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3년4월3일 QT - 빛으로 길이 되신 분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3. 4. 25. 18:12



주일을 무시하면


나폴레옹이 1813년 10월 17일 영국을 침략했다가
웰링턴 장군에게 망했다. 그 날은 주일이었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미국을 침공했다가
원자폭탄의 세례를 받고 산사조각이 났다.
그 날도 주일이었다.
1950년 6월 25일도 주일이었는데, 그 날
김일성이 남침을 했다가 북한은 저 모양 저 꼴이 되었다.
-작자 미상의 글 ‘주일을 무시한 결과’에서-

신호등을 보면 파랑 불은 가라는 신호,
빨강 불은 정지하라는 신호입니다.
달력을 보면 주일을 표시하는 숫자는 모두가 빨강 색입니다.
그것은 하던 일을 멈추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적신호인 것입니다.
운전자라면 적신호를 무시하고 주행했을 때 오는 비극이
얼마나 큰 것임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을 무시하고 악을 행한 자에게
더 크게 심판하시는 분을 두려워하십시오.
참담한 결과를 얻지 않으려면.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요
교회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이 찬양을 하며 서로를 사랑하며 축복한다고 많이들 하시지요?
저 또한 이 찬양을 부르며 다른 사람을 향해 손을 뻗어 사랑과 축복의 인사를 많이 했는데요. 어느 날인가 이 찬양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기도 하시지만 나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너무 잊고 살아왔지 않았나 싶었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다른사람에게만 적용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요,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도 얼마나 따스한지요. 하나님의 사랑은 내 이웃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를 사랑하십니다.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섬김의 왕 예수 - 막10:35-45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얼마전 KBS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을 통해 전국합창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의 가사를 보면‘삶이란 지평선은 끝이 보이는 듯해도 가까이 가면 갈수록 끝이 없이 이어지고...’삶이란 지평선은 끝이 없이 이어가듯이 인생도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삶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거창하게 철학적으로 대답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삶이란 섬기는 것이고,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사는 것이지, 나 혼자만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심장이 고동치는 것만큼 인생은 소비되고 있습니다. 중병에 걸린 자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 삽니다. 욕심으로 놓아 버리지 못하고, 미워하고 헤어지고 야단들입니다. 남은 생애를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까요? 예수님은 삶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시며 따라오라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나는 얼마나 비슷하게 따라가고 있으십니까? 아직도 많이 가지려는 탐욕과 좀 더 즐기려는 쾌락과 남보다 높아지려는 욕망에 내 인생을 뿌리박고, 짧은 인생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 야고보와 요한! 이 두 제자가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주군인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한자리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37절) 듣고 있던 다른 제자들은 괘심하게 생각했습니다.(41) 말은 안했지만 모두 다 그 자리가 탐났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낼 것도 없잖아요. 이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사탄은 이 점에 우리가 약함을 알기에 이쪽을 치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이 제자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지만, 너희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42-45).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달라야 하느냐? 삶의 목적과 삶의 자세가 달라야 합니다. 자기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이웃중심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영성은 삶의 현장에서 빛나는 영성입니다.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자신만을 위하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섬김의 삶을 삽시다. 언젠가 예수님 앞에 설 때, 예수의 이름으로 행한 사랑의 행위를 기억하실 것이며 "잘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적용]
-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 주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아직도 세상적인 욕망을 따라가지는 않은지 점검하고 결단합시다.
- 나의 섬김의 삶은 어떠한지요, 내가 좀 더 위에 있다면 주님의 마음으로 섬김을 실천해 봅시다.

