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3년1월10일 QT - 눈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3. 1. 10. 20:55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우리는 느낀다고 표현한다.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느끼는 사람이다. 삶의 현장에서 함께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선한 손으로 자신을 붙잡고 계신 하나님, 지금도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이 느껴진다면 그는 지금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이다.
-조현삼의 [신앙생활 설명서] 중에서-

보이는 눈으로 살아가는 것은 보이는 부분까지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세상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삶은 마음의 눈이 있습니다. 그 눈으로 내 삶을 움직여 가시는 주님만 바라보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어린아이와 같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고,
오직 하나님이 아니면 안된다는 "고백" 이
오늘 하루 삶의 "고백" 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글쓴이 : 김성은
인덕대만화과 졸업
빈아트 일러스트
한성대 애니메이션과 졸업
내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 말 1:11-14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2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14 짐승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라기 시대는 유다 백성들의 믿음이 황폐화되고 영성이 가장 불모화된 시기였는데 그런 민족적 타락의 배후에는 무엇보다도 그 사회 리더들인 제사장들의 끊임없는 추락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더러운 떡>을 드리고 <눈 먼 희생>을 드리며 앞장서서 예배를 무너뜨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10절) 하시며 진노하셨던 겁니다.

깨끗한 제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 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11절).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반드시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구별된 거룩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안 받으신 이유가 뭣이었을까요? 짐승이 아닌 곡식을 드렸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깨끗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먹던 곡식을 퍼다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제물과 가인은 안 받으셨던 겁니다. 반면 아벨의 제사는 곡식이 아닌 양을 바쳐서 열납하신 게 아니라 짐승의 첫 새끼를 구별하여 드렸기 때문에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도 전에는 공부 잘 하고 잘 생긴 자식은 절대 목사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식은 다 판검사나 의사시키고 대학에 떨어지거나 못난 자식은 <신학교라도 가라>며 목사시켰습니다. 교계 지도자들의 자질과 소양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요즘 다시 한 번 과거 한국 교회의 그런 신앙행태들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깨끗하지 못한 제물, 더러운 떡은 바치는 자에게도 복이 안 될 뿐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최악의 망령된 행위입니다.

병든 봉헌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13절).
제물에 대한 또 하나의 원칙입니다. 반드시 희생제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희생이 아닌 제물은 제물이 아닙니다. 내게 부담이 안 되고 손해가 안 되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뿐인 수준은 결코 희생제물일 수가 없습니다. 또 희생제물이 아닌 제물은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제물이 못 됩니다. 희생을 감수하며 드리는 제사가 진짜 예배입니다. 쓰고 남은 것이 아니고 다른 데 안 쓰고 드리는 헌금이 진짜 헌금이고 다른 일을 희생하며 바치는 헌신이 진짜 헌신입니다. 그럼에도 손해 안 보고, 부담 안 느끼고, 무리하지 않고, 아무런 희생도 없이 바치려다 보니 결국은 병든 봉헌물, 눈 먼 제물을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번거러운고 하며 코웃음친다>는 것도 사람들이 <주의 일을 하며 왜 이렇게 일이 많은가? 하며 불평하고 툴툴거린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게 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범죄 행위라는 지적입니다.

저주를 받으리라
<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14절).
흠 있는 제물을 속여 드리고, 희생 아닌 병든 봉헌물을 거짓으로 바치면 축복은커녕, 은혜는커녕 결국 저주를 면치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두려우신 큰 임금>이시기 때문입니다. 엄정하시고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그래, 우리의 그 뻔한 수작과 허튼 몸짓에 속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반드시 심은 대로, 뿌린 대로, 드린 대로 받게 하시고 거두게 하십니다. 우리가 정말 이 새해에 저주가 아닌 축복을 받고 진심으로 은혜 받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깨끗한 제물을 드리고 병든 봉헌물이 아닌 희생의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도 기대에 못 미치는 축복, 기대에 못 미치는 은혜 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 우리가 드리는 제물이 아직 수준이하여서가 아닌지를 한 번쯤 진지하게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디 당신의 삶 속에서 무너진 예배, 타락한 제물, 희생 아닌 헌신이 모두 바르게 회복되어 그야말로 저주가 아닌 은혜와 축복으로 충만한 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