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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통 바라보기
고통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생명의 위험 가운데 있을 것이다. 맹장염이나 심장 마비, 골수 종양에 대한 경고도 받지 못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고통은 이 땅에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필립얀시의<삶이 고통스러울=�중에서- 누구나 고통이라는 학교에 입학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우리 인생을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비밀입니다. 고통이 있기에 살아있음을 스스로 확인합니다. 고통이 찾아올 때 원망보다 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손길을 봐야 합니다. 고통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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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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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처럼 |
해바라기 처럼 익으면 익을수록 더 겸손이 낮아지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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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풍금 찬양.간증 어와나감독 필리핀선교 인토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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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하여 - 아 2:15~17 |
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16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17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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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15절)란 곧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신랑과 신부, 주님과 교회를 뜻합니다. <위하여>란 사랑, 행복, 축복, 성공을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대목이야말로 올 한 해 주님과의 사랑과 행복을 위해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소중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15절). 그렇습니다. <작은 여우>입니다. 그럼에도 꼭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가 흔들리고, 주님과의 사랑에 위기가 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포도원을 허는 그 <작은 여우>란 무엇일까요? 나태일 수도 있고, 무책임, 불신앙, 무심함일 수도, 어떤 악습이나 헛된 욕망일 수도 있습니다. 작은 여우기에 하찮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런 것을 그냥 방치하다가는 자칫 우리의 소중한 포도원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잡으십시오. 그래서 당신의 아름다운 포도원을 안전하게 지키십시오.
그는 나에게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16절). 신랑과 신부의 연대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나는 네게, 너는 내게>라는 소속감일 것이며, 이는 곧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하신 말씀의 온전한 성취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주님도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고 하셨습니다. 진심으로 2012년 새해에도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신다면 주님 안에 든든히 거하십시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5)고 하셨습니다. 또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6)고도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 있어야 비로소 <백합화 가운데서> 풍성한 꼴을 먹을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날이 저물기 전에 돌아오라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17절). 신부가 신랑을 고대하고, 교회가 주님을 기다리는 심정을 절절히 노래한 말씀입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그 길에 산들이 가로 놓여 있을지라도 노루처럼, 사슴처럼 단숨에 뛰어넘고 강을 건너 내게로 오시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참된 본질은 <종말>에 있습니다. 주님의 오심과 우리의 기다림에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새벽을 기다리고, 봄을 기다리고, 주님 오심을 기다리고, 신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 하여 그냥 멍청히 앉아 내일이 오기만을 바랄 수는 없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날 저물기 전에 꼭 신랑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자는 바울의 이 권면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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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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