[기도]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부끄러운 모습을 고백합니다. 주신 것들에 감사하지 못하고 나누며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이제 주님을 따르는 삶에 열심을 품게 하셔서 하나님이 주신 생애를 가치있게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여! 저를 새롭게 하시고 새 일을 행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자녀들의 꿈과 현실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제인 아담스는
평생을 미국 시카고 빈민굴에서 문제아들과 함께 보냈다.
그녀는 만나는 부모마다 이런 말을 했다.
“딸이 엄마와 얘기하고 싶어 하거든
지금 오븐에 음식이 타고 있어도 먼저 딸과 이야기하세요.
아들이 아버지와 얘기하고 싶어 하거든
가게 문을 닫고라도 아들의 말 상대가 되어주십시오.
그것이 돈을 버는 것입니다.”
-최승일 목사의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에서-

부모는 학교나 학원에 자녀를 맡기면
괜찮은 인간으로 성장해주리라는 착각을 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의 90%는 부모로부터 오고,
나머지 모든 영향을 합한 것이 10%라고 합니다.
자녀들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은
학교나 학원이 아니라 부모입니다.
자녀들의 꿈과 현실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탈무드에 “하나님은 직접 모든 아이들에게 갈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 창세기 23장 12-20절
12.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13.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14.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5.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18.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헷족속이 막벨라 굴을 선물로 준다고 했을 때, 그 값을 은 사백 세겔로 계산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헷족속은 아브라함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라를 장사할 땅을 무상으로 주려고 하고, 아브라함은 헷족속에게 무상이 아니라, 대가를 지불하고 땅을 사려는 모습 말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제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교우들은 목회자들에게 잘 해드리고 싶어서 애를 쓰고, 목회자는 교우들의 모든 일에 감사하면서 자신의 대접받는 자리를 줄여나가는 모습 말입니다. 정말 이런 모습을 우리 교회에서 꼭 보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는 한국 교회들이 목회자가 헌금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다고 사회법에 고소하고, 목회자는 사례를 더 많이 받는 곳으로 옮겨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고 있습니까? 교회가 이 땅에 주신 하나님의 나라인 것을 믿는다면, 교회는 아름다운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늘 아브라함과 헷족속이 보여준 모습처럼, 한국교회의 모습이 달라지기를 기도합니다.
만약에 교회 안에서 이런 모습이 다시 살아난다면, 세상은 오히려 교회를 기뻐할 것이고, 교회와 세상의 관계도 오늘 아브라함과 헷족속의 모습처럼 변할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 감사와 기쁨이 넘쳐나지 않는데, 어떻게 세상을 향해서 우리가 감사하며 살고, 기뻐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세상 사람들은 “당신들이나 잘하세요!”라고 비아냥거릴 겁니다.
먼저 우리 교회 안에서 아름다운 소식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냄새나는 일들이 사라져 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섬기는 교회에서 이런 아름다운 소식이 넘쳐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실천하는 하루가 되기 바랍니다.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억울하면 기도하라



억울하게 당했다고 느낄 때
제일 먼저 드릴 기도는 자신을 성찰하는 기도입니다.
억울하게 당할 때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더욱 쉬운 일입니다.
이런 경우 다른 이들에 대한 비난이나 저주는
내 영혼에 조금의 유익도 가져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성찰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는 내면에 있어서 부요한 자가 됩니다.
-이동원 목사 ‘억울하게 당할 때’에서-

