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스크랩] 고전의 향기 / 국화에게서 배우는 장수의 비결

鶴山 徐 仁 2010. 12. 17. 13:08




◇ 국화에게서 배우는 장수의 비결 ◇

  요 며칠 찬바람이 불고 이제 계절은 완연히 겨울로 접어들었다.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된서리를 맞으면서도 내 작은 정원을 지켜오던 국화가 기어이 시들고 말았다. 떨기로 피어 가을 내내 고요한 풍경을 밝혀주던 꽃이다. 이제 시들었지만 청수한 고사(高士)인 양 꽃잎의 색태는 여전히 변치 않고 있다. 국화를 보며, 조선시대에 99세를 살았던 기인(奇人) 홍유손(洪裕孫)의 장수 비결을 들어보는 것으로 가을을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자.

  병을 다스리는 방법은 의약(醫藥)에 있는 게 아니라, 요컨대 혈기(血氣)를 잘 조절, 보호하는 데 있다오. 온 몸에 가득한 혈기를 잘 조절 보호하면 오장육부가 따라서 튼튼해지고, 오장육부가 튼튼해지면 객풍(客風)이 내부에 엉기지 못해 혈기가 차갑거나 부족한 폐해가 없게 되지요. 의가(醫家)의 모든 처방과 선가(仙家)의 온갖 비결들이 모두 양생술(養生術)인데, 음식의 절제를 먼저 말하고 정신의 보호를 뒤에 말하였지요. 따라서 만약 음식을 잘 절제하지 않고 정신을 잘 보호하지 않는다면 혈기가 들뜨고 허하여 객풍을 불러들이기 십상이며, 그렇게 되면 몸이 위태한 지경에 빠지고 만다오.
  이러한 말이야 남이 말해 주지 않더라도 상사(上舍)1)가 잘 알고 있을 테지요. 그런데 어저께 상사의 말을 들어보니 조금도 건강에 문제가 없고, 눈동자도 정기가 안정되어 있었으니, 비록 몸은 여위긴 했어도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상사가 국화를 보기를 좋아하니, 국화를 가지고 상사에 비겨 볼까 하오. 국화가 늦가을에 피어 된서리와 찬바람을 이기고 온갖 화훼(花卉) 위에 홀로 우뚝한 것은 일찍 이루어져 꽃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무릇 만물은 일찍 이루어지는 것이 재앙이니, 빠르지 않고 늦게 이루어지는 것이 그 기운을 굳게 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이겠소. 서서히 천지의 기운을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고 억지로 정기를 강하게 조장하지 않으면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히 성취되기 때문이라오. 국화는 이른 봄에 싹이 돋고 초여름에 자라고 초가을에 무성하고 늦가을에 울창하므로 이렇게 되는 것이라오. 대저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 또한 어찌 이와 다르리오. 옛사람들이 일찍 벼슬길에 올라 영달하는 것을 경계했던 까닭도 이 때문이지요.
  상사가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것은 역시 빠르다고 할 수 있는데 또 대과(大科)에 빨리 급제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원점(圓點)2)을 채우지 못할까 걱정하여 가슴속에 심려를 많이 쌓아 두었을 테지요. 그러다 보니 정신을 보호하고 혈기를 화평하게 하여 사지(四肢)와 근골(筋骨)을 강건하게 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늙은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점이라오.
  사람이 영달(潁達)하는 것은 밖으로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요, 남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이니,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그 마음을 우선하고 외물(外物)을 뒤로 미루는 법이지요. 홍범(洪範)의 오복(五福)3) 에서 장수[壽]가 첫째이니, 장수는 성인(聖人)도 중시하였던 것이라오. 성인이 중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비록 이나 서캐 따위의 미물조차도 자기 생명을 존중하니, 아무리 지위가 공경(公卿), 장상(將相)과 같은 높은 자리에 오를지라도 장수하지 못한다면 부귀영달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상사가 명리와 영달을 잊고 자신의 위생(衛生)에 전념하여 밖으로 사물을 보고 안으로 그 이치를 관찰하여, 병을 근심하지 말고 마음을 잘 다스린다면 능히 장수를 누려 서책을 즐거이 볼 수 있을 터이니, 이렇게 되면 기다리지 않아도 문장이 절로 향상되고 바라지 않아도 벼슬이 절로 찾아오게 될 것이오.
  대저 수명의 길고 짧음은 모두 자기 스스로 취하는 것이지 남이 그렇게 되도록 시키는 것이 아니며, 하늘이 주고 빼앗는 것이 아니라오. 내가 이와 같이 오래 사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 거역하지 않고 순응했기 때문이라오. 다만 하늘이 나에게 내려 준 일신의 원기가 본래 그다지 강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에 이르러 이와 같이 늙고 말았다오. 그러나 만약 이런 방법을 버리고 급급히 다른 데서 장수의 방법을 찾았다면 이렇게 늙은 나이까지 살지도 못했을 것이오. 내가 지금 칠순인데도 머리털이 희지 않고 가는 바늘에 실을 꿸 수 있으니, 나만한 사람도 드물 테지요.
  상사는 배를 잡고 웃으며 내 말을 틀렸다고 하지 말고, 부디 이 늙은이의 어리석고 객쩍은 말을 잘 들어, 출입과 기거를 삼가하여 질병이 몸에 오래 머물지 않게 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오.

