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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목적을 따라가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큰 사실은 우리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육신적인 삶은 자신의 야심을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크리스천의 삶에서는 우리의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결심한다. 크리스천이 되겠다고 결정한다. 그리고 이것저것을 위해 결심을 너무나 자주 한다. 그러나 신약은 오로지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목적만을 이야기한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최고의 하나님을 위한 나의 최선] 중에서-
예루살렘은 주님의 생애에서 아버지의 뜻을 최종적으로 이루시는 장소였습니다. 우리의 뜻을 구하는 곳이 아니라 아버지가 원하는 뜻을 이루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예루살렘에서 탄식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낼지라도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내려와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당신의 존재 목적으로 삼고 한 걸음 한 걸음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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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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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잎 클로버 |
누군가는 행운을 찾아 헤매고, 너를 짓밟을 때 너는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소소하게 자리를 지킨다. 너는 그렇게 일상의 자연스런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너를 보며 감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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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은직 스튜디오 올봄, 디자인 피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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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산업 - 욥 27:13~23 |
13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강포자가 전능자에게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14 그 자손이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 후예는 식물에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15 그 남은 자는 염병으로 묻히리니 그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16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예비할찌라도 17 그 예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 은은 무죄자가 나눌 것이며 18 그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상직군의 초막 같을 것이며 19 부자로 누우나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없어졌으리라 20 두려움이 물같이 그를 따라 미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빼앗아갈 것이며 21 동풍이 그를 날려 보내며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 22 하나님이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쏘시나니 그가 그 손에서 피하려 하여도 못할 것이라 23 사람들이 박장하며 비소하고 그 처소에서 몰아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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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은 산업처럼 부단히 악과 재앙을 생산합니다. 끊임없이 멸망과 비참을 부릅니다. 그게 그들의 분깃입니다. 포악자들은 이 세상에서는 그 어떤 권세의 통제도 받지 않고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들 역시 하나님의 간섭과 제재와 심판은 결코 회피할 수 없습니다.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13절).
번성하여도 칼을 위한 것 <그의 자손은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의 후손은 음식물로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14절). 이것은 악인이나 포악자들의 자손들이 비록 번성한다 해도 결국은 그들이 다 칼에 희생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전쟁의 칼에 죽거나 칼로 사는 자들에게 살해되거나 재산을 노린 강도의 칼에 죽임을 당하거나 하여간 상대가 휘두르는 칼의 표적이 될 뿐이라는 예언입니다. 이는 아무리 자식이나 자손들이 많아도 모두 비명에 갈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설령 칼을 용케 피한 자가 있다해도 그는 다시 기근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악인들은 혹 자기가 넉넉한 재산을 물려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작 그 자손들은 너무나도 곤궁해 평생 끼니 걱정을 하거나 굶기를 밥 먹듯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전형적인 악인의 산업이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물 같이 닥칠 것 <두려움이 물 같이 그에게 닥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앗아갈 것이며>(20절). 제주도와 서해를 거쳐 북상한 초대형 태풍 볼라벤이 남긴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일본 역시도 60년만의 최악의 태풍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악인과 포악자에게는 평생 이런 홍수와 태풍 같은 두려움이 시도 때도 없이 닥치고 또 거센 물살에 휩쓸려 가듯 늘 그렇게 공포에 휘말려 생의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폭풍, 죽음의 돌풍이 불어와 <그를 들어 올리리니 그는 사라질 것이며 그의 처소에서>(21절) 몰아냄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악인은 그의 삶과 최후가 다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 가운데 있음을 확실히 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그를 비웃을 것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며 손뼉을 치고 그의 처소에서 그를 비웃으리라>(23절). 사람들이 악인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연민을 가지거나 애도하기는커녕 오히려 손뼉을 치며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크게 기뻐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또한 가장 불행한 악인의 분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남에 대한 평가로 이러쿵저러쿵 할 게 아니라 언제나 자신의 최종 평가가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 지를 가슴 속 깊이 새겨 봐야합니다. 그 점에서 모세의 최후는 우리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그는 육신의 나이 1백 20세였으나 여전히 <눈빛이 총명하고 기력이 정정한 영원한 청년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평가이자 우리들 모두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복된 인생의 최후 모습입니다. 늘 두려움에 떠는 악인의 모습이 아니라 꿈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가지고 시간이 흘러도 식지 않을 열정을 품고 사십시오. 당신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이 샘솟게 하십시오.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청년의 기개로 거침없이 내일을 열어가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인생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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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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