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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방랑시인 김삿갓

鶴山 徐 仁 2010. 9. 17. 11:07

 
방랑시인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넘어 가는객이 누구냐
열두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한잔에 시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2.
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없는 이거리 저마을로
손을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3.
방랑에 지치었나 사랑에 지치었나
개나리 봇짐지고 가는곳이 어데냐
팔도강산 타향살이 몇몇해던가
석양지는 산마루에 잠을자는 김삿갓
 
 

    6. 25 전쟁으로 부산까지 밀려 내려 갔다가 환도 직후
    만들어진, 그 당시 시대 감각과는 전혀 딴 판인 노래였지만
    대중들은 한사코 이 노래를 불렀다한다.

    금지곡으로 묶이는 바람에 오랫동안 방송으로는
    들어 볼 수가 없었던 노래이기하여 한동안
    CD로도 재발매 되지 않았고 레코드 마저 희귀 음반으로
    구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있다 해도 기십만원을 호가하는,

    우리네 어른들이 술이 한 잔 거나하게 되시면
    자주 부르셨던 흘러간 옛노래,

    '방랑 시인 김삿갓'입니다

     

     

     

     

     

    시로 읊은 민중의 애환

     

    「방랑시인 김삿갓」

     

     

    <김삿갓>

 

 

방랑시인으로 알려진 김삿갓의 이름을 들으면 큰 삿갓을 쓰고 유유히 걸어가는 뒷모습이 떠오른다. 그가 방랑생활을 하면서 썼던 시는 주로 권력자와 부자들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내용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시를 쓰게 되었으며 정처없이 떠도는 삶을 택했을까?

 

가문의 몰락

김삿갓은 조선 후기인 1807년에 출생하여 1863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명은 김병연(金炳淵),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이며 한자 이름으로는 김립(金笠)이라고도 한다. 평생 떠돌이 생활을 했지만 사실 그는 경기도 양주의 양반가문인 김안근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다섯 살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고 그의 조부이자 당시 선천부사였던 김익순은 반란군 수괴인 홍경래에게 항복했다. 이 일로 인해 김익순은 조정으로부터 참수를 당하고 그의 가족들은 겨우 목숨만 건지게 되었다. 그 후 황해도 곡산에서 종살이를 하던 사람의 집으로 가족이 피신하는 중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만 살아남아 3형제를 키우게 된다. 김삿갓은 이 때부터 이미 문장 솜씨가 뛰어남을 인정받아 신동으로 불렸다고 한다.

 

역적의 자손임을 알게 되다

김삿갓은 20세가 되도록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의 어머니가 아들들이 그들의 할아버지가 적장 앞에 무릎을 꿇은 대가로 역적으로 몰린 사실을 알지 못하게 숨겨왔기 때문이었다. 아들들마저 역적의 손자로 낙인 찍히면 조정과 세상으로부터의 불신과 비난을 받게 됨은 물론이며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삿갓이 20세에 강원도 영월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급제를 받게 되면서 그의 운명은 바뀐다. 과거의 시제가 공교롭게도 ‘군수 정시의 충절과 선천 부사 김익순의 죄에 대해서 논하라'로 그의 조부인 김익순의 역적행위를 비판하라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조부에 대해서 몰랐던 삿갓은 김익순을 비판하는 글을 거침없이 써냈다. 후에 자신이 김익순의 손자임을 알게 되자 충격을 받아 이름을 ‘삿갓’으로 개명한 뒤 전국 유랑을 떠난다. 자신이 나라에 죄를 지은 사람의 자손이자 또한 할아버지를 욕한 불효자라 여긴 것이다. 어머니와 부인에게는 홍성의 외가로 간다는 말을 남겼지만 사실은 정반대 쪽에 있는 금강산으로 떠났으며, 그 후 단 한 번의 방문을 제외하고는 가족들과 다시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김삿갓 묘>

 

