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EU 회원국 중에서 성범죄 신고가 가장 많은 나라다. 지난해 EU위원회가 조사했더니 스웨덴에선 인구 10만명당 강간 46.6건이 신고됐다. 아이슬란드가 36건으로 두 번째, 영국이 26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스웨덴에선 속어로 강간을 '깜짝 섹스(sex by surprise)'라고 한다. '깜짝 섹스'는 명백한 강간은 아니지만 남자가 콘돔을 쓰라는 여자의 말을 듣지 않은 채 강제로 하는 성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스웨덴에선 남녀가 합의한 섹스라고 하더라도 임신과 성병을 두려워하는 여자가 남자에게 콘돔을 쓰라고 요구할 수 있다. 말을 듣지 않은 남자가 경찰에 고발되면 벌금 5000크로네, 83만원가량을 내야 한다. 미국과 유럽 다른 나라에선 구경할 수 없는 일이다. 스웨덴의 강간죄 처벌은 징역 4~10년형으로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우리와 비슷하지만, 여자의 권리를 더 폭넓게 인정한다.
▶미국 외교 전문(電文)을 폭로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샌지가 스웨덴에서 저지른 성범죄 혐의로 영국에서 체포됐다. 어샌지를 아파트로 불러들여 잠자리를 같이한 두 여성은 그가 콘돔 사용을 거부했고 일부러 찢기도 했다고 스웨덴 경찰에 고발했다. 어샌지는 "악의적으로 떠벌려졌고 정치적 음모가 개입됐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두 여성 중 한 명이 미국 주재 스웨덴 대사관에서 일한 적이 있기에 미국이 미인계를 썼다는 추측도 나돈다.
▶어샌지를 두둔하는 지구촌 네티즌들은 미국 배후설을 퍼뜨리면서 스웨덴 형법도 조롱하고 있다. "어샌지가 강간을 했다고? 그래, 미국 정부를 강간했지"라거나 "여자가 남자랑 화간(和姦)을 하고 나서 강간으로 고소할 수 있는 법이 도대체 말이 되나"라고 한다. "찢어진 콘돔을 만든 회사를 고소하자"는 네티즌도 있다. '어샌지 콘돔(Assange condom)'이나 '찢어진 콘돔 사건(Case of broken condom)'이라는 검색어도 등장했다.
▶어샌지는 미국을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만들었다. 거꾸로 어샌지 자신의 은밀한 '섹스 파일'도 세상에 공개됐다. 국가든 개인이든 누구나 '어항 속의 금붕어'꼴이 되기 일쑤인 인터넷 시대의 자화상이다. 정보가 새지 않도록 인터넷 네트워크에도 보안이라는 '콘돔'을 잘 씌워야 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