오늘 나의 불행이 주의 징계였다면
참회는 나의 새로운 아침의 행복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오늘 당하는 고난이 내 과오와 상관없는
억울함으로 다가오거든 나를 찢고자하는
원수를 위해 기도할 시간입니다.
원수가 회개치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십시오.
그가 나에게 파놓은 함정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이
곧 드러날 것입니다.
주의 의로우신 심판을 믿으며 소리 높여 주를 찬양하십시오.
억울함이 곧 물러가고 성숙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합력하여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임마누엘 - 사 7:10-17
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17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십시오. 아하스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그게 어떤 것이든 좋으니 <네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에게 확신을 주시고 믿음에 굳게 서게 하시기 위해서였는데 아하스는 무례하게도 하나님의 그 은혜로우신 제안을 거부하며 <나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스가 그렇게 말한 진짜 이유는 하나님보다도 앗수르 군대와 그들이 섬기는 신의 도움을 더 기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괴롭히지 말라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13절).
<다윗의 집>이란 유다의 왕가, 즉 아하스의 집을 가리킵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이것은 압제와 폭정으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 다시 하나님마저 모욕하려 드느냐는 말씀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했던 불의한 재판관처럼(눅 18:2) 끊임없이 하나님을 괴롭혔습니다(말 2:17). 불신하고 모욕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더 쓰리고 아프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탈무드에는 <아내를 까닭없이 괴롭히지 말라 그녀의 눈물방울을 하나님이 세고 계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다, 그것도 다윗의 집이라는 아하스 왕가는 백성들을 멸시하고 학대하므로 괴롭혔을 뿐 아니라 철저한 불신과 모멸로 하나님마저도 괴롭히며 고문했습니다. 하나님은 경외와 예배의 대상이시지 어떤 경우에도 무시와 모욕의 대상일 수는 없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십시오. 믿음과 순종과 찬양으로 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성도가 되십시오.

징조를 주시리라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14절).
사람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약속을 무효화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아하스가 징조를 원치 않았지만 하나님은 기어이 당신의 약속과 계획을 관철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이 곧 <임마누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와 사상과 윤리와 도덕은 다 상향식 구도를 가집니다. 열심히 고행하고 수도하며 믿거나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도를 닦아 깨닫거나 착하고 선하게 살므로 구원을 받고 해탈을 하고 또 죽어 좋은 곳에 가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자신의 구원의 주체가 되어 신을 찾고 구원의 경지에 이르자는 것입니다. 율법주의, 윤리주의. 고행주의가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만큼은 상향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오신 하향식 종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종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온 하늘을 다 헤매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친히 처녀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누구도 인간의 힘이나 재주로는 하나님을 찾거나 만날 수 없습니다. 땅도 아닌 저 하늘 어디에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겁니까? 하나님이 나를 찾아 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과의 만남이 성사됩니다. 기독교는 바로 그런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지나친 근심은 불신앙


시카고 러쉬대학교 메디컬 센터에서는
65세 이상의 노인 1064명을 대상으로
걱정 및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조사한 후
3년부터 6년이 경과된 시점에 이들 중에서
누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있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결과는 걱정이 많고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들일수록
노년기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은 근심자체를 잊어버리라고 조언한다.
근심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을 갖는 것이다.
-김은호 목사의 ‘근심을 이기는 길’에서-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근심은 생명의 적이다"라고 했습니다.
염려는 우리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파괴하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을 단축시킬 뿐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인 일에 전념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했습니다.
지나치게 근심하지 마십시오.
지나친 근심은 불신앙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하나님 앞에서 쿨한 척 하지 말기
우린 하나님앞에서 얼마나 진실한가요. 혹 하나님 앞에서까지 사람들 대하듯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머리털까지 세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 앞에서 왜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겁니까. 못난이 얼굴이 되도록 하나님 앞에서 아이처럼 울어보는건 어떨까요. 떼쓰듯 칭얼거리듯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내 진짜 모습을 보여드리는건 어떨까요.
"하나님앞에서 쿨한척 하지 말아요. 우리"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그 날에는 - 사 7:18-25
18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곳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19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 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
20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쪽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 털과 발 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
21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22 그것들이 내는 젖이 많으므로 엉긴 젖을 먹을 것이라 그 땅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는 엉긴 젖과 꿀을 먹으리라
23 그 날에는 천 그루에 은 천 개의 가치가 있는 포도나무가 있던 곳마다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라
24 온 땅에 찔레와 가시가 있으므로 화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25 보습으로 갈던 모든 산에도 찔레와 가시 때문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풀어 놓으며 양이 밟는 곳이 되리라
유다의 아하스 왕은 앗수르 왕이 원군을 보내 에브라임과 아람 동맹군들을 막아 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잔뜩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앗수르에 모든 것을 걸었고 막강한 군대를 보내 적들로부터 구해 주기만 한다면 기꺼이 앗수르 왕의 종이 되겠다는 비굴한 약속까지도 한 터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성전과 나라의 곳간을 다 털어 앗수르 왕에게 금과 은 등의 뇌물을 바치기도 했습니다(왕하 16:7-8). 그러나 하나님은 아하스가 의지하는 그 앗수르가 도리어 그에게 치명적인 채찍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고, 또 그 예언은 대단히 신속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앗수르 왕이 도리어 유다를 공격한 것입니다(대하 28:20).