 

[治病之策, 不待醫藥, 而要在調保血氣之善. 善一身之充者血氣, 而五臟六腑相待而-缺二字-, 臟腑盈成, 則客風不滯於內, 而血氣無寒凜餒乏之弊. 醫家千言萬藥ㆍ仙家玉函寶方所載之說, 皆養生之術, 先論飮食之謹節, 後論心神之調護. 若不節飮食, 不守心神, 則血氣浮虛, 善招客風, 而身至於危. 上舍雖不待人言, 亦必能知之. 昨聽上舍言語, 頓無少錯之虞, 眸子定精, 雖肥膚云癯, 暫不虞矣. 上舍愛對菊花, 故以菊花規上舍. 菊花開於抄秋, 而凌霜冒風冷, 獨超千卉萬花之上, 以其不早也. 凡物之早成者, 災也. 不早而晚成者, 能堅其氣者, 何耶? 以其徐徐聚天地之氣不放, 使不強精, 日月之累遷, 能至於成之自然也. 菊也芽於早春, 長於初夏; 茂於孟秋, 鬯於秋晦, 所以如此也. 夫人之身世之生事, 亦何異乎! 古之人戒早達, 亦以是也. 夫上庠得司馬試, 亦云早矣. 又汲汲於大科之早得, 以未及圓點之滿爲虞, 多置念慮於方寸之地, 且不能調保精神, 和平血氣, 以致四肢筋骸之健. 此衰老者不敢知也. 穎達者, 非爲外也, 爲身也; 非尊人也, 尊己也. 自爲尊者, 先其心而後其物也. 洪範五福, 壽居其上, 則壽聖人所重也. 非徒聖人之所重, 雖蚤蝨, 亦尊其生. 雖至於公卿將相, 若不壽, 則貴達何足取乎! 上舍忘其所利達, 專其所衛生, 外見諸物, 內觀其理, 不以病病爲憂, 而能以心心爲謨, 則能養其壽而樂觀諸書, 不期而文章自進, 毋望而榮爵自至. 大抵壽夭長短, 皆所自取, 非人之使然, 非天之與奪. 然我之所以如此, 又不逆天而順命者也. 天之命於我者, 本不厚也, 故至於今而如此. 舍此而汲汲於他求, 年不至於老也. 吾今者七旬而髮不白, 能穿細針, 有如我者寡矣. 上舍毋自捧腹而非之, 須聽老人癡語客說, 謹出入節起居, 毋使疾病久滯於百骸之間, 幸甚幸甚.]