김삿갓의 문학 세계

김삿갓이 남긴 작품은 의외로 읽기에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시라고는 해도 한자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다. 형식적으로는 재래 규격에 대한 파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과거의 사회 질서와 전통에 대한 그의 파괴적 성향이 문학 작품에 있어서도 재래의 한시 형식을 대담하게 파괴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시 형식의 표현, 기교 및 기술이 새로운 것이었다. 시 창작의 기교를 과거 한시 작가들이 몰두한 압운(押韻) 등에서 찾지 않고 도리어 그것들을 적당히 또는 전적으로 무시하고 대신 참신한 다른 방법을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여기에는 그의 기지와 유머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런 형식과 표현 수법은 당시 급격히 발전하고 있던 사실주의 문학에 부합하는 것이었으며 파격시, 언문시 등은 잡가와 함께 후대의 창가 형식 또는 더 나아가 현대 자유시 형식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형식적 특성 때문에 그의 시가 형식상 시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것은 당시 양반 귀족들의 보수 사상과 한시의 낡은 규범에 의거한 판단일 것이다. 즉 그의 문학은 재래의 한시 전통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당시 성행하던 사설 시조나 잡가 계열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잡가가 그 시기에 대중 속에서 크게 성행했던 것처럼 그의 시도 당시 중류 이하 사람들 사이에 널리 유행함으로써 하나의 시풍을 형성하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유명 작가의 활동이 극히 적었던 19세기 중엽에 구전으로 이름이 알려진 김삿갓의 작품은 문학사에서 특색 있는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반항과 불평은 개인적인 측면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는 당시 억압받던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였으며 중년과 말년으로 가면서 점점 더 양반 제도와 봉건 정치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그의 세계관은 훨씬 사회적으로 확대되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단편적이고 통속적이긴 하나 그의 풍자와 웃음은 봉건 지배층을 겨누는 예리한 칼날로 평가받는다.

 

김삿갓의 문학 세계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준 것은 문전걸식하며 세상의 어두운 면을 체험했던 경험일 것이다. 그의 시는 세상의 야박함과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모순을 지적하고 있으며 때로는 이러한 냉대에 불평과 불만을 토하여 세태를 비웃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도 하였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자연 시인으로서의 그의 면모도 돋보인다. 김삿갓은 풍월이나 자연의 경관을 읊은 종래의 한시에서 벗어나 우리 생활과 밀접한 주변에서 시제를 찾아 예민한 관찰과 심오한 착상, 감정의 미묘한 표현에 뛰어났다. 간결하면서도 단순한 문자와 기발한 비유로 자연의 경관을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즉, 그가 다룬 문제들은 기성의 가식, 도덕과 인습, 전통에까지 이르고 있고 당대의 선비로서는 엄두도 못 낼 소재를 택하여 인간의 감성을 사실대로 읊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는 거의 대부분이 풍자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역경과 서러움으로 일생을 보내는 동안 때로는 현실을 비관도 하였지만 암울하기만 한 현실을 초탈하여 해학과 풍자로써 자신을 위로하였던 것이다. 때로는 직접적이고 신랄하게, 때로는 간접적이고 완곡한 풍자로 뛰어난 재치를 발휘하였다.

 

권문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불운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김삿갓은 평생 그의 작품을 통해 인생의 진실을 노래하고 청렴한 정신을 드러냈다. 특히 지배 계층의 거짓과 위선을 거부하고 평민의 삶을 대변하였으며 내용과 형식면에서 모두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방랑생활을 하여 개인적으로 가장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가 만약 조정의 일개 관원으로서 평생을 마쳤다면 오늘날 그의 문학이 우리에게 이처럼 깊은 감동을 주지는 못하였을 것 같다. 방랑생활을 하였기에 권력층에 대한 두려움 없이 탐관오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작품을 쓰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잠재성은 생활에 대한 극도의 위협과 가혹한 정신적 시련에서 표출되기 때문에 그의 시에 나타나 있는 심오한 사상이 그의 작품을 더욱 값지게 하는 것이다.

 

      

               竹詩(죽시) / 대나무시

                                                            

                                                                 - 김삿갓(金炳淵)-

 

此竹彼竹化去竹(차죽피죽화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風打之竹浪打竹(풍타지죽랑타죽)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飯飯粥粥生此竹(반반죽죽생차죽) 밥이면 밥, 죽이면 죽, 나오는 대로

是是非非付彼竹(시시비비부피죽) 옳고그름은 따지지 말고, 그저 그런대로

賓客接待家勢竹(빈객접대가세죽) 손님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市井賣買歲月竹(시정매매세월죽) 물건 사고파는 것은 市勢(시세)대로

萬事不如吾心竹(만사불여오심죽) 만사는 다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니

然然然世過然竹(연연연세과연죽)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살아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