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대우
일요일 밤늦게 방영하는 '언더커버 보스(Undercover Boss)'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굴지의 대기업 회장들이 신분을 숨긴 채 자기 회사 말단 사원으로 일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몰래 카메라 형식으로 담은 프로그램이다.
미국 최대 호텔 체인의 스티브 조이스 회장은 풀장·변기 청소, 침대 시트 정리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말단 직원들의 애로와 희로애락을 경험한 다음 파격적인 사업 개선책을 내놓는다. 미국 최대 환경미화 회사의 래리 오도널 회장은 뉴욕 매립지에서 현장체험을 해본 다음 "나는 책상머리에서 생산성만 외쳤다"고 깨닫는다. 편의점 세븐일레븐과 미국 최대 경마장, 크루즈선 운항업체 최고경영자도 위장체험 대열에 참여했다. 회장들은 1주일 정도 현장체험 후 변장을 풀고 직원들 앞에서 잘못을 참회하고 곧바로 시정조치를 내놓는 적극성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위장 취업까지는 아니더라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은 늦은 저녁 시간에 직원들이 알지 못하도록 중절모와 트렌치코트로 얼굴을 가리고 롯데백화점 본점과 롯데호텔 등을 살피는 대표적인 암행형 CEO로 알려져 있다.
이 프로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여러 현장을 떠올렸다. 최근 발생한 광명역 KTX 탈선 사고는 선로전환기 케이블 교체 후 7㎜ 너트 한 개를 빠트린 것이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장 직원들의 '설마…' 심리와 적당주의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사고였다. 코레일 허준영 사장이 미리 철도 현장을 암행감찰해 이 같은 기류를 파악해 사전에 조치를 취할 수는 없었을까. 허 사장은 요즘 철도 현장을 찾는 '릴레이 현장점검'을 벌이고 있지만 사진 찍기 위한 뒤늦은 이벤트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일선 교사들은 '무조건 체벌 전면금지' 등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남발하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과 교육과학기술부 관료들도 현장 체험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교사는 "곽 교육감이 교생 실습처럼 1주일만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보면서 말썽부리는 학생들을 다루어보고, 수업 후 산더미 같은 공문 처리도 해보면 틀림없이 '언더커버 보스'처럼 감동적인 마무리 발언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확실한 '체벌금지' 보완책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1주일이 무리라면 아침 조회부터 오후 하교 때까지 '1일 교사체험'이라도 제대로 해보면 어떨까.
농식품부 공무원들도 초반에 구제역 발생 농장이나 매몰지 현장에서 진땀을 흘리며 체험을 해보았다면 구제역이 이렇게까지 전국적으로 번지고, 매몰 하나 제대로 못해 다시 파내서 묻고 2차 환경재앙 공포에 시달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언더커버 보스'는 드라마적인 요소를 강조하느라 과장하는 부분도 있고 어쩐지 재현(再現) 프로그램 같은 어색한 느낌도 준다. 그러나 CEO가 직접 밑바닥에 내려가 체험하면서 개선책을 찾아내는 발상 자체는 지금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다. 책상머리 정책으로 나라 전체가 흔들거리는 체험은 이미 충분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