (북한) 자체에서 조달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아마도 이번에 관광이 재개되면 북한은 이런 부분을 언급할 것이다.”

    박 사장이 평양 시내에 자동차 생산공장을 차린 것은 금강산 관광 사업권 획득 실패에 따른 차선책이었다. 2001년부터 북한에서 자동차 생산 및 판매를 시작한 평화차의 선택에 대해 당시 대부분의 기업들은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북한은 당시 주로 해외에서 차량을 수입해다 썼고 자가용은 고위 인사들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차량 수요가 한정돼 있는 국가 특성상 수익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평화차는 이런 예상을 깨고 2008년부터 작년까지 꾸준히 수익을 내며 북한 자동차 시장을 석권하는 데 성공했다. ‘휘파람’이라는 브랜드를 붙인 승용차와 ‘삼천리’ 브랜드의 승합차는 지금까지 총 1만대 이상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2011년 북한 자동차 시장점유율에서 외국산이 58%, 평화차가 41%를 차지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판매 수익금 중 국내로 입금된 돈은 2009년 50만달러, 2010년 63만달러, 2011년 79만달러, 2012년 80만달러로 점차 증가했다. 자동차 사업에서 재미를 본 평화차는 사업 영역을 넓혀 평양관광사업을 추진했고 이를 위해 평양시내의 보통강호텔까지 인수했다. 익명의 평화차 직원은 “국제사회의 대북 규제가 강화되기 전까지 보통강호텔도 흑자 운영을 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에서 평양에 진출했던 약 600개 기업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외국 기업은 평화차뿐이다. 대우그룹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도 손을 들고 떠났지만 평화차는 사업을 유지하며 끝까지 버텼다. 박 사장의 말이다.

    “지금 평양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 기업은 우리가 유일하다. 내 좌우명이 ‘남과 다르게 살고 남보다 먼저 행동하자’이다. 북한에서 사업을 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게 많다. 북한만의 독특한 문화가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신경쓰기보다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북한 정부를 상대로 사업을 하는 것보다 강성노조와 사업하는 게 더 어렵다. 북한 편을 드는 걸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 노조는 막무가내로 떼를 쓰거나 툭 하면 고공시위와 파업을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북한 정부는 외국 기업에 그렇게 하진 않는다.”

    鶴山 ;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먹는다고, 이젠 일선에서 은퇴를 한 노년기의 선배들은 뼈빠지게 박봉에도 열심히 피땀을 흘리며 일을 했는 데, 현재 주력으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은 위의 박사장의 말처럼,  집단의 힘을 앞세워서,"막무가내로 떼를 쓰거나 툭 하면 고공시위와 파업을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언급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특히 현대차노조처럼 나가다가는 미국의 자동차 빅 3의 꼴을 따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