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이란 한 마디면 죽음도 면한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은 쉽사리 분노하는 사람에게 주는 지침으로 유용한 말입니다. 그럼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사람을 대하는 사람에겐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면 죽음도 면한다’라는 말을 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미안하다는 말 앞에선 누구나 감정적으로 안정되는 것을 느껴보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바로 ‘거절’이 아니라 ‘수용’에 있기 때문이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성난 사자라도 순한 양으로 만드는 일종의 마약입니다.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때 분노에 찬 주먹에서 힘을 빼게 되어 있습니다. 미안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내가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게 됩니다. 따라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굳이 화를 내거나 폭력을 휘두를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 또한 우위를 점령하는 사람은 여유가 생기고 관용을 베풀고픈 심리적 메카니즘도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또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어떤 상황이나 말, 태도 등에 대한 미안함이지 내 생각이나 느낌에 대한 양보나 취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몇십 년 만의 모자상봉에 원한 맺힌 아들의 말을 그 어머니가 “미안하다” 라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네가 29년 만에 만난 어미에게 그 말을 하는 걸 보니 너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으면 그러겠냐? 네가 그동안 정말 힘들게 살았겠구나” 라고 했다면 그 아들은 품었던 비수를 내려놓고 어머니의 품에 안겨 통곡하지 않았을까요?
안타깝게도 그 어머니는 그만 “내 아들이 아닌 것 같다.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 라고 말해 버렸고 그 말을 들은 아들은 그만 담아두었던 분노가 폭발되어 이성을 잃고 천륜을 거스리는 일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몇 해 전 존속살해 사건의 이 모 군도 법정에서 어머니로부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들었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절규했던 것과 같습니다.
미안이라고 말할 때 미안(美顔)을 갖게 된다.
미안하다는 말은 관계에서 내가 낮은 쪽을 선택한다는 뜻이며 동시에 상대방을 받아준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은 굳이 방어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를 취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죠. 거기에 한 단계 더 가면 ‘조건 Excuse’ 라는 화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미안한 마음을 느끼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분노하고 억울해 하는 것 보니 미안해지네” 라고 반응하거나 사실 유무에 상관없이 “그랬다면 미안해”라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비롯한 사람들과의 갈등은 컨텐츠 즉, 싸움의 내용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형식 때문에 싸웁니다. 받아주지 않는 것 때문에 고함지르고 폭력을 사용하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을 요즘 상황으로 바꿔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고 바꾸면 어떨까요?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얼굴은 이미 아름다운 미안(美顔)입니다. 정말 그런 얼굴엔 침을 뱉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할 때 비로소 겉으로 드러난 사건을 보지 않고 그 속에 담겨진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봄(觀)이 될 때라야 부부사이에도 가족 관계에도 봄(春)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앞으론 더 이상 한겨울 북서풍 같은 그런 소식 말고 따뜻한 봄 햇살 같은 소식들이 들려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내가 먼저 “미안합니다” 라고 말해 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