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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경희는 술꾼! 남편 장성택을 부하 다루듯 & 高銀 선생 안됐소!

鶴山 徐 仁 2010. 10. 10. 11:34





김경희는 술꾼! 남편 장성택을 부하 다루듯 
매서운 성격...김정일 복잡한 여인문제 등 도맡아

대장에 임명 된 김경희
지난 28일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대장으로 임명돼 후계자로 공식 등장하고 고모 김경희가 북한군 대장에 임명되면서 북한은 ‘김정일 가족 경영체제’가 구축됐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인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가 대장으로 승진한 것이라고 꼽는다.

김경희의 급부상에는 김정일이 후계 문제에 관한한 장성택도 완전한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매제인 장성택도 불안해 피줄인 동생 김경희로 하여금 김정은을 보살피게 배려했다는 해석이다.
김경희가 김정일의 유일한 동생이자 김정은의 고모이며 장성택의 부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인간 김경희의 과거 행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탈북자 주성하씨는 김경희가 독한 성격이라고 소개했다.
김경희는 1946년 5월 30일 김일성의 셋째 자녀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김경희에게는 김정일(어릴 적 이름 유라)과 슈라라는 두 오빠가 있었지만 슈라는 김경희가 태어난지 몇 달 뒤 연못에 빠져 숨졌다.
김경희가 3살 때인 1949년에 어머니인 김정숙이 출산 중 출혈이 멈추지 않아 사망했다.

김일성은 이후 임꺽정의 저자인 홍명희의 딸과 살다가 곧 다시 비서로 해방 후부터 측근에서 일했던 김성애와 결혼한다. 김성애가 의붓어머니로 들어오면서 김경희는 사랑을 받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이는 그의 정서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씨는 설명했다.

주씨는 김경희의 외모나 성격이 어머니 김정숙을 쏙 빼닮았다고 말한다.
그는 “김일성이 젊어서 바람을 피우자 김정숙은 김정일을 벽에 기대 세운 뒤 머리 꼭대기에 사과를 놓고 자식을 살리겠으면 바람을 피우지 말라면서 권총으로 사과를 쏴 떨구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김경희 역시 이에 못지않다고 밝혔다.

주씨는 “김경희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 장성택과의 연애과정”이라고 말했다. 원래 김일성은 군부 출신의 사위를 생각했다. 김정일은 당에서, 사위는 군에서 자신을 보좌하게 할 계획이었다는 것.
하지만 김경희는 같은 학급에서 공부하던 장성택에게 푹 빠졌다. 앞자리에 앉은 장성택의 귀를 풀대로 간질이면서 놀리는 식으로 교제를 하다가 사랑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런 경희를 막기 위해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는 장성택을 원산경제대학으로 전학시켰다.
하지만 김경희는 주말마다 아버지의 차를 직접 몰고 원산까지 내려가 장성택의 기숙사에서 밀린 빨래까지 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 대학 교직원들은 처음에는 수상이 현지지도를 오는 줄 알고 비상을 걸었다가 수상의 차에서 새파란 여성이 내려 기숙사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런 김경희의 고집에 김일성과 김정일은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장성택과의 결혼생활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고 주씨는 전했다. 둘 사이엔 자식도 없다는 설이 유력하고 장금송이라는 딸이 있다가 자살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는 입양했던 자녀라는 소리도 들린다고 소개했다.

결혼생활에서 만족을 찾지 못한 김경희는 1980년대부터 술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역시 김경희가 술을 많이 마시고 술주정도 심하다고 증언했다.

주씨는 김경희가 장성택을 매우 앙칼지게 대하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장성택, 더 마셔”하며 부하나 가정부를 대하듯 했다고 주장했다. 이럴 때엔 장성택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김경희가 권력의 핵심과 거리가 있는 경공업부장은 맡아왔지만 직책과 상관없이 오빠 김정일을 위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역할을 막후에서 수행해왔다고 밝혔다.

오빠인 김정일이 성혜림-김영숙-고영희-김옥 순으로 떳떳하지 못하게 여인들을 바꾸어가는 동안 그 모든 뒤처리는 김경희가 감당했다는 것.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김정남이 출생했을 때 이 소식이 아버지인 김일성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막아준 것도 김경희였고, 김정일이 고영희에게 빠지자 성혜림을 모스크바에 보낸 사람도 김경희라는 것이다. 또 김정일의 자식들도 김경희의 큰 관심 속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주씨는 “조용한 후원자의 위치에 있던 김경희가 이번엔 조카 김정은이 무난히 권력을 넘겨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적극적인 후견인으로 전면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고은 씨 “담담… 미안하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소식이 전해진 7일 오후 8시경 경기 안성시의 고은 시인 자택 앞. 고은 시인의 수상이 무산되자 집 앞에 모였던 주민들 중 한 명이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리고 있다. 안성=박영대 기자

高銀 선생 안됐소!
시인은 문학 한 길로 가야지 정치도 기웃 권력도 기웃하면 안됩니다.
   
 선생이 노벨문학상을 탔으면 얼마나 좋겠소. 가문의 영광이요, 대한민국의 자랑일 테니까요. 선생이 죽기 전에 꼭 소원성취하시길 빌고 또 빌겠소.

 
 그런데 고은 선생, 줄 놈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은 절대 먼저 마시면 안됩니다. 수상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야 선생도 인간이니까 이해합니다. 그러나 기자들이 집앞에 우르르 모여 있다가 올해도 고은은 낙방이네 하고 돌아설 때의 허탈한 모습이 정말 민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수상 소식이 오늘 올까 내일 올까.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보입디다. 특히 한복 갈아 입고 인터뷰 준비하고 있는듯한 표정은 참으로 모양이 좋지 않아 보입디다.

 

 고은 선생. 당신은 6·15선언 당시 정치인을 뺨치는 언행으로 국민을 현혹시켰지요? 특히 김대중과 김정일이 기념촬영할 때 그 중간에 얼굴 쏘옥 내밀고 있는 장면이 국민들을 웃기게 했지요? 김대중 선생 살아 있으면 한 수 훈수 들어줬을 텐데 말이요. 노벨상은 그냥 되는 게 아니요, 이렇게 하는 것이요 하면서 말이요. 그리울손 선생님이지요.
 

 혼자서만 평화상 타먹고 입 싹 닦고 간 선생님이 원망스럽지요. 고은 선생, 앞으로는 카메라맨들 돌려 보내세요. 수상소식 듣고 인터뷰해도 늦지 않아요. 시인은 문학 한 길로 가야지 정치도 기웃 권력도 기웃하면 안됩니다. 특히 살인마 김정일 같은 아이들 손잡고 강강수월래나 추고 하는 것은 3대세습 훈련시키는 장난들입니다. 고명하신 고은 선생이 왜 그런 아이들과 어울립니까? 추파 던지는 법이 아닙니다
 


 고은 선생 살아 생전 소원 성취하시라.
 
출처 : 藝術村
글쓴이 : 촌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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