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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칼럼] 국격(國格)

鶴山 徐 仁 2009. 10. 12. 09:34
사설·칼럼
김대중 칼럼

[김대중칼럼] 국격(國格)

  • 김대중·顧問
김대중·顧問

우리의 국격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는 나라의 기강이다
기강이 서 있는 나라는 국격이 높은 나라이고
기강이 무너진 나라는 국격을 논할 자격도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월말 G20 정상회의에 다녀온 뒤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국격(國格)을 얘기하고 있다. 벌써 대여섯 차례나 된다. "G20 정상회의를 유치함으로써 이제 우리나라는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됐다"며 G20 회의를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기회로 삼자고 역설하고 있다.

국제회의 하나로 한국의 국격이 높아진다는 것이 어째 민망하게 들린다. 이미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크고 작은 국제 정상급 회의를 개최한 것이 한두번이 아닌 우리나라인 만큼, 새삼 G20을 가지고 국격을 논하는 것 자체가 쑥스럽기까지 하다. 귀국하는 기내에서 만세삼창까지 했다니 혹 해외토픽에 오를까 면구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세계 20개국의 정상들이 참석하는 회의니만큼 그 중요성에 비추어 나라의 면모를 일신하자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모처럼 대통령이 국격을 거론하고 있는 것을 계기로 우리는 우리가 진정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국민적, 정권적 역량을 경주해 나라의 품격과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들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국격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는 나라의 기강이다. 기강이 서 있는 나라는 국격이 높은 나라이고 기강이 무너진 나라는 국격을 논할 자격조차 없다. 국회에서 싸움질이나 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나라는 국격이 없다. 노조의 투쟁에서 치명적 무기가 동원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나라에서는 국격이 설 자리가 없다. 이런 폭력과 무법과 무질서가 횡행하는데도 이것을 다스릴 공권력이 뒷걸음질치고 법이 있어도 이를 집행할 능력과 의지가 없는 나라는 국격 자체가 없다. 무국격(無國格)이다. 나라의 기강, 질서, 예의가 무너진 나라가 국제회의 하나 잘했다고 국격이 높아진다는 것은 위선이고 위장이고 자기기만이다.

우리는 외국의 보도를 통해 세계가 우리를 보는 '눈'을 감지한다. 세계가 우리를 가리켜 국회에서 가장 싸움 잘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나라 중 상위의 랭킹에 있는 나라라고 보도할 때, 우리의 노사투쟁의 현장을 보도하면서 화염병과 새총과 죽창을 부각시킬 때 우리는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예전에는 몰라도 이제는 우리도 생각이 있고 법과 규칙이 있는 나라라고 여겨왔는데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자책감에 사로잡힌다. 어느 나라든 시위는 있고 반정부도 있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면 그 행위는 대체로 법질서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야 나라다운 나라로 대접받는다. 우리는 아닌 것 같다. 붉은 머리띠와 마스크, 화염병, 죽창, 최루탄, 치고받는 난투, 사망 등의 순서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에서 국격을 논할 여유가 있는 것일까? 명색이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의사당 안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며 망치로 문을 부수는 나라에서 무슨 국격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인가?

지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실천하지 못하는 나라는 결코 문화국이라고 할 수 없다. 나라의 중심축 역할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위장전입이나 하고 탈세나 하고 뇌물이나 받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일 수 없다. 그런 위반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사과하기만 하면 통과될 수 있는 문제'라는 인식이 지도층과 일반국민 사이에 상식화(?)돼 있는 사회에 무슨 품격이 있을 것인가. 나라의 최고위 지도층 인사들이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병역의무를 치르지 않고도 위정자의 자리에 오르는 나라에 기강이 제대로 서있을 수 있을 것인가.

나라 전체로 거짓말과 사기사건이 법집행기관 업무의 70%를 차지하는 곳에 국격이 높아질 수 없다. 어린이를 성폭행해도 그저 그런 처벌을 하는 나라에서 국격을 논하는 것은 사치다. 기회주의와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선거과정에서 아직도 돈과 접대와 학력(學歷)사기가 판을 치는 풍토를 고치는 것이 우리의 국격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이 대통령은 국제회의 유치한 것으로 국격을 논하고 그것을 높이는 일에 국민이 동참하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정부부터 나라의 체통을 세우고 법과 질서를 지키는 일에 추상같이 나섰으면 한다. 대통령 기자회견에 앞서 '이런 문제(예를 들어 세종시 문제)는 질문하지 말아 달라'며 골치 아픈 문제는 피해가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도 많지 않았던 행태다. 이런 것이 민주주의를 때묻게 하고 국격을 훼손하는 일이다. 그러지 않아도 이 대통령이 자기의 말만 하고(회견이나 회의, 라디오 연설 등) 다른 사람의 말을 접하는 기회가 원활치 못한 일방통행식 지시(指示)화법에 더욱더 익숙해져 가고 있다고 들린다. 국격을 향상시키는 일은 대통령이 법질서를 지키는 기강 세우기에 앞장서고 국민 모두에게 이런 운동에 참여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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