적들이 초장에 앉으리라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 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19절).
침입자들이 유다 땅을 범하여 아무런 항전이나 저항도 받지 않고 모든 초장에 앉았다는 것은 백성들이 놀라 모조리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앗수르 군대가 유다를 차지하는 일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전혀 저항 받지 않고 거침없이 점령하여 초장에 앉아 휴식을 즐길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불신하며 도리어 사람을 의지하고 다른 나라에 기대 온갖 비굴한 짓을 다한 유다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하고 참혹한가를 똑똑히 목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사람을 삼가라>(마 10:17)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할 분은 오직 한 분 주님 뿐이십니다. <주님만 사랑하게 하소서>란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나의 눈이 너무 밝아 세상만 바라보려 하거든 / 나의 눈을 가리시어 주님만 바로 보게 하소서 / 나의 귀가 너무 여려 세상 말 들으려고 하거든 / 나의 귀를 막으시어 주님 말씀만 듣게 하소서 / 나는 연약하고 힘이 없이 쓰러지기 잘 하니 / 주님 도와 주소서 주님 잡아 주소서 나를 인도하소서 …>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라
<그 날에는 천 그루에 은 천 개의 가치가 있는 포도나무가 있던 곳마다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라>(23절).
비옥했던 온 땅이 침입자들로 초토화되어 황폐해 질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농부들이 세내어 천 그루의 포도나무를 심었던 곳에 그 날에는 온통 찔레와 가시만 무성하여 땅을 빌려준 지주나 세를 낸 농부가 다 아무런 이득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비옥한 땅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실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올해도 우리가 좋은 포도를 맺지 않고 들포도만을 잔뜩 맺는다면 지금 우리의 삶의 장은 하루 아침에 찔레 밭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농기구들이 전쟁을 위한 무기로 바뀔 수도 있고(25절), 예전에는 사람들이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낫을 들고 갔던 곳에 이제는 가시덤불과 잡목 숲에 숨어 있는 포식자를 사냥하기 위해 화살을 들고 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24절). 인간의 죄악과 허물로 인한 심판이라 하여 반드시 인간에게만 화가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삶의 요람인 자연과 환경도 불모화 됩니다. 노아 때도, 소돔과 고모라도 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도 <피조물들이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어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롬 8:19, 21)고 했습니다. 인간의 죄악 때문에 자연이 함께 저주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다시 회복돼야 신음하는 자연도 새롭게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선한 길잡이를 만나는 것은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을 등반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있다. 바로 길잡이이다.
다른 장비나 기구가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할지라도
길잡이가 없으면 낭패를 보고 생명까지 잃을 수 있다.
인생이라는 산맥을 오르는 데도 길잡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암벽에 부딪쳤을 때에,
험한 길을 만났거나 길을 잃었을 때,
위기상황이 발생한 그 곳의 지리를 잘 알아서
올바르게 대처할 줄 아는 길잡이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조승희 목사의 ‘나를 위한 베스트’에서-

시련이 닥쳤을 때,
인생의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방황할 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좀 더 좋은 길잡이를 만났더라면 고생을 덜 했을 텐데,
좀 더 일찍 바르게 사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스승을
만났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가치 있는 삶을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 말입니다.
우리 인생의 길잡이는 누구이신가요?
좋은 길잡이를 제대로 만난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동행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마헬살랄하스바스 - 사 8:1-8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가지고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2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언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3 내가 내 아내를 가까이 하매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4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임이라 하시니라
5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6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7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8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동맹국인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고, 기고만장해진 앗수르 왕이 결국은 남왕국 유다까지도 황폐하게 할 거란 예언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큰 서판을 가지고 그 위에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하셨습니다.(1절). <마헬살랄하스바스>란 앗수르 군대가 아주 신속하게 노략질 할 것이라는 뜻의 계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곧 태어날 이사야의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심판을 상징하는 말로 명명하라 하신 것입니다.

