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냉전의 시작을 알린 전차
1945년 5월 7일, 프랑스의 랭스 (Rheims)에 있는 연합군사령부에서 독일의 항복조인식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소련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독일을 겁박하여 다음날 베를린에서 그들의 주도하에 별도의 항복조인식을 실시하였는데, 이처럼 전쟁의 끝을 상징하는 행사는 새로운 대립과 갈등의 시작을 알리는 선전의 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냉전 (Cold War)의 시작이었습니다.
[ 1945년 5월 8일 항복 서명을 하는 독일국방군 총사령관 카이텔
전날 영미 주도하에 벌어진 항복조인식에 반발한 소련의 별도 이벤트였습니다 ]
그리고 독일이 패망한지 얼마 되지 않은 1945년 9월, 패전국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연합군의 전승기념 퍼레이드가 벌어졌습니다. 명목상으로는 승리를 자축하는 연합국들의 합동행사였지만,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의 축제에 서방측 연합군 관계자가 옵서버로 참관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비록 겉으로는 화기애애하였지만, 행사에 참가한 군의 고위 책임자들은 앞으로 서방측과 소련은 한 배를 탈 수 없는 상대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 승리직후 함께 행진하는 미국과 소련의 병사들 ]
사실 전쟁 내내 소련군과 칼을 섞었던 것은 독일이었으므로, 연합군과 소련은 군사적으로 낯선 상대였습니다. 따라서 이번 퍼레이드는 소련군의 위용을 미영의 관계자들이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던 서방측 참관단은 브란덴부르크문을 지나 행진하던 소련의 전차대열을 보고 경악하였습니다. 사전에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최신형 전차가 모습을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 연합군 관계자들은 이 전차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였습니다 ]
현대 소련전차의 어머니라고도 불려진 JS-3 (또는 IS-3) 중(重)전차가 세상에 선보인 순간이었습니다. JS는 스탈린의 이름(Iosif Stalin)을 딴 것인데, 때문에 흔히 소련의 JS중전차를 스탈린전차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서방측 관계자들은 당시 서방측 전차들이 흉내 낼 수조차 없을 만큼 탁월한 JS-3의 외형만으로도 압도당하였습니다. 한마디로 꼭꼭 숨어있던 고수가 무림세계에 쨘하고 등장한 상황이었습니다.
[ 모든 이의 탄성을 불러 일으킬 만큼 외형에서부터 JS-3는 탁월하였습니다 ]
JS-3는 아름다운 곡선형태의 터렛(포탑)과 조종사가 위치하는 동체의 전면장갑을 V자 형태로 제작하여 피탄 면적을 최소화하였습니다. 더구나 최신 장갑형태인 공간장갑을 사용하여 방어력을 배가한 것으로 알려져 관계자들을 경악시켰습니다. 이런 장갑방식은 현대 전차들이 대부분이 기초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구조인데, 다시 말해 JS-3는 당대 기술수준을 뛰어넘는 구조였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방어에 적합한 이런 구조는 1940년대에는 구현하기 힘든 기술이었습니다 ]
당시에도 이런 구조가 상당히 뛰어난 형태임은 다들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이렇게 전차를 제작하는 것은 보통의 기술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 전차를 보자마자 모든 전문가들은 경악하였던 것이었습니다. JS-3는 장갑능력 뿐만 아니라 122mm 43구경포를 장비한 화력도 감히 비교상대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만큼 소련은 기술적으로 매우 진보한 이 중전차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 최신 전차에 대한 소련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
JS-3는 기존에 사용하던 JS-2를 개량하여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말, 체르야빈스크(Chelyabinsk)에 있는 제100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하였습니다. 제2차 대전 참전기록이 없이 전후 행사에서 처음으로 목격되었던 이유에 대하여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굳이 다 이긴 전쟁에 투입하여 장차 대립할 미국에게 사전에 신기술을 누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 이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져 있습니다.
[ 전쟁 전 트랙터를 생산하던 체르야빈스크 제100공장 ]
이후 JS-3는 소련의 중(重)전차 프로젝트의 효시인 T-10의 원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그날의 놀라운 등장은 동서냉전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모습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소련에 명품 T-34중형(中型)전차가 있었음에도, 자신들이 원조한 전차로 제2차 대전을 치렀다고 거만하게 생각하고 있던 미국은 JS-3의 등장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며 차세대 전차개발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 미국은 자신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소련이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공여 받은 미제 M-3전차로 전투를 하는 소련군의 모습) ]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소련의 전차개발사상이 중전차와 중형전차를 함께 제식화하여 기갑전력을 구성하였던 기존방식을 제2차 대전 후 전격적으로 폐기하고 T-54/55로 대표되는 중형전차 정책으로만 진행되면서 JS-3로 대표되는 소련의 중전차 개발 프로젝트는 중단되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서방측 전차가 소련 측 전차에 절대열세 때문에 굳이 중전차개발에까지 자원을 투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냉전시기에 소련과 동구권을 대표한 T형 전차
아직도 그 기술적 메카니즘은 최신 전차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
사실 미국이 소련을 능가하는 전차를 제식화한 것은 1980년대 이후부터 본격 배치된 M-1전차이후부터라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것은 T시리즈로 대변되는 소련의 전차를 능가하는 전차를 만드는데 그만큼 오랜 기간이 걸렸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실, 첨예한 냉전기간 이었던 1980년대 이전동안 미국을 포함한 서방측 스스로도 독일의 레오파드(Leopard)를 최고의 전차로 평가하였을 정도였습니다.
[ JS-3이 처음 등장한 1945년 9월의 행사는 냉전의 시작을 상징하였습니다 ]
혹자는 중동전 때 이스라엘이 사용하던 미제 전차가 아랍 국가들이 보유한 소련제 T시리즈 전차에 일방적으로 승리를 거두지 않았냐고 반문 할지 모르겠지만, 전차의 성능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 전술 및 훈련의 차이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비록 JS-3는 소련의 정책전환으로 전차개발사에 아주 잠시만 등장하는 전차가 되었지만 냉전의 개막을 알리는 무시무시한 발자국을 역사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P.S. 지난 2004년 11월에 올렸던 글을 정정 보완하였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august 의 軍史世界 ]
[출처] 냉전의 시작을 알린 전차*|작성자 august
'軍事 資料 綜合' 카테고리의 다른 글
‘大洋해군 꿈’ 잠시 접는다 (0) | 2010.09.15 |
---|---|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 (0) | 2010.09.12 |
“국방선진화위, 軍복무기간 24개월 환원 의견” (0) | 2010.08.24 |
교훈을 얻어 도약하기 바라며 (0) | 2010.08.24 |
잘나가던 집안이 망하려면 [ 끝 ] (0) | 2010.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