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설이 파란만장하는 사건의 변화로 이루어져 있어서 작가의 성실한 소재 취재의 열정을 느끼게 한다.
2, 사건이 너무 중첩하기 때문에 사건 하나 하나에 리얼리티가 떨어져 끔직한 사건도 하나의 시적인 영상으로 느껴진다. 예를 들어서 수옥이 아오지 감옥에서 형을 마치고 나와 만주로 가게 되는데, 그 때 그녀가 받은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증명서는 세 개가 되는데, 그것이 어떻게 발행되었는지 전혀 설명이 되어 있지 않아, 공허감을 준다. 아오지 감옥을 출소한 그녀에게 북한 당국이 쉽게 중국방문의 여권을 발행해주었겠는가.그리고 실항사 승제가 날칼과 또 한놈을 죽이는데, 그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그 결과만 간단히 처리되어, 역시 공허한 마음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일 때는 어떤 사건보다 심각한 내면의 묘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달래가 망치에게 겁탈 당하는 장면도 피상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그 결과 그녀가 목숨을 잃게 되는데, 여고생인 달래가 겁탈되었다고 죽음을 초래했다고 묘사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소설이 이야기이지만 수필이나 시와 다른 점은 구체적인 사건의 묘사이다.
3. 이야기와 주제의 전개를 위해 불가능한 것을 구성한다면 역시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야화선의 선장 김진수가, 북파에 실패하고 대신 북에서 이수옥이란 여성과 사람을 맺는 것은 가능한 사건의 설정이다. 그러나 남한으로 귀한한 진수가 15년간 독신으로 살아오면서, 수옥과의 재회를 위한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건강한 사람일 경우, 짝을 지워 살게 되어 있다. 물론 장기려같은 실재인물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특수한 경우를 보편화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4. 인물을 너무 정형화하여, 사람이 마치 무슨 인형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망치나 날칼같은 무지막지한 조폭출신들을 너무 악당으로 그리는 것은 무리다. 사람이기에 그들은 악당이지만 그들은 사람다운 구석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의 역할이 너무 악당으로만 일관하여 회의감을 준다. 과연 인간은 그럴 수가 있을까. 김진수 선장을 너무 위대한 인간성을 가진 인물로만 일관되게 그리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5. 달래와 승제를 죽임으로써, <태양의 밀서>라는 책의 제목이 암시하는 주제와 상치되고 있다. 저자가 태양의 밀서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를 <...어느 지상이든 태양은 종을 가리지 않고 찬란한 산란에 참여할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자 작중인물 중 나이가 가장 어리고, 진수와 수옥의 사랑의 결정품인 달래를 죽이고, 달래를 사랑하는 승제를 죽임으로써, 태양의 밀서는 사실상 산란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감옥을 살게 된 수옥과 진수가 형기를 마치고 나와 재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약할 수 있다는 암시가 있지만, 작중인물로써 말할 때, 작품은 완전 암흑으로 끝나고 있다.
6.집필 전에 짜여진 스토리에 의해 작품을 무리하게 끌어간 흔적이 느껴져 조금 당황스럽다. 구석 구석에 치밀한 현장 묘사와 전후의 암시와 유기적인 사건의 변화를 추구하지 못한 느낌이 있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나름대로 다양한 소재를 잘 소화한 듯하다. 바다를 소재로 하여 이 정도로 쓰여진 소설을 한국소설 문학사에서 찾아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시인으로 알려져 있던 저자가 이런 대작의 장편소설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참으로 대견스럽다. 좀더 묵히고 돌려가면서 독회를 하고 하여 거듭 거듭 추고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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