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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호 칼럼] 北 세습 성공해야 평화 온다는 사람들/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1. 12. 21. 17:04

 

[홍준호 칼럼] 北 세습 성공해야 평화 온다는 사람들

홍준호 논설위원

 

 

입력 : 2011.12.20 23:32

"북 3대 세습은 개탄스럽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 불안은
훨씬 더 위험하다, 고로 김정은을 돕자"는 궤변들
남·북 관계 안 나빠지려면 김씨 왕조 계속돼야 한다는 건가

홍준호 논설위원

우리 사회 일각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죽자마자 북한의 3대 세습을 인정하고 김정은 권력이 안착(安着)하도록 도와주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요지는 이렇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김정은 정권이 실패하면 극심한 체제 불안정이 생길 것이며, 이것이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매우 위험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정권의 실체를 인정하고 조속히 대화하자." 한마디로 말해 세습은 개탄스러운 일이나 세습이 성공해야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지는 걸 막을 수 있으므로 김정은 권력이 안착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자는 것이다. 이전 정부 내내 대북정책을 쥐락펴락하는 자리에 있었던 이는 이런 주장에 '세습의 역설(逆說)'이란 그럴싸한 타이틀을 붙였다.

생판 처음 듣는 논법은 아니다. 북한 체제를 이해하려면 북한 내부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해온 이들이 있다. 북한에 1인 수령(首領) 체제가 등장한 건 그럴만한 내부 요인이 있기 때문이며, 북한 같은 나라와 협상할 땐 김일성·김정일 같은 강력한 수령이 존재하는 게 더 낫다는 주장이다. 궤변이다. 수령체제의 압제에서 신음하던 백성들은 수령이 사라질 때 비로소 새날을 꿈꿀 수 있다. 그러나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북한 백성의 실낱 같은 희망 따위는 궤변론자들의 관심 밖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수령체제의 정상가동 여부뿐이다. 이 수령체제가 흔들리는 건 북한 체제의 불확실성을 높여서 남북관계에 불안을 몰고 올 위험요인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평양을 다녀온 국내 정치인과 몇몇 기업인들은 생전의 김정일에 대해 "식견있고 판단력이 뛰어나다" "머리 회전이 빠르다" "솔직하다"는 인상평들을 내놓았다. 모든 권한을 움켜쥔 장기독재자일수록 언변에 거침이 없는 법이다. 얼마 전 시민군의 총을 맞고 처참한 최후를 맞은 리비아의 카다피도 그를 만난 한국 기업인 등으로부터 한동안 "인자한 지도자" "왕중의 왕"으로 불렸다.

김정일 37년 철권통치가 북한에 남긴 건 몇 개의 핵과 텅 빈 곳간뿐이다. 구소련이 그 많은 핵과 군사장비를 그대로 끌어안은 채 무너져내린 걸 보고도 김일성 부자는 같은 길을 걸었다. 식견 있고 판단력이 뛰어난 지도자들은 예외 없이 백성을 먹여 살리고 나라 곳간부터 채우는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갔으나 김정일은 그의 빠른 머리를 김씨 왕조 지키는 일에 쏟아부었다.

남북 화해의 길을 열어가려면 북쪽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들의 주장에도 귀를 열어야 한다. 때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유연성을 발휘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래서 생전의 김정일에게서 양보를 끌어내야 할 현실적·전략적 판단 때문에 그를 두고 "식견 있는" 운운했다고 하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에까지 계속 그런 말을 해대는 사람들은 정신상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정일이 핵공갈을 하며 걸어온 길을 일리 있다고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더 큰 목소리로 김정은 세습이 안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다 "김정은도 참 총명한 젊은 지도자"라고 떠드는 이를 구경할 날이 그리 멀지 않을 것 같다.

북한의 권력 교체기에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는 일은 긴요한 과제다. 이런 시기에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해선 안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정은 체제가 흔들리면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나는 양 호들갑을 떨며 김씨 왕조 3대 세습의 안착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자고 나서는 건 볼썽사납다. 김정은 시대를 대비한 군부 세대교체 이후 군 실세로 꼽히는 리영호 총참모장은 69세다. 핏줄이 정통성이 돼버린 북한이기에 29세의 새파란 젊은이라 하더라도 군부의 대선배들 지지를 끌어내 차기 지도자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란 전제 아래 다른 쪽 가능성을 아예 닫아두는 건 현실을 바로 보는 태도가 아니다.

소련에서 흐루쇼프가 등장해 스탈린 개인숭배의 모든 죄상을 낱낱이 조사해 까발리고 격하(格下)운동을 시작한 건 스탈린 사후 3년 뒤였다. 지금의 중국을 만든 덩샤오핑도 마오쩌둥이 죽은 지 2년 뒤에 모습을 드러내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북한에 덩샤오핑과 흐루쇼프 같은 정치인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는 북한 엘리트들이 자자손손 김일성 핏줄이 이끌어야 북한이 살 수 있다는 거짓 선동에 계속 이끌려 갈 것으로 보기엔 너무 취약하다. 우리 사회도 오로지 김일성 가계를 통해 북한을 바라보고 사고하는 '종김(從金)'의 사고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씨 봉건 왕조를 두고 '식견 있는 지도자'란 엉뚱한 주장과 '3대 세습을 도와야 한국이 산다' 같은 해괴한 논리를 그만 들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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