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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을 발견하는 부모
성경에는 자녀에 대한 원대한 꿈을 가진 부모들로 가득하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남자 아이를 낳으면 모두 죽여야 하는 이집트의 법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하나님이 주신 자녀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다. 부모는 자녀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져야 한다. 사명을 발견한 자녀는 절대로 인생을 허비하는 일이 없다. -장애영 사모의 ‘엄마의 기준이 아이의 수준을 만든다’ 중에서-
자녀에게 꿈을 묻는 부모는 많지만 하나님이 자녀의 삶을 통해 이루실 놀라운 계획과 비전을 알고자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자녀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입술의 고백이 그저 흩어지는 가벼운 말에 지나지 않도록 오늘, 주님께 자녀의 꿈을 내려놓고 그 분의 지혜를 간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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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보다 더 진한 사랑 - 아 1:2~4 |
2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3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4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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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도 진한 연가답게 아가서는 처음부터 사랑에 대한 묘사와 표현이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왕상 4:32에 의하면 솔로몬은 무려 일천다섯 편의 노래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다른 주제의 노래들은 다 사라지고 이 거룩한 사랑의 노래만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승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큰 다행이며 감사한 일입니까?
입맞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2절). <입맞춤>을 원하는 이 술람미 여인의 바람은 그대로 주님의 스킨십을 기대하는 우리 성도들의 소망에 다름 아닙니다. 입맞춤은 가장 달콤한 사랑의 표현이며 친밀과 인격적인 교류의 상징입니다. 사랑하는 넘녀가 입맞춤을 하듯 우리의 주님 사랑에도 반드시 이 입맞춤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입맞춤, 기도의 입맞춤, 봉사와 헌신의 입맞춤이 필수입니다. 그 입맞춤은 주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요, 성령과의 교통이요, 심오한 교감입니다. <원하니>는 욕구며 갈망의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입맞춤을 열망하듯 우리는 그렇게 주님과의 영적인 스킨십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날ㄹ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부디 온 마음으로 주님과의 입맞춤을 소원하셔서 그야말로 포도주보다 더 달콤하고 향기로운 사랑을 날마다 새롭게 체험하며 사는 행복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향수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3절). 사랑하는 사람은 그 <이름> 조차 <쏟은 향기름>처럼 향기롭다고 합니다. 얼마나 사랑하면 이런 묘사까지 다 했을까요? 향수는 고대 중국인, 힌두인, 이집트, 아랍, 그리스, 로마인들이 다 즐겨 사용해 왔지만 유대인들도 일상생활과 하나님 예배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향수는 특히 여성들을 더욱 아름답고 고상하게 합니다. 클레오파트라도 지독한 향수 애호가로 자기만의 고유한 향수를 제조해 사용했을 뿐 아니라 로마의 쥴리어스 씨이저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할 때도 강렬한 향수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엎질러진 향수보다 더 향기롭고 아름답습니다. 내일 모레가 성탄절입니다. 2천년 전 첫 성탄절 때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바친 예물도 세 가지 중 두 가지(향유와 몰약)가 향기름이었습니다. 부디 향수보다 더 진한 사랑으로 새롭게 성탄하실 주님을 경배하십시오. 금년 성탄절에는 당신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향유와 몰약을 바치십시오.
포도주 <…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4절). 포도주는 세상이 주는 최고의 즐거움과 달콤함의 상징입니다. 사람을 취하게 하여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흥겨움에 빠지게도 하고, 마음껏 웃게도 합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도주를 즐기며 사랑을 노래하고, 인생의 고단함과 무료함을 이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포도주가 아니라 주님과의 사랑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성령충만으로 기쁨을 누리려 합니다. 주님과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낫고> <더 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할 만큼 모든 <처녀들>(성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마땅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중국에서 제조된지 1천년이나 지난 포도주가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요나라 시대의 한 갑부 가족 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발견 당시 호리병에 가득 담겨 있었고 뚜껑을 열자 짙은 포도향이 진동할 만큼 상태도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1천년 숙성된 포도주 향보다 더 진합니다. 올 성탄절에는 꼭 2천년 동안 숙성된 주님의 이 사랑의 향기에 깊이 취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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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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