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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아픔 - 욥 7:11-18 |
11.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12. 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13. 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14.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15.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을 헛 것 이니이다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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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원망을 마음에 그냥 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는 그 자신의 <영혼의 아픔>이 너무 컸고, <마음의 괴로움>이 너무나도 처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마치 유언이라도 남기는 심정으로 그동안 쌓인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11절).
놀라게 하시고 두렵게 하시고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14절). 욥은 하나님이 자기를 저 <바다 괴물>(12절)처럼 취급하셨을 뿐 아니라 밤에는 악몽으로, 낮에는 환상으로 놀라게 하시고 두렵게 하셔서 하여간 밤낮 쉼 없이 자기를 힘들게 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무슨 바다 괴물입니까?> 하는 욥의 항변에서 우리는 무한한 인간적 연민을 느낍니다. 얼마나 가혹했으면, 얼마나 혹독했으면 이렇게까지 원색적으로 하나님께 항의하고 나섰겠습니까? 또 낮에는 고통을 당하더라도 밤에는 모든 것을 잊고 잠 잘 수 있다면 그나마 좀 다행일텐데 욥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잠자리도 침상도>(13절) 자기를 위로하거나 자신의 수심을 덜어주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허락지 않으시고,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아예 당케하시지 않으며, 또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이기게 하십니다(고전 10:13). 욥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그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뼈를 깎는 고통 숨 막히는 아픔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15절). 가끔 죽음 같은 고통을 호소하며 자살까지 기도하는 환자들을 봅니다. 통증 환자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겁니다. 아마도 욥 역시 그런 고통과 그런 죽음의 유혹에 사로잡혔던 것 같습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하겠다>고 합니다. 어느 <섬유 근육통> 환자의 고백입니다.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나는 온 몸의 통증과 호흡곤란 증세로 몇 개월을 고통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쳤고,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통증이 나를 죽음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 견디기 어려운 그 극한의 상황에서 그래도 내게 큰 힘이 된 건 역시 신앙이었다. 그리고 주치의 선생님의 성심성의를 다하는 진료와 절절한 기도, 그분의 기도를 받을 때마다 나는 울었고, 삶에 대한 한가닥 소망도 느껴졌다.> 당시 욥의 심정, 욥의 고통도 꼭 이렇지 않았을까요?
아침마다 권징 순간마다 단련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18절). 욥은 지금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벼랑 끝에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뚜렷한 이유가 없는데 왜 자기를 이토록 숨 가쁘게 위협하시고 옥 죄냐는 겁니다. 왜 제게 이토록 심한 고통을 주시려고 애쓰시는지 그 사연을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분초마다 닥치는 그 모든 고통스러운 시험이 아무런 목적도 없어 보였고, 오직 무의미한 것으로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17절). 이 말씀의 의미도 <도대체 하나님은 사람이 뭐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이렇게까지 간섭하시고 권징하시고 단련하시느냐>는 겁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미천한 사람에게 환난을 주셔서 매순간 과연 견딜 수 있는지를 확인하시고 시험해 보시느냐>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애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불가사의한 신비입니다. 부디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간섭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음을(요3:16) 잊지 마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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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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