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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신 ‘교회’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품고 예수님이나 제자들처럼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할 때 나는 매우 귀중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손기철 장로의 ‘기대합니다 성령님’ 중에서-
교회는 단순히 믿는 자들의 공동체를 넘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전진기지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참된 제자로 양육되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우리를 향한 그분의 소명을 발견합니다. 또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믿음의 줄을 든든히 하며 세상의 시험 가운데 기도의 방패로 맞서 싸웁니다.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영적 자양분을 공급하는 주의 몸이 됩니다. 주의 몸 되신 교회를 사랑하며 우리에게 주신 ‘교회’의 의미를 되새겨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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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오는 눈 - 잠언 26:1~9 |
1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3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4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5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6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7 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8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9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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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곳곳이 기상 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여러 차례 국지성 집중호우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지방에는 지난 주 때 아닌 폭설로 눈피해가 속출했으며 지난달에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하다는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도 80cm 이상의 폭설이 내렸는가 하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에도 여름 폭설이 내려 무방비 상태의 주민들이 많은 불편과 피해를 입었다는 보도입니다. 현자는 이렇게 <여름에 내리는 눈 같고 추수 때오는 비>같은 황당한 일이 우리의 현실 속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미련한 자의 영예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오는 것 같으니라>(1절).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곳과 같으니라>(8절). 우리 사회에는 영예를 얻기에 합당치 못한 자들이 남다른 지위에 올라 부를 누리는 예가 적지 않습니다. 광복절이 열흘 전이었습니다만 아직도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가난하고 친일파 후손들은 부와 권력을 향유하는 게 우리 사회의 모순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 전력에 비춰 국립현충원 안장이 적절치 못하다는 인사들도 상당수 있다는 논란이 여전합니다. 원칙은 분명합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부적절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여름에 오는 눈만큼이나 뜬금없고, 물매에 매단 돌 만큼이나 희극적입니다. 물매에 돌을 매면 어떻게 그 돌이 날아가 과녁에 명중하겠습니까? 이는 그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명예란 무의미하고 헛되다는 지적이요, 그래서 남이 존경하기는커녕 도리어 손가락질하고 비웃을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까닭 없는 저주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2절). 근거 없이, 이유 없이 세상을 저주하고 남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소위 <묻지 마 범죄>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합니다. 작년 한해 발생한 살인사건 1천2백건 가운데 절반 이상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지른 <묻지 마 살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까닭 없는 저주>는 마치 <떠도는 참새>처럼, <날아가는 제비>처럼 공허한 것입니다. 아무리 저주를 해도 저주의 대상을 해치기는커녕 결국은 그게 저주를 발한 자의 머리로 되돌아 올 뿐이라는 것입니다. 함부로 남을 욕하거나 무고한 자를 희생양으로 삼지 마십시오. 그런 행위야 말로 여름에 오는 눈이요 추수 때 오는 비처럼 황당할 뿐아니라 무고한 이웃을 해치는 악성 범죄에 다름 아닙니다.
미련한 자의 잠언 <저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7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9절). 뜬금없기는 <미련한 자의 잠언>도 마찬가집니다. 미련한 자의 잠언은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지혜로운 말은 그야말로 그럴듯한 <말>의 성찬일 뿐 그 이상이 아닙니다. 악한 삶을 사는 자가 입에 올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신앙에 관한 담화는 다 기만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죄악일 뿐입니다. 입만 열었다하면 거짓만 늘어놓는 사람이 경건한 얘기를 하는 것은 꼴 볼견이며 한 여름에 내리는 폭설만큼이나 생뚱맞은 것입니다. 현자는 오히려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3절)가 제격이라고 합니다. 또 경건한 자들에 대한 이런 경계도 잊지 않습니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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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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