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3년1월5일 QT - 기도를 계획하라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3. 1. 5. 14:27



기도를 계획하라


빌리 선데이는 야구 선수일 때 예수님을 만났다.
그가 교회에 나갔을 때 지도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자네 신앙생활에 성공하고 싶은가. 세 가지를 계획하게.
날마다 15분 동안 기도하기와 15분 동안 성경 읽기.
또 15분 동안 내가 만난 예수님을 다른 이에게 전하기.”
그는 지도자의 충고를 받아들여 평생 동안 실천했다.
그는 20세기 초 30년 동안 미국에서
영적, 도덕적 각성을 주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크게 쓰임 받았다.
-장학일 목사의 ‘기도를 계획하라’에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은 발전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영적인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열망이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계획하십시오.
나만의 기도 시간과 장소를 계획하십시오.
당신이 구별해 놓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큰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영적 거성으로 쓰임 받는 길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반짝반짝 빛나는
이 작은 전구도 모여서 반짝이니 큰 아름다움이 되었다.
우리의 작은 삶, 우리의 작은 섬김.
모여서, 함께해서, 각자가 비추어서 큰 아름다움이 되자.
사람들이 노래하고 소망을 품는 큰 아름다움이 되자.
글쓴이 : 김상동
우물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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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 말 1:6-10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너무나도 신랄하고 원색적이어서 당혹스러울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드럽지만은 않습니다. 언어도 그렇습니다. 마냥 고상하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의미에서 야곱에 대한 사랑처럼 터프한 사랑입니다. 차라리 미움은 부드럽습니다. 에서에 대한 처분처럼 유합니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사랑은 징계하시는 사랑이요 연단하시는 사랑이요 마치 독수리가 새끼를 양육하듯 하는 혹독한 사랑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이 거친 사랑에 대해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일찍이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런 사랑에 대해 무지했기에 <언제 우릴 사랑하셨느냐!>며 도리어 항의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타락한 제사장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6절).
이게 바로 당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신앙적으로 저 밑바닥까지 추락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우선은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공경한다>는 말씀과 <두려워한다>는 말씀은 거의 같은 뜻입니다. 제사장 혹은 영적 리더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그게 뭘까요? 바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 잘 생긴 사람, 말 잘하는 사람,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가장 신실한 제사장일 것입니다. 만약 리더에게 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필연적으로 그 순간부터 타락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이전에 두려우신 분이십니다. 용서 이전에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의 하나님만을 알 뿐 공의의 하나님, 두려우신 하나님은 알려고도 않습니다. 그래서 반쪽 하나님만을 압니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는 지도자들의 교만과 무례함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공경하십시오. 만약 당신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리더라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사역하십시오. 그게 없다면 우리의 모든 행위는 기만과 위선과 장삿속일 뿐입니다.

더러운 떡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을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7절).
제사장이나 목회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타락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예배가 무너진다고 합니다. 아예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주일예배도 드리고 찬양예배, 새벽기도회, 수요예배도 다 드립니다. 그러나 <더러운 떡>을 드리므로 <하나님을 멸시하고> <경멸한다>고 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가장 무서운 범죄요 타락한 제사장들의 하나님 모욕입니다. 하나님께는 당연히 가장 깨끗한 제물을 드리고 가장 신성한 떡을 바쳐야 합니다. 그럼에도 더러운 떡을 드리고도 <우리가 언제 그런 떡을 드렸나이까?>하며 철면피하게 반문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렇다면 여기서 말씀하는 <더러운 떡>이란 어떤 떡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먹다 남은 떡>을 말합니다. 먼저 구별하여 드리지 못하고 자기가 배불리 먹고 남은 떡을 제단에 바쳤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더러운 떡입니다. 부디 깨끗한 떡, 가장 먼저 성별한 거룩한 떡을 바치십시오. 더러운 떡을 바치는 행위야말로 주의 이름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경멸하는 큰 죄악에 다름 아닙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