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클래식. 오페라

[스크랩] 보케리니 / 현악5중주 제3곡 미뉴엣트

鶴山 徐 仁 2012. 4. 12. 23:44


 

Menuett aus dem Streichquitett

E-dur

보케리니 / 현악5중주 제3곡 미뉴엣트

보케리니 [Luigi Boccherini 1743∼1805]

 

 

 

 

 

 

 

 

 

 

 

  
Cello / Mischa Maisky
Piano / Daria Hovora

 

 

18세기 이탈리아의 고전파 작곡가로 활약한 음악가 보케르니의 작품. 프랑스 궁중에서 쓰였던 가볍고 우아한 4분의 3박자 의 춤곡으로, 17세기경 프랑스의 농촌에서 무도곡으로 시작되어 급기야 궁중의 화려한 무도회의 음악으로 각광받은 작품. <보케르니의 미뉴엣>은 피치카토 반주를 타고 연주되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대표적인 미뉴엣이다.

 

 

미뉴엣(프랑스)과 왈츠(오스트리아)의 차이점

 

미뉴에트(minuet):

우아한 걸음걸이를 뜻하는 프랑스 말에서 유래(프랑스어인 '작다'라는 뜻의 'menu' 에서 유래)되었습니다. 4분의 3박자의 약간 느린 템포의 우아한 리듬을 가진 프랑스 고전 춤곡이며, 1650년경 이후 루이 14세의 궁중에서 애호된 무용을 일컫는 말입니다. 음악적으로는 조용한 3박자형, 균형적인 틀, 분명한 화성적 구조, 무용적 요소의 우아함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모두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16C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17C루이 14세 프랑스 궁정 무도회에서 보급되어, 전유럽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발전을 계속하여 미뉴에트는 실제 춤곡보다 예술적인 색채가 짙어지고 리듬도 자유롭고 복잡해져서 음악형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합니다. 유명한 곡으로는 보케르니의 미뉴엣과 바흐의 미뉴엣, 베토벤의 미뉴엣,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중 미뉴엣 등이 있습니다.

 

왈츠(waltz ):

독일어인 '선회하다'라는 뜻의 독일어 'walzen'에서 유래하였으며, 4분의 3박자의 빠르고 화려한 오스트리아 춤곡으로 처음에는 빈에서 성행하다가 유럽 전 지역으로 전해졌다. 대부분 3박자 "쿵작작"의 느낌이며 오스트리아, 남 독일등에서 "독일 춤곡" "비엔나 춤곡"이라고도 했습니다. 요한 시트라우스에 의하여 크게 발전한 후 쇼팽과 차이코프스키에 의하여 더욱 순수한 예술 작품으로 발전되었다. 특히 요한 쉬트라우스 부자에 의해 왈츠가 전세계로 퍼져 나라마다 훌륭한 왈츠형식의 작품이 지금도 나오고 있답니다. 유명한 곡은 많지요. 요한 쉬트라우스 2세의 비엔나 숲 속의 이야기, 봄의 소리 왈츠,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쇼팽의 강아지 왈츠, 등등...

 

보케리니 (Boccherini, Luigi) [1743.2.19~1805.5.28]

이탈리아의 작곡가 ·첼로 연주자.
국적 : 이탈리아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루카

 

콘트라베이스 주자인 아버지로부터 음악교육을 받은 후, 1757년 로마에 유학하였다. 그 후 첼로 주자로 독립, 바이올린 주자인 만프레디와 연주여행을 하여 파리 등지에서 호평을 받고 이어 에스파냐의 궁정악사가 되었으나, 1787년 이후는 베를린에서 궁정작곡가로서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를 위한 작곡에만 전념하였다. 프로이센왕 사후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갔으나 에스파냐궁정의 냉대로 빈곤 속에 마드리드에서 죽었다.

전에는 미뉴에트만으로 알려졌으나 오늘날에는 교향곡, 첼로협주곡, 현(弦) 또는 현과 피아노를 위한 실내악 등의 작품을 통하여 F.J.하이든을 잇는 세대의 고전파작곡가로 높이 평가된다. 보케리니는 이태리의 Lucca에서 성악가와 콘트라베이스 주자였던 아버지 레오폴드 보케리니(Leopold Boccherini)의 일곱 자녀 중 세 번째로 태어나 아버지 밑에서 기초적인 작곡과 첼로를 배웠다.

1757년 공부를 위해 로마에 가 코렐리와 팔레스티나 음악을 접하고 감동을 받는다. 1761년 다시 루카로 돌아와 시 관현악단의 첼로주자로 일하며 당시 바이올린 주자였던 만프레디(Filippino Manfredi)와 같이 빈, 파리등 유럽의 주요 도시로 연주여행을 다녔다. 그들의 연주는 노래하듯한 아름다운 소리라는 반응을 얻으며, 작곡가로서도 명성을 얻는다. 두 음악가는 1769년 스페인의 Madrid로 갔고, 보케리니는 스페인 왕자의 후원을 받게되어 그를 위해 실내악 곡을 남긴다.

왕자의 죽음(1785년) 이후 그는 몇 년간 스페인 왕의 오르간 주자로 일하나 1787년부터 첼로를 연주했던 독일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Friedrich Wilhelm II) 밑에서 궁정작곡가란 칭호를 받으며 1797년까지 봉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그는 궁핍한 환경에서 작곡생활을 하며 마드리드에서 생을 마친다. 그의 유골은 1927년 출생지인 루카로 옮겨졌고 성 프란체스코(Francesco) 교회에 영예롭게 안치되었다.

그의 작품양식은 전형적인 이태리 기악음악과 당대의 표현 양식을 보여준다. 그는 갈랑 양식의 선율과 비르투오스한 기법을 잘 융합하고 섬세한 다이내믹 기법을 살렸다. 그의 선율은 단순하고 우아하면서도, 힘있고 격정적인 표현도 지니고있다. 그는 하이든의 영향 없이 독자적으로 현악4중주 기법을 이루었으며, 첼로 부분이 자주 테너 음역에서 부각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후기 현악 4중주는 오케스트라 적으로 확장되고 형식과 조성에서 비관습적인 어법을 보여준다. 그의 현악5중주는 특히 모차르트에게 영향을 미쳤다. 6개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Op.5(1768)는 주제적 소재가 두 악기의 성부에 균형 있게 분포되어 서로 대화하듯 진행한다.

그의 작품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널리 애호되었으나, 빈의 기악음악 양식의 발전과 이태리에서의 오페라에 대한 압도적인 관심의 그늘에 가려져 잊혀지다 20세기에 들어와 올바른 평가를 받게되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지고있다.

그가 남긴 대략 400개에 이르는 작품은 소수의 오라토리오, 칸타타, 미사와 드라마 등의 성악곡을 제외하고 대부분 기악곡을 위해 썼다. 기악곡 중에서도 실내악을 위한 작품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대략 30개의 심포니, 2개의 8중주, 16개의 6중주, 약 125개의 현악5중주, 18개의 풀룻 혹은 오보에 5중주, 6개의 피아노 5중주, 약 100개의 현악4중주, 약 50개의 현악3중주, 12개의 현악2중주, 6개의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나타 등이 있다.

 

 

 

 

 

  

출처 : 표주박의 오늘이 마지막이듯
글쓴이 : 표주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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