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7번째 발사 연기 정부 "SW 오류로 발사중지"
자동시퀀스도 19일 처음 사용돼 사전에 오류 찾아낼 기회 없어…
정부, 26일 이전 재발사 추진
소프트웨어의 오류가 7년 동안 학수고대해 온 나로호 발사를 예정시간 7분56초 전에 멈춰 세웠다. 이전 두 차례의 나로호 발사 연기도 러시아측의 소프트웨어 이상이거나 센서 측정 오류였다. 이번에 문제가 된 소프트웨어(이하 SW) 역시 제작자는 러시아. IT(정보기술) 강국(强國) 대한민국의 사상 첫 우주발사체가 IT기술 때문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소프트웨어 오류 사전에 바로잡을 기회 없어
교육과학기술부의 김중현 차관은 20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러시아 기술진이 전날 밤늦게까지 분석 작업을 벌여 자동발사 시퀀스가 발사체 내 고압탱크의 압력을 측정하는 과정에서 소프트웨어에 오류가 있었음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자동발사 시퀀스는 발사 15분 전 자동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서부터 발사체 내부의 각종 장비를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가동시키는 컴퓨터 시스템이다.
정부는 당초 우려와 달리 고압탱크나 밸브 같은 나로호의 하드웨어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주진 항공우주연구원장은 "(고압탱크의 압력이 정상치와) 차이가 없는데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인식한 것"이라고 말했다.
압력이 낮아지지 않았는데 SW가 실수를 일으켜 낮아진 것으로 오인했다는 것.
문제는 사전에 SW의 오류를 잡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나로호는 러시아가 제작한 하단(1단) 액체연료 로켓과 국내 제작 상단(2단) 고체연료 로켓으로 구성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밸브와 고압탱크는 하단 로켓에 있다.
러시아 흐루니체프사는 올 6월 앙가라 하단 로켓에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고 연소 직전까지 공기압력이나 유압을 측정하는 시험을 실시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실제 연소시험도 했다. 정부는 "러시아가 우리에게 인도한 나로호 하단은 앙가라 하단과 하드웨어는 사실상 같은 것으로 최종 연소시험을 마쳤다"고 밝혔다.
- ▲ 러시아 최신 발사체들 지난 18일 러시아 모스크바 교외에서 열린‘모스크바 국제 에어쇼’에 전시된 앙가라 발사체 모델들. 나로호 하단 로켓은 앙가라 하단과 같은 것이라고 정부는 밝혔다. 왼쪽부터 앙가라 3, 앙가라 1.2 발사체. 이들의 첫 발사는 2011년으로 잡혀 있다./신화통신 연합뉴스
◆러시아측 연소시험 소프트웨어와 달라
하지만 20일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진행된 기자 브리핑에서 항공우주연구원 박정주 발사체계사업단장은 "(문제가 된) SW는 러시아에서 만든 것이고, 러시아 연소시험 때 있던 SW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시험은 지상시험이고 이번은 발사대여서 러시아가 우리 시설에 맞게 변형시켜 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로호는 절반은 러시아가(하단 로켓), 절반은 우리가(상단) 개발한 것이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만든 앙가라용 자동발사시퀀스를 우리나라 상단 고체 로켓 부분까지 통제할 수 있는 SW로 보완해 국내에 제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러시아에서도 우리나라에 인도한 자동발사시퀀스는 한 번도 실제 상황에서 사용된 적이 없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로호는 발사 전까지는 실제 연료와 액체산소를 주입한 적이 없다. 이전에 국내에 들여온 지상시험용 발사체(GTV)로는 연료 주입시험을 했지만, 여기엔 하단 로켓 엔진이 없어 밸브나 고압탱크 작동을 점검할 수 없다. 국내에서는 문제가 된 SW를 실제 상황에서 한 번도 가동하지 않은 것이다. 항공우주연구원은 또다시 "러시아 현지에서 나로호에 맞게 시험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문제로 발사 연기 되풀이
하드웨어는 문제가 없고 SW가 오류였다는 설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나로호는 당초 7월 30일 발사될 예정이었다가 지난달 15일 러시아가 "7월 23일로 예정된 연소시험이 시험설비 SW 이상으로 30일로 연기됐다"며 연기를 요청했다. 7월30일 연소시험은 무사히 진행됐고 발사일은 8월11일로 조정됐다.
그 다음엔 시험 데이터가 문제였다. 러시아측은 "하단 로켓 연소시험 결과 엔진에 있는 보조 펌프의 회전 수가 짧은 시간 동안 정상보다 높은 값을 나타냈다. 이를 분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발사 연기를 재요청했다.
보조 펌프는 로켓 엔진에 연료와 산화제를 공급하는 주 펌프(터보펌프)에 수증기가 생기지 않도록 연료 등의 압력을 낮춰주는 장치다. 수증기가 생기면 연료 흐름에 문제가 생겨 큰 사고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나중에 이 역시 측정오류였을 뿐 발사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발사일을 8월 19일로 다시 잡았다. 바로 그날 카운트다운까지 했는데 '소프트웨어 오류'라는 낯설지 않은 이유로 또 주저앉은 것이다.
◆발사 시기 결정에만 급급한 인상
발사 성공을 위해선 발사 1초 전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중단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큰 사고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학 교수는 "이번에 SW 오류가 탱크 압력이 정상인데 낮다고 해서 그렇지, 압력이 높은데 정상이라고 보는 오류인데 알아채지 못했다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SW 오류 발견 후 내린 발사 중지 결정을 비난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문제점을 러시아만 알고 우리는 통보만 받는다는 점이다. 기술보안협정 때문에 러시아가 개발한 하단 로켓의 상세기술을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늘 "오류였을 뿐 발사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번에 자동발사시퀀스는 발사 7분56초 전까지만 가동했다. 그 뒤는 또 무슨 문제가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20일 정부는 예전처럼 빠른 시간 내 발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김중현 차관은 "SW 오류가 발사체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하고 있는데, 이를 반영하는데 1~3일 정도면 될 것"이라며 "오는 26일 이전에 재발사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정부는 근원적인 오류 분석과 처방보다는 발사 시기 결정에만 급급한 인상이다.