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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전 명구 / 국치(國恥) 100년의 교훈

鶴山 徐 仁 2010. 3. 8. 21:02




◇ 국치(國恥) 100년의 교훈 ◇

    
    

 

1.

  2010년은 경술(庚戌) 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미 조선조는 19세기 중엽부터 서구제국주의 또는 그 아류(亞流)인 일본의 무력도전 앞에서 좌절하다가 결국 1910년 국권상실의 비극을 맞게 된 것이다. 이러한 좌절과 패망이 주는 역사적 의미와 교훈을 우리는 냉철하게 분석하고 정리해서 자손만대에 물려주어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없도록, 그리고 그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민족공동체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국가운영의 구도를 그려나가야 한다.
  돌이켜보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엽의 동아시아라는 시간적, 공간적 상황에서 제국주의 세력의 내침으로 조성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형성된 어떠한 사상이나 운동이라도 그러한 사상이나 운동들은 예외 없이 근대적 의미의 민족주의적 과제를 두 가지 측면에서 안고 있었다. 그 하나는 당시 조선이 처해 있던 국제정치적 환경 속에서 제국주의 열강, 특히 후발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으로부터 오는 외압을 물리치고 국가의 독립을 수호해야 할 대외적 과제를 뜻하며, 또 다른 하나는 대외적으로 국가의 독립을 보위하기 위하여 대내적으로 우선 전근대적 중앙집권체제에 수반되는 하향식인 국민적 통합을 지양하고 근대적 의미의 참여적인 국민적 통합을 도모해야 하는 과제에 부딪치고 있었음을 뜻하였다.
  이러한 이중의 과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수행하느냐 하는 신념과 노선의 차이에 따라 이 시기에 정치사의 무대에는 위정척사, 개화, 그리고 동학의 사상과 운동이 등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과 운동들은 외부로부터의 침략에 대응하여 국권을 수호하고 자주독립을 지키겠다는 궁극적 목표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바가 없었으나, 그 목표를 실현해나갈 방책을 선택하고 정치체제의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상황을 조성함으로써 통합적인 근대적 민족주의로 수렴되지 못하고 결국 국권을 상실하는 비운을 맞았다.

 

2.

  일찍이 영국의 한 역사학자는 “만약에 뚜르-뽀아띠에(Tour-Poitiers) 전쟁에서 사라센 군대가 기독교 연합군에게 승리하였더라면, 오늘날 옥스퍼드 대학이나 파리 대학에서는 바이블을 강의하는 대신에 코란을 강의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Lord G. Macauley Trevelyan, History of England, 1926, 서문) 그렇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의 사건이나 한 지도자의 선택이 계기가 되어 그 진행방향이 결정되고 또 바뀌어간다. 한 개인의 운명이나 한 국가의 흥망성쇠 또한 그러하다.
  만약 19세기 후반 조선조가 국가적 위기에 당면하였을 때 개화, 척사, 동학의 사상과 운동 중에서 그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우세하여 한국 근현대정치사의 주역이 되었더라면 한국 근현대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그 세 갈래의 사상과 운동이 서로 복잡하게 갈등하며 대립하는 양상에서 벗어나서 갈등과 대립을 지양하고 국권수호와 체제개혁을 위하여 근대적 민족주의의 사상과 운동으로 수렴되어 통합의 길을 선택하였더라면 그 또한 한국 근현대사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평범한 우리의 속담에서 망국의 역사적 교훈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국가의 운명이 이미 기울어지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앞에서 뒤늦게 이념이나 노선을 뛰어넘어 “자강아사(自强我事)”를 통해 국력을 회복하고 국체를 보위하려는 점에 컨센서스를 이루었던 사실은 오늘의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암시해준다. 자강아사의 전제조건이 내수(內修)라는 점에서도 모두가 동의한 바 있다.
  바꾸어 말하면 자강아사를 위해서는 권위 있고 효율적인 정치지도력이 요청되며, 정치적 리더십이 국민적 동의 위에서 권위를 인정받으려면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고도의 도덕성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가 나온다면, 아니 그러한 지도자를 양성하고 배출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정치문화가 형성되는 날 한국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세계의 등불이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한국현대사의 전사(前史)인 한국근대정치사가 남긴 교훈인 것이다. 지구상에서 국가라는 정치공동체가 존속하는 한 국가이익이라는 개념은 현실적으로 그 어떤 이념이나 가치에 우선하는 절대적 선택이 된다는 사실 또한 국치 100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3.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 독립기념관 뒤뜰에 세워진 서재필(徐載弼)의 어록비에는 다음과 같은 비장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합하면 조선이 살 테고 만일 나뉘면 조선이 없어질 것이오. 조선이 없으면 남방사람도 없어지는 것이고 북방사람도 없어지는 것이니 근일 죽을 일을 할 묘리가 있겠습니까. 살 도리들을 하시오.”

  조선조 시대,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 그리고 광복 이후 대한민국 건국기를 거치는 역사적 전환기를 살면서, 아니 그 거대한 변환의 시대를 목숨을 던져 이끌어온 주역의 한 사람으로서, 1949년 3.1절을 즈음하여 서재필은 우리 민족에게 한과 피가 맺힌 절규를 남겼다. 질풍노도의 한국 근현대사의 주역의 한 사람이었던 노 애국지사의 충언은 오늘을 사는 우리 민족구성원 모두에게 한국 근현대사가 주는 방대한 역사적 교훈과 책무를 집약하고 있다.

글쓴이 / 이택휘

* 전 서울교육대학교 총장

* 주요저서
- 조선후기 정치사상 연구(1983)
- 한국현대정치사(공저, 1989)
- 한국정치사상사(1993)

출처 : 藝術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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