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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손짓언어/ 서울신문

鶴山 徐 仁 2010. 12. 15. 10:49
사설·칼럼
만물상

[만물상] 손짓언어

입력 : 2010.12.13 23:30

이탈리아 사람들은 말을 할 때 입만 쓰지 않는다. 다양한 '손짓언어'를 동원해야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진다. 이미 1832년 나폴리에서 손짓언어 사전이 나왔을 정도다. 한쪽 주먹으로 다른 손바닥을 세게 때리면 "아, 기억이 났다"를 뜻한다. 두 집게손가락을 맞붙여 손등이 보이게 하고 배꼽 부근에 갖다대면 "두 사람이 서로 이해했다"는 소리다. 손바닥을 수직으로 펴서 가슴 높이에서 흔들면 "못 참겠다"가 된다.

▶이탈리아 손짓언어에 얽힌 우스갯소리도 많다. "2차대전 때 영국 첩보부가 이탈리아 간첩을 체포했다. 모진 고문을 했지만 간첩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죽어 버렸다. 양손을 묶어놓은 채 고문을 했으니 손짓언어를 쓰지 못해 불고 싶어도 불 수 없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과 휴대폰에 관한 농담도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줄 달린 휴대폰을 얼굴 높이에 걸어놓고 두 손을 써 가며 통화한다."

▶손짓언어는 나라마다 다르다. 영국에선 승리의 V자 사인을 할 때 손바닥이 보여야 한다. 손등을 보인 V자는 쌍욕이다. 거꾸로 터키그리스에선 손바닥을 보인 V자가 욕설이다. 한국에선 새끼손가락만 꼽으면 '애인'을 뜻하지만 네팔에선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뜻이다. 술을 마시자고 할 때 독일에선 맥주잔을 뜻하는 주먹을 입가에 올리지만, 보드카를 즐기는 러시아에선 손가락으로 목젖을 퉁긴다.

미국의 OK 사인은 다른 나라에서 통역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원래 돈을 의미한다. 프랑스에선 "별볼일없다"는 제스처다. 독일·브라질·아랍에선 아주 상스러운 신호가 된다. 몰타에선 동성애를 뜻하니 조심해야 한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지난 8일 국회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손가락질을 했다는 구설에 올랐다. 이 장관이 엄지손가락으로 어깨 뒤쪽을 가리키며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장관은 "내 좌석 뒤편에서 끊임없이 욕을 퍼붓는 것이나 좀 중단시켜 달라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이 장관이 엊그제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농성 중인 서울광장을 찾았더니 한 야당 지지자가 엄지손가락을 내려 보이며 '꺼지라'는 신호를 보냈다. 입만 열면 소통을 외치던 여야가 이젠 입은 다물고 손가락질이나 하고 있다. 으뜸을 뜻하던 엄지손가락이 엉뚱하게 쓰인다. 손가락마저 곱는 추위가 닥치면 여야가 눈썹으로 얘기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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