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죽기 1년전 "남조선 혁명 지도부 만들라" 직접 지시
왕재산, 연평도 포격 직후 "후계자님 받들어 총폭탄 되겠다"
공안당국, 총책 등 5명 구속
북한 225국(局)의 지령을 받아 활동한 간첩단 '왕재산'은 1993년 "남조선 혁명을 위한 지역 지도부를 구성하라"는 김일성(金日成·1994년 7월 사망)의 지시를 받고, 남한에 지하당을 조직했다고 공안당국이 25일 발표했다.왕재산은 북한에서 '군(軍) 관계자를 포섭하고 주요 시설 폭파 준비를 하라'는 지령을 받았으며, 미군의 야전(野戰)교범과 군부대·방산(防産)업체의 위치 정보 등이 담긴 위성사진 등 군사정보도 북측에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진한)와 국가정보원은 이 같은 혐의로 왕재산 총책 김모(48)씨와 임채정 전 국회의장의 정무비서관을 지낸 왕재산 서울 지역책 이모(48)씨 등 5명을 구속 기소하고, 인천 지역 조직원 김모(40·여)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국군 기무사령부도 왕재산이 포섭한 군 관계자들이 있는지와 이들에게 군사기밀이 유출됐는지를 수사 중이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월간지 '민족21' 일부 관계자의 간첩 혐의는 사실상 왕재산과 별개 사건으로 계속 수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일성의 '접견 교시'
공안당국은 김일성이 사망하기 1년쯤 전에 왕재산 총책 김씨에게 내린 접견 교시 내용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접견 교시는 김일성이 공작원 등과 직접 만나 지령을 내리는 것을 지칭한다. 하지만 공안당국은 김씨가 묵비권을 행사해, 김일성을 만났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김일성이 접견 교시를 내린 날짜를 기념해, 대북 보고문이나 USB 암호를 '93826(1993년 8월 26일 지칭)'으로 설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 ▲ 25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이진한 공안1부장이 간첩단‘왕재산’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공안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왕재산에 "남한의 군·경찰·예비군 등에 염전(厭戰·전쟁을 싫어함) 사상을 불어넣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고 지령을 내렸다. 공안당국은 "인천의 저유소·주안공업단지·보병사단·공수특전단·공병대대 등에 조직원을 침투시키고, 경비원·장교 등을 매수해 2014년까지 폭파 준비를 완료하라"는 북한 지령문도 확보했다. 북한은 "좌파 학생단체 등을 육성해 공산혁명을 위한 무장 조직을 결성하라"고도 지시했고, 왕재산은 "유사시 동원할 수 있는 조직적 역량이 200여명"이라고 북한에 보고했다.
왕재산이 넘긴 위성사진에는 용산·오산 미군기지 및 주요 군사시설, 발전소와 가스 저장 시설 등도 담겼고, 미군 야전교범은 책자로 400권 분량이라고 공안당국은 말했다.
◆왕재산 "후계자님을 받들어…"
왕재산은 김정일·김정은 부자를 '목숨으로 사수하겠다'며 충성 맹세를 했다. 지난해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엔 "적들의 반공화국 책동이 공화국의 막강한 혁명 무력 앞에 무산됐다"고 했고, "후계자님(김정은)을 받들어 혁명 승리를 위한 총폭탄이 되겠다"고도 맹세했다. 공안당국은 "김정은 대장께서는 조국 보위를 위해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적 위훈을 세우고 계신다"는 왕재산의 충성 맹세문도 확보했다.
왕재산은 조선노동당 창건 60돌인 2005년 8월 매화 문양이 담긴 수석(매화석)을 북한에 정성품(선물)으로 상납해 북한에서 노력훈장을 받았다고 공안당국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