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는 세계 5위다. 2012년 현대기아는 714만 대로 시장점유율을 전년도 8.6%에서 8.8%로 끌어올렸다. 그 위로는 르노닛산, 폴크스바겐, GM, 토요타밖에 없다. 1위 토요타가 975만 대니까, 마침내 세계 1위도 가시권으로 들어왔다. 좋아하긴 이르다. 국내 생산보다 해외 생산이 갈수록 많아지니까! 현대의 2013년 계획에 따르면 2012년에 비해서 국내는 191만 대에서 185만 대로 낮추고 해외는 250만 대에서 281만 대로 늘린다고 한다. 사정은 기아도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노조 등쌀 때문이다.
현대기아자동차의 한국 공장은 올해부터 주간 2교대제로 공장가동을 20시간에서 17시간으로 줄이지만, 미국 공장은 3교대제로 100% 가동해도 물량이 딸려 공장 증설을 계획한다. 2교대 시범 운영에서 기아는 14.5%, 현대는 8.7% 생산이 감소했다. 노조가 장담한 생산성 향상은 없고, 임금은 그대로라서 생산 감소에 따른 손해는 회사와 협력업체와 국민이 고스란히 떠맡을 듯하다. 이것은 약과다. 현대의 전주 공장은 1교대 11시간 가동한다. 시설의 약 50%를 놀리고 있다. 경영진이 1000명을 더 고용하여 2교대로 전환하려고 하자, 경영참여의 명목으로 노조가 발목을 잡고 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한 나라에서 다름 아닌 노동자의 이익단체가 협력업체까지 합하면 4000명의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다.
한국의 노조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을의 수호천사로 통하는 노조위원장은 갑의 우두머리 악마로 여겨지는 기업총수보다 사실상 높아진 지 적어도 15년은 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의 뿌리는 귀족노조, 강성노조, 정치노조였던 것이다. 기업총수는 회사가 망하기 전에는 노조 소속 노동자를 한 명도 내보내지 못한다. 합의하에 명예 퇴직금을 다 받고도 나중에 그중 한 명 또는 제삼자가 불만을 제기하여 골리앗 위에 올라가 국회나 정부보다 높은 민주노총에 악덕 기업주라고 고자질하면, 여론이 금세 용암처럼 들끓고, 끝내 원죄의 굴레를 쓰고 기업총수는 국회까지 불려가서 일감이 하나도 없어도 뿔 뽑고 잡담하고 담배 피우느라 고생 많다며, 하루 세끼 다 소고기 사 먹으라고, 고액의 연봉을 지불하겠다고 생방송으로 엄숙하게 약속해야 한다. 그뿐 아니다. 기업총수는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노출되어 있다. 여차하면 유구무언이라 다소곳이 법정에 서야 한다.
반면에 전국의 노조를 거의 100%를 장악하고 있는(노조 가입률이 10%이므로)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노동자는 한국보다 2~3배 잘 사는 나라의 노동자보다 임금이 비슷하거나 높다. 현대의 울산 공장 노동자 임금이 미국 앨라배마 공장 노동자 임금보다 20% 높다. 다른 기업도 대동소이하다. 1인당 국민소득에 비해 2~3배 높은 임금을 받는다. 대기업의 이익은 사실상 이들이 대부분 가져간다는 말이다. 협력업체와 비정규직은 그들과 임금이 갈수록 차이날 수밖에 없다. 이들이야말로 90% 일반 노동자와 실업자 ‘을’을 짓밟고 선 ‘갑’이다. 또한 노조지도자는 언론의 눈과 귀와 촉수에서 벗어나 있다. 성역(聖域)의 현인(賢人)이다. 따라서 내분으로 간혹 치부가 드러나는 수가 있어도 그것은 토막뉴스로 스쳐 지나간다. 정치권은 그들의 표에 절절 매고 그들이 퇴임하면 전관예우 차원에서 여야가 다투어 시의원, 국회의원을 선물한다.
“20여 년간 노조에 끌려 다니다 보니 현장의 근로기강이 다 무너졌다. 편성효율(적정인원/실제인원)이 53%밖에 안 된다. 53명이 할 일에 100명이 투입돼 있다는 뜻이다. 베이징현대(87%)나 앨라배마 공장(92%)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 근로자들이 작업라인에서 무협지를 읽고, 게임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사례도 있다.” (동아일보 2012-06-07)
개인이든 집단이든 권력은 비판에서 자유롭게 되면 타락하게 마련이다. 특히 명분이 그럴 듯하면 민주사회에서도 비판에서 자유로운 권력이 생기기 쉽다. 시민단체와 노조는 민주사회의 독버섯이 되기 쉽다. 그중에서도 규모가 큰 노조는 치외법권을 누리며 집단이기주의를 분배정의로, 사회정의로 포장하기 쉽다. 1997년부터 노조개혁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되었지만, 여야를 떠나 정치권의 눈치 보기로 결국은 모조리 실패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록 공약에는 못 내세웠지만, 한국의 대처, 레이건, 슈뢰더가 되어 노조를 개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성장하더라도 해외공장에 의한 성장으로 속 빈 강정이 된다.
노조만 개혁한다고 한국의 경제가 성장의 두 날개를 다는 것은 아니다. 귀족노조가 제조업의 문제라면 정부규제는 주로 서비스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경제 민주화란 명목으로 제조업에도 규제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서비스업 규제다. 여기서는 아마추어의 애국심이 나라를 망친다.
한국의 산업구조에서 서비스업과 제조업 비율은 60.3% 대 28.1%인데, 이것은 선진국 중 제조업 비율이 가장 높은 독일에 비해서도 서비스업이 12.4% 낮다.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독일만큼 풀어도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용탄력성은 이제 서비스업이 제조업보다 9배 높다. 1970년대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고용탄력성이 각각 0.59와 0.49였지만, 2000년대엔 0.08과 0.72로 달라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2005년에서 2009년 사이에 일자리가 서비스업은 125만 개 늘어났지만, 제조업은 10만 개만 늘어났다. 이제 상품 수출이 늘어나도 고용이 별로 늘어나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서비스업 중에 최대 광맥은 금융과 의료와 교육이다. 한국에선 보수와 진보 구별 없이 이 노천 광산들을 공공의 장으로 인식하여 이익 추구를 죄악시한다. 그래서 전근대적인 규제가 폐가의 거미줄처럼 겹겹이 쳐 있다. 규제의 거미줄은 진입 장벽(entry barrier)으로 작용하여 결국 이 분야의 우물 안 개구리 기득권을 공고히 해 줄 뿐이다. 자유무역이 확대되면서 그나마 제 이익도 지키지 못하고 알짜는 외국의 선진 서비스업체에 다 빼앗긴다. 시대착오적인 정부규제는 이따금 보도되는 언론의 특집에 잘 나와 있으므로 여기선 생략한다.
강철대오 귀족노조는 경제의 수갑이요, 얼키설키 정부규제는 경제의 족쇄다. 손톱의 가시 몇 개 뽑고 발바닥의 티눈 한두 개 제거한다고 손발이 자유로울 리 없다. 경제의 수갑과 족쇄를 차고서는 성장도 복지도 행복도 타는 목마름으로 핏발이 선 눈에 어른거리는 사막의 신기루다. 1961년 경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했듯이, 2013년 다시 한국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도입할 때다. (2013.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