 

1) 상사(上舍) : 생원과 진사를 뽑는 소과(小科)에 합격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2) 원점(圓點) : 성균관 학생의 출석 점수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아침과 저녁 두 끼를 식당에서 먹고 도기(到記)에 서명하면 1점을 따게 된다. 원점이 300점이 되어야 식년시(式年試)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진다.
3) 홍범(洪範)의 오복(五福) : 기자(箕子)의 홍범구주(洪範九疇) 중에 있는 오복(五福)을 말하는데, 즉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의 다섯 가지이다. 《書經 洪範》

 

- 홍유손(洪裕孫),〈김 상사에게 준 편지[贈金上舍書]〉,《소총유고(篠叢遺稿)》

 

▶ 정조_국화도_동국대학교 박물관 홈페이지 인용

 

[해설]

  소총(篠叢) 홍유손(1431~1529)이 상사(上舍)인 김씨 성의 젊은이에게 준 글이다. 김 상사가 병이 들어서 건강을 걱정하자 소총이 이 글을 써 준 것이다.

  소총은 방외인(方外人)의 삶을 산 사람으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기인(奇人) 중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는 여경(餘慶), 호는 소총 또는 광진자(狂眞子)이고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아전 집안에서 태어났고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었다고 한다.

  신분이 미천한 재사(才士)가 으레 그렇듯이 소총도 치솟아 오르는 울분과 객기를 시주(詩酒)로 달래며 방달불기(放達不羈)한 삶을 살았다. 세조의 왕위 찬탈이 있은 뒤로는 노장(老莊)에 심취하여 남효온(南孝溫)·이총(李摠)·이정은(李貞恩)·조자지(趙自知) 등과 어울려 죽림칠현(竹林七賢)을 자처했다. 특히 괴애(乖崖) 김수온(金守溫)·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과 친하였다.

  소총이 젊을 때 원각사(圓覺寺)에서 독서하고 있었는데 괴애와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이 조정에서 퇴근하는 길에 들렀다. 그들은 운(韻)을 불러주고 소총에게 시를 짓게 했는데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척척 응대했다. 그 시 중에서“청산과 녹수가 나의 경계이거니 명월과 청풍은 누가 주인인가![靑山綠水吾家境 明月淸風孰主張]”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매월당이 곁에 있던 사가를 가리키며 “강중(剛中)아 너는 이 만큼 짓겠느냐”했다 한다. 소총의 뛰어난 시재(詩才)를 말해주는 일화이다.

  소총은 무오사화 때 제주에 유배되어 관노로 있다가 중종반정으로 석방되었다. 그리고 76세의 늙은 나이에 처음으로 장가를 들어 아들을 낳았으니, 도가(道家)의 양생술에 조예가 깊었다는 말이 사실인 듯하다. 만년에 명산을 편력하다가 종적을 감추었다는 전설도 있으니, 여하튼 기인이었음은 분명하다.

  소총은 99세를 살았으니, 조선시대 이름이 알려진 인물 중에서 가장 장수한 분이다. 시주(詩酒)로 울분을 토로하는 사람은 대개 단명하게 마련이니, 소총의 장수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대개 일찍 이루어지면 일찍 무너지고 더디 이루어지면 더디 무너지는 게 만물의 법칙이다. 동물도 회임 기간이 길수록 수명이 길거니와 초목도 더디 자랄수록 수명이 길다. 일상에 쓰는 물건인들 다르랴. 오래 공력을 들여서 단단하게 만든 것이 오래 갈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는데 오늘날은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어간다.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있노라면 사람들은 어느새 저 만큼 앞서 가고 있다. 사람들은 세상 변화에 적응하려고 자기 발걸음을 잊은 채 바삐 움직인다. 그리하여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이루고 있지만 몸은 원기를 소진하고 정신은 사물에 빼앗겨서 흡사 육체가 없는 허깨비처럼 빈 형상만으로 오락가락하는 사람이 많다.

  송(宋)나라 주렴계(周濂溪)는 국화를 꽃 중의 은일(隱逸)이라 하였다. 국화가 다른 꽃들이 영화를 누리는 봄과 여름에 자신을 드러내었다면 늦가을까지 고고한 자태를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 국화처럼 은일의 삶을 살기는 어렵겠지만 국화에게서 삶의 지혜는 배워야 할 것 같다.

    


글쓴이 / 이상하

*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수
* 주요저서
- 한주 이진상의 주리론 연구, 경인문화사(2007)
- 유학적 사유와 한국문화, 다운샘(2007) 등
* 주요역서
- 읍취헌유고, 월사집, 용재집,아계유고, 석주집 등

출처 : 藝術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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