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자기중심은 지옥의 근원
자기를 내려놓는 것은 해방이며. 자유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따르는 것은 주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아버지의 마음이 임하고 지혜와 능력과 권세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기를 버리는 것은 이처럼 지옥의 재앙을 끝내고 천국의 영광을 끌어당기는 것이므로 마귀는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도록 속이고 역사한다. 자기중심이 되어야만 마귀는 두려움, 상처, 분노와 낙담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미귀는 사람이 자기 자존심을 치켜들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원 목사의 ‘지옥의 근원’에서-
자신의 입장을, 자기 애정을 내려놓고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사랑하게 하십시오. 애정도, 혈연도, 입장도. 체면 따위도 붙들지 말고 오직 주의 손에 올려놓아 보십시오. 그것이 해방이며 승리이며 자유의 길일 것입니다. 소년이 가지고 있던 오병이어가 주님의 손에서 놀라운 도구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붙들고 있는 자아, 자존심, 입장과 체면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십시오 아름답고 놀라운 천국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승리의 삶이며 천국의 삶입니다.
|
|
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
|
| | | | | |
|
| |
|
|
|
유치원 가는 길 |
아이가 유치원을 가고 있습니다. 두 팔을 마구 흔들며, 다리는 폴짝폴짝. 친구를 만나고 선생님을 만나고 새롭게 알아갈 여러 가지 공부가 기대되나 봅니다. 신나나 봅니다. 교회를 생각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교회에 갈 때도 이렇게 신나 하나요? 이렇게 즐겁게 폴짝이나요? 다음세대를 위해 이 민족을 위해 복음이, 교회가 아이들에게 기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 |
|
글쓴이 : 김상동 우물네트워크 대표 기독이미지사이트 피콕 picok.co.kr 운영 기독묵상사이트 씨노트 cnote.kr 운영 |
|
| | | | | |
|
| |
|
|
말년 - 욥 42:12-17 |
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15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16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
|
비극이 닥칠 때 우리 믿는 자들은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당신의 뜻대로 우리를 빚으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의 삶의 환경을 조성하시고 간섭하시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고유한 섭리요 권리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게 닥친 시련과 아픔에 대해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불가해성을 깨닫는 일도 중요합니다. 내 삶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신비 말입니다.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절)고 했습니다. 욥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도 신비 그 자체입니다.
처음보다 더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12절). 하나님은 욥의 말년을 재앙 이전 보다 더욱 복 되게 하시고 창대케 하셨습니다. 성경은 악인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눅 11:26)고 했지만 정직한 자에 대해서는 <그의 결국은 평안이로다>(시 37:37)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자의 말년을 반드시 위로가 더 넘치는 삶으로 만드시고 환난 당하기 이전보다 더 형통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리 극심한 곤경과 역경 가운데서도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선한 자의 형편은 어떻든 결국은 다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걱정하는 것보다 더 잘 해주시고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욥의 경우도 그 모든 소유를 환난 이전보다 갑절이나 더 많게 해 주신 것입니다. 가축, 즉 양과 낙타, 소와 암나귀의 수가 정확히 환난 이전(1:3)에 비해 갑절이 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소유들도 가축에 비례해 다 크게 늘어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전의 소유만으로도 욥이 동방 제일의 부자라고 했는데 지금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들 딸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13절). 욥이 당한 환난 중 가장 처참했던 것은 역시 그의 모든 자녀들이 한 자리에서 몰살당하는 재앙이었습니다(1:13-19).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이전과 동일하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주셨습니다. 자녀들이 다른 재산처럼 갑절이 아닌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실은 갑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죽은 자식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영원히 소멸된 것이 아니고 천국에 먼저 가 영으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욥에게는 그들마저도 다 소중한 자식에 다름없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15절). 그리고 욥이 그 아리따운 딸들에게도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다>(15절)고 합니다. 나중에 다시 주어진 자녀들을 통해 욥의 말년이 그 만큼 더 아름답고 행복했음을 뜻하는 말씀일 것입니다.
손자 사 대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16-17절). 욥은 장수했습니다. 그가 몇 세에 환난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환난 후에도 140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살아생전 그의 후손들을 사 대까지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수는 갑절이 아니었지만 손자들은 갑절 이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욥은 천수를 다하며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린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에 환난의 날에는 화도 나고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빨리 죽여 달라며 떼를 썼지만 지금은 하나님 곁으로 가기를 원하는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엘리바스가 그에게 소망을 가지라고 격려했던 것처럼 <장수하다 마치 곡식단을 제 때에 들어 올림같이 마침내 무덤에>(5:26) 이른 것입니다. 길고 풍성한가 하면 누구보다도 파란이 많았던 욥의 삶은 그야말로 그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는 말년에 새로운 가족과 갑절로 불어난 소유뿐 아니라 장수의 은혜까지 누리며 살다 간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부디 당신의 삶과 생애도 욥처럼 말년이 아름답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
|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