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던져도 남자가 맞는다는 군대에서 하도 남자만 봐서 그런건가. 여자인 내가 봐도 여자가 신기하다.
“야, 슈마!! 너는 머리가 완전 XXX 같잖아. 머리 좀 어떻게 해봐!”
(슈마 : 일명 슈렉마누라... 고등훈련 시절 내 별명이다. 쩝..)
영화에서만 보던 헬멧 썼다가 벗을 때 사르르 머리가 풀어지면서, 머리를 뒤로 젖히면 샤방샤방한 얼굴이 딱 나타나는 그런 여 조종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러나 그건 상상일 뿐이다.
물론 얼굴도 예쁜 여배우와는 다를 테지만, 대부분은 비행하면서 흘린 땀에 범벅이 돼서 헬멧을 벗고 나면 머리가 뒤죽박죽 헝클어지고 얼굴에는 빨간 마스크 자국이 선명하게 남기 때문이다.
머리를 묶으면 더 불편할 것 같지만, 단발머리일 경우에는 더 심하다.
완전.. 비행하고 나서 시간이 있으면 괜찮지만 바로 식당으로 직행해야 하는 경우에는 참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아줌마가 돼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지만, 어렸을 때는 마스크 자국을 얼굴에 그대로 남긴 채 다른 사람들과 밥 먹는 게 너무 어색하고 싫었다. 겨우 24살이었으니까.
9년 전에 내가 그랬는데, 지금 여자 후배들은 오죽할까.
그런 생각으로 대대에 있는 여군 조종학생들을 바라보기 시작했었다.
(우리 대대에는 4명의 여자가 있다. 나, 선차반 해군 1명, 그리고 후차반 2명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비행이 끝나고 머리가 헝클어져서 다니는 것은 흡사 나의 과거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여전히 브리핑 하느라 바쁘고 비행하느라 바쁘고 자습하느라 바쁘다.
어느 날은 비행이 마음대로 안 되는지 풀이 죽은 듯한 후차반 학생에게 힘드냐고 물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재밌냐고 묻는다. “네. 재밌습니다.”
예, 아니도 단답형으로 우렁차게 대답하는 아이한테 난 할 말을 잃었다. 만난 지 얼마 안되서 무서운 교관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같은 여자인 나한테 속이라도 털어놓지 하는 아쉬움도 생긴다.
그렇지만 이런 걱정은 보통 놀라움으로 변할 때가 많다.
이미 수료한 학생은 회식 몇 번에 거의 ‘언니’ 수준으로 들이대더니, 이제 곧 수료하는 선차반 학생은 학술대회에서 수상을 했다.
해군에서 배출하는 첫 번째 P-3 여군조종사가 될 이 녀석은 무척 야무지다.
(공군은 해군조종사 기본훈련을 지원해 주고 있다.)
또 이제 곧 선차반이 될 두 녀석 또한 힘들게만 느껴졌던 초단독을 무사히 끝내고 맹랑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다.
처음 봤던 모습들에 비하면 놀라운 발전인거다.
물론 잘하는 학생도, 못하는 학생도 있긴 하지만 내가 어색해 하던 마스크 자국을 얼굴에 남기고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하는 그들에게 먼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공군 최초의 여군 조종사>
내가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많은 책임감을 느꼈던 것처럼, 남들이 잘 안 가는 길을 가다보면 힘들 때도 있고 그것 때문에 더 도움을 많이 받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군’이라서 더 듣게 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칭찬에 연연하지 말고 각자가 군에서 맡은 자신의 위치에서 당당하게 멋진 역할을 하는 장교들이 되길, 그래서 그 모습을 보고 더 좋은 후배들이 많이 생겼으면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글 : 대위 편보라
기사 원문 : [비행을 말하다] 군대에서 여학생이란 누구일까? http://afplay.tistory.com/169
기사 제공 : 공군 블로그 ‘공감 season II’ http://afplay.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