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스크랩] "내가 죽게 되면"

鶴山 徐 仁 2011. 8. 9. 12:10

사람은 누구나 한번 태여 나면 죽게 마련이다.

죽음을 미리 얘기하는 건 창조주와 나를 있게 해준 분들께 당돌하고 적절하지 못하다 하드래도, 어차피 죽음 앞에선 누구나 몇 마디 하기 마련이니 앞당겨 하는 것뿐이다.

실존주의 교육철학자들은 젊은이들에게 죽음을 미리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러한 주장을 젊을 때부터 상당한 타당성을 지녔다는 생각을 해 오고 있었다.

어떤 특별한 이유에서라기보다 그저 그 말이 내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 좋았고 필요한 것 같아서 그렇다.

중년이 되면서 부터는 죽음 이후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럴 때 마다 삶의 허무함에 전율을 느끼곤 했다.

내가 죽으면 나를 비롯한 모든 존재에 대한 사고와 인식 자체가 없어져 버리고 영원히 무(無)의 상태로 머물게 된다는 생각에 온몸이 전율에 휩싸였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주 없어져 버리면, 온 우주가 나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가 라는 생각에 까지 다다르게 된다.

그야말로 허무의 진수를 맛보는 순간을 가끔씩 겪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믿고 있는 기독교를 떠올리며 차츰 생각을 바꾸어가기 시작했다.

인간은 영원한 존재다. “하나님 앞에선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누가복음20장38절)는 성서의 말씀이 깊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죽음으로 육체는 없어져도 영존하는 영혼은 하나님 나라로 이주 해간다 는 성서의 말씀은, 전율로 휩싸인 내 가슴을 쓰려 내렸고 차츰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또한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이 지구에 다시 오시는 날엔 죽은 육체가 다시 부활하여 영광의 나라로 옮겨진다는 생각에 허무의 원천은 사라지게 되었다.

기독교는 진정으로 인간의 존재에 대한 허무를 근원적으로 극복해 주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자주 하게 된다.

무덤이 인간의 마지막 종착역이 아니다 는 생각, 죽음에서 부활이 있고, 인간은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임을 믿을 때 존재의 원천적인 허무감에서 탈출할 수가 있었다.

기독교는 인간을 살렸다!!! 기독교는 귀중한,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될 가치를 지녔다. 아니 가치를 지녔다 기 보담 그것 이상의 상위개념으로 그것 자체가 진리요, 그 자체가 사실이다 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부턴 내 마음은 지난 시절의 전율하는 허무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기독교의 부활을 자연스럽게 받아 드려 믿게 되었다.

그로인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지른 수많은 잘못들을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빌었고, 또한 자연히 성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 예수님, 부활, 영원한 하늘나라 등등의 용어들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내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되었다.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시간은 모든 약속과 스케줄을 희생시키고라도 필히 참석하게 된다.

요즘은 존재의 허무를 완전히 극복하게 되어 허무 자체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즐거운 마음으로, 남에게도 알려야 한다는 어떤 조그마한 사명감 같은 느낌으로 기독교에 관한 글들도 쓰게 된다.

남에게 사랑과 봉사로 나의 삶을 값지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내여 사회봉사도 한다.

이젠 죽음이 더 이상 나를 허무하게 만들지 못하고, 죽음이 더 이상 나를 두렵게 하지 못한다.

죽음은 또 하나의 하나님의 은총이다.

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가교 역할을 해 준다.

죽음은 환상적이고 멋진 세계로 이민 가는 극적인 사건이다.

그곳은 죽음이 없고, 슬픔 고통 불행 질병 실패 질시가 없는 이상적인 사회이다.

하나님의 영광만이 가득하며, 환희 기쁨과 행복 평화 아름다움만이 있는 환상적인 사회이다.

바울이 직접 다녀와서 체험한 그곳, 천상의 세계는 그분이 쓴 데로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 할 수 없는 꿈같은 곳으로 그분은 그곳을 셋째하늘이라고 표현했다.(고린도후서12장1-4절)

그곳을 어떻게 잠시라도 잊을 수가 있었겠는가?

바울이 그곳을 그리워하여 “이 세상을 떠나 일찍 주님의 곁으로 가고 싶다”고 고백을 하기도 했다.

 

나는 이제 죽음이 언제 찾아와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을 것 같다.

나의 하나님, 저의 이런 마음을 죽을 때 까지 유지하게 하소서!!!

또 당신께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다면, 저로 하여금 고통스러운 가운데서 죽지 않게 하소서.

고통으로 추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저는 고통을 참지 못할 것 같아서 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채찍과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염치없는 말이겠지요.

바울과 베드로. 디모데, 그 외에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염치없는 간청입니다.

주님, 그럼 저에게 죽음의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인내력을 주시든지, 아니면 그냥 고통 없이 지나가게 하소서.

 

나의 사랑하는 가족 아내와 아들딸들, 며느리, 사위들, 손자손녀들아 내가 죽게 되면 은 슬퍼하거나 울지 말고, 환상적인 하늘나라로 마음 편하게 이주할 수 있도록 환송예배를 드려다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헨델” 의 “할렐루야” 를 힘차게 울려 퍼지게 해주면 더욱 기쁘게 떠나겠노라.

내가 죽게 되면 은,

너희들은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위해서 사랑과 봉사로 값진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먼 훗날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는 거다.

이 모든 걸 잊지 말고 잘 기억 하 거라 !!!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동기회
글쓴이 : 권종웅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