엄마, 아빠라 부르기 전에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임이라 하시니라>(4절).
이사야의 아내가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도 첫째와 마찬가지로 그 이름 속에 예언을 담고 있지만 스알야숩(남은 자가 돌아오리라)은 긍휼하심을 뜻한데 반해 마헬살랄하스바스는 가차없는 심판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 서로 다릅니다. <내가 내 말을 속히 이루리라>(렘 1:12). 그렇습니다. 이사야의 둘째 아들의 이름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심판은 그 아이가 겨우 <엄마, 아빠>라는 말도 채 하기 전 앗수르의 노략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긴박한 예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애매하거나 모호하거나 막연하지 않습니다. 명료하고 확실합니다. 애써 눈을 감고 귀를 막지 않는 한 누구나 알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유식한 자도 무식한 자도 어른도 아이도 듣고자만 하면 누구나 들을 수 있고, 알고자만 하면 다 알 수 있습니다. 단지 듣고 알지만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을 뿐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도 선지자의 두 아들 이름을 통해 반복하여 계시했음에도 하나님의 그 예언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물이 흘러 목까지 차리라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7-8절).
주께서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유프라테스 강으로 그들을 덮을 것이라는 것은 곧 앗수르 왕의 노도와 같은 침략행위를 이르는 말씀입니다. <그래, 너희가 유다에는 유프라테스 강에 비견할 강이 없다며 스스로 유다 땅을 멸시하면서 유프라테스를 그토록 흠모하니 어디 한 번 그 강을 실컷 맛보게 해주마. 그 강가의 앗수르 왕이 큰 군대를 거느리고 마치 범람하는 유프라테스처럼 흘러들어와 너희 목까지 차오를 것이라.> 꼭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너무 세상을 동경하고 세상적인 부와 문화를 사모하면 하나님은 도리어 그들을 채찍으로 우리를 치십니다. 그래서 세속의 거센 물결이 우리의 목까지 차오르게 하십니다. 부자들로 하여금 우리를 압제하게 하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부자들을 부러워하지 못하게 하십니다(약 2:3). 마치 앗수르 군대가 유프라테스 강의 홍수처럼 유다를 덮쳐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범람하듯 그렇게 호되게 당하게 하시므로 세상의 모든 부와 세속 문화의 본질을 깊이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을 고백하는 땅들은 비록 홍수가 날지라도 결코 망하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도 잊지 마십시오.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아버지이십니까?


아버지가 가족에게 주님의 권위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사역이다.
그래서 사탄은 이 영적권위를 빼앗기 위해
아버지를 집중공격해서 죄를 짓도록 유혹한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의 죄로 영적권위를 빼앗겼던 것처럼
아버지가 죄 된 생활 속에 깊이 빠지게 되면
자녀들 앞에서 영적 권위를 상실하게 되고
자녀들 역시 아버지의 죄 된 행실을 본받아
부모에게 불순종하면서 마귀의 손에 놀아나게 된다.
-강안삼 장로의 ‘아버지의 영적 권위’에서-

죄악을 따라 살면서 영적권위를 잃어버린 아버지들 때문에
자녀들이 부모에게 불순종하면서
가정이 무너지는 예를 수없이 보았습니다.
교회지도자들이 더 큰 심판을 받는 이유는
범죄 할 때 먼저 자녀들이 신앙의 타격으로 반항하게 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이십니까?
죄를 짓게 하는 사탄의 공격을 물리치십시오.
자녀가 아버지를 본받아 마귀의 손에 놀아나지 않게 하려면
.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기독교 문화는 선교 도구이지만


문화는 라틴어로 쿨투라(Cultura)다.
종교의식과 경작하고 파종한다라는 ‘쿨투스’에서 기원한 것이다.
종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문화가 발생했다.
그래서 한국의 기독교문화도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바벨탑을 쌓은 일은 하나님의 뜻을 어긴 인간이 모여
하늘로 올라가려는 의지를 표현한 활동이었다.
하나님의 진리를 적대시하고, 명령을 거스르는
‘바벨탑의 문화’는 지금도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비 진리를 바탕에 둔 문화를 경계하고 비판할 줄 알아야한다.
-장학일 목사의 ‘문화의 의미’에서-

문화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좋은 선교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신앙을 파괴시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소금인 그리스도인들이 그 사명을
시대 속에서 잘 감당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 안에서 정직과 희생의 모습을 갖춘 신앙인의 삶이 모일 때
아름다운 문화를 이룰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기독교 진리에 바탕을 둔 문화인지
냉정하게 바라보는 태도 또한 필요합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깨끗하게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빛으로 길이 되신 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보라.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어두움에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빛으로 길을 주셨다.
또 죄인에게는 용서의 빛을, 마귀에게 잡힌 자에겐 해방의 빛을,
병든 자에게는 치료의 빛을 주셨다.
절망자에겐 소망의 빛으로 죽은 자에게는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
예수님 자체가 빛으로 길이 되셨다.
-작자 미상의 글 ‘빛의 사자이신 예수님’에서-

빛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아무리 어두워도 빛이 비추이면 어두움은 곧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빛이시기에 예수님 자체가 바로 길이 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오셨기 때문에
그 길로 돌아가는 길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강림하심이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의 빛 구원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만이 영생의 길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너희는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 창 24:40-48
40 주인이 내게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 너는 내 족속 중 내 아버지 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것이니라
41 네가 내 족속에게 이를 때에는 네가 내 맹세와 상관이 없으리라 만일 그들이 네게 주지 아니할지라도 네가 내 맹세와 상관이 없으리라 하시기로
42 내가 오늘 우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만일 내가 행하는 길에 형통함을 주실진대
43 내가 이 우물 곁에 서 있다가 젊은 여자가 물을 길으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하여
44 그의 대답이 당신은 마시라 내가 또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도 길으리라 하면 그 여자는 여호와께서 내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자가 되리이다 하며
45 내가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와서 우물로 내려와 긷기로 내가 그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내게 마시게 하라 한즉
46 그가 급히 물동이를 어깨에서 내리며 이르되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기로 내가 마시매 그가 또 낙타에게도 마시게 한지라
47 내가 그에게 묻기를 네가 뉘 딸이냐 한즉 이르되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 하기로 내가 코걸이를 그 코에 꿰고 손목고리를 그 손에 끼우고
48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묵상글]
오늘 성경본문의 말씀은 이삭의 아내를 찾아서 밧단아람으로 떠난 종이 우물가에서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를 만나는 장면의 마지막입니다. 그 종은 우물가에서 도착했을 때, ‘자신에게 물을 청하고,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는 사람’을 이삭의 아내로 결정하기로 마음속으로 계획했습니다. 그 때, 자신에게 다가와서 물을 청하고, 낙타에게도 물을 먹인 여인을 발견했는데, 그 여인이 바로 이삭의 아내가 된 기브가입니다. 그 종은 자신이 만난 이 여인 리브가가 자신의 주인인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 아브라함의 종은 48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어떤 배우자를 만나야 하는지 결정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오늘 아브라함의 종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 기준이 올바른지를 묻고, 계획한 그 길을 담대하게 걸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지혜와 무엇을 좋아하는 마음,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마음으로 계획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행하는 모습을 보시고, 우리의 삶에 가장 합당한 것으로 채워주시고,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잠언 16장 9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이 말씀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선택해야 할 많은 일들 가운데 우리